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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록 속출하는 코스피:
왜 금융 시장은 실물 경제와 다른가

실물 경제가 불황임에도 정부가 푼 막대한 유동성으로 코스피는 연일 기록을 갱신했다 12월 29일 하나은행 딜링룸 ⓒ이미진

코로나19 여파 속에 2020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출 이자도 벌지 못하는 ‘좀비 기업’이 늘고 가계 부채도 심각하다.

그러나 부동산·주식 거품은 계속 커지고 있다. 코스피는 연일 신기록을 갈아 치우며 조만간 3000선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물 경제와 상반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르크스의 분석은 이해를 돕는 유용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두 가지 분열에 바탕을 뒀다고 봤다. 하나는 자본가 계급 대 노동자 계급의 분열이다.

자본가 계급은 생산·분배·교환 수단을 소유하고 지배한다. 반면 노동자 계급은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 즉 일하는 능력(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야 먹고살 수 있다.

고용된 노동자는 자기가 만든 가치의 일부만을 임금으로 받는다. 나머지는 자본가가 차지한다. 기업주들이 이윤을 낼 수 있는 근본 이유가 여기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챙기는 이 나머지를 잉여가치라고 했다. 그리고 이 잉여가치를 노동자에게서 뽑아내는 과정을 착취라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중요한 분열은 자본가들끼리의 분열이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경쟁한다. 파산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신세를 면하려면 잉여가치를 끊임없이 재투자하고 노동자를 최대한 쥐어짜야 한다. 자본가들은 경쟁자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 혁신에 투자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경쟁 논리 때문에 매우 역동적이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의식적인 계획이 아니라 맹목적인 경쟁에 의해 자원이 할당되면서 온갖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자본주의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상품으로 생산되며 그런 사회에서는 특정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데에 쓰이게 된다. 이것이 화폐다. 화폐는 재화들의 가치를 비교하고, 재화를 교환하고,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다. 처음에는 금화나 은화가 화폐로 쓰였는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누군가 그 가치를 뒷받침해 주는 지폐를 쓰면 꼭 금화나 은화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화폐로 표현되는 상품의 가격은 가치와 다를 수 있다. 정부가 경제성장률 이상으로 화폐를 찍어내면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를 수 있다. 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은 올라갈 것이고,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 마르크스는 수요와 공급이 가격과 자본주의 경제의 동역학에 미치는 영향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격은 가치에서 무한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가치를 중심으로 등락한다.

생산 자본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실물 경제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대체로 생산 자본에 해당한다. 생산 자본은 자본가가 상품 생산에 투자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는 것을 말한다.

자본가는 자신이 벌어들인 이윤이나, 대출, 주식 발행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서 원자재와 생산 설비를 사들이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상품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든 상품의 가치는 애초에 원자재, 생산 설비, 노동력을 살 때 든 가치보다 더 크다. 자본가들은 이 상품을 팔아서 원래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남긴다.

자본가들은 사업을 하려면 자기가 가진 돈만으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돈을 끌어 와야 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그럴 필요성은 더 커졌다.

금융 시스템은 이윤이 남아 도는 데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자본가와, 투자처는 있는데 당장 돈이 없는 자본가들을 이어 준다. 예컨대 자본가들은 주식 시장에서 주식을 팔아서 돈을 모을 수 있다. 자본가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있다. 이처럼 금융 시스템은 체제가 매끄럽게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진 잉여가치는 생산을 조직한 자본가의 주머니로 전부 고스란히 들어가지 않고, 이자, 배당금, 지대 등의 형태로 나머지 자본가 계급에게도 돌아간다. 뒤집어 말하면, 이런 것들은 모두 실제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 시스템을 통해 생산에 직접 투자하지 않아도 이자 등을 통해 이윤을 챙길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마치 돈이 돈을 낳는 것 같은 환상이 생겨난다.

금융 시장과 투기

오늘날 주식 시장은 자금을 조달하는 구실보다는 기존 주식의 가치를 둘러싼 투기 시장 구실을 한다. 금리가 낮고 이윤(따라서 주식의 배당금)이 높거나 높아지고 있다면, 투기꾼들은 은행에서 돈을 빼고 주식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식 시장의 ‘강세’는 실물 경제의 이윤 증가를 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주식 시장은 언제나 이윤율 증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치솟아 왔다. 투기꾼들은 주가가 오른다고 기대하고 주식에 투자하는데, 그 기대 자체가 주식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주가를 올리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건이 바뀌면 시장은 금세 ‘조정’되거나 폭락할 수 있다. 금리가 높아져서 주식 투자보다 예금이 더 매력적이 되거나, 기업의 이윤이 줄어들거나, 어떤 충격으로 상승 전망이 하강 전망으로 바뀌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금융 시장이 무한정 치솟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투기자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투기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사실 주식 시장은 비교적 작은 투기판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에서는 튤립, 돼지고기, 날씨 등 무엇이든 투기의 대상이 된다. 세계 전체 생산량의 몇 배가 넘는 돈이 1년 동안 외환 시장에서 거래된다.

경제 위기와 금융 위기

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단지 ‘패닉’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금융 순환의 건강은 결국 생산에서 잉여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에 달려 있다.

경제가 호황이고 이윤을 많이 낼 수 있으면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는 데에 안달이 난다. 이런 투자는 무계획적으로 늘어나서 원료나 기계, 노동자가 부족해지고 이것들의 비용이 올라간다. 그리고 생산되는 상품은 수요를 초과해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 비용이 늘고 가격이 떨어지면 이윤은 줄 수밖에 없다. 이윤이 줄면 일부 기업이 파산한다. 그만큼 투자가 줄고, 실업자가 생겨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한다. 이처럼 지출이 줄면 이윤은 더 줄고 위기는 더 악화된다.

생산 부문의 이윤이 줄면 금융 순환에도 이상이 생긴다. 은행은 기업의 이윤을 보고 대출해 줬는데, 기업이 이윤을 못 내면 대출이 ‘부실’해진다. 최악의 경우 대출이 회수되고 기업이 부도 날 수 있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기업의 자산이 싼값에 처분된다. 이런 식으로 금융 시스템은 확장을 돕는 만큼 위기도 더 심화시킨다.

대출들이 부실해지면 은행은 결국 그것들을 손실 처리해야 한다. 그만큼 은행은 대출해 줄 수 있는 한도가 줄어들고 대출을 꺼리게 된다. 그러면서 은행, 기업들이 서로의 상환 능력을 의심하는 ‘신용 경색’이 온다. 신용 경색이 오면 여신이 줄고 지출이 줄면서 경제는 더 어려움에 빠진다.

한편 투기는 생산 부문의 과잉생산을 더한층 악화시킬 수 있다. 투기 열풍으로 자산 가치(보유 주식·부동산·상품 등의 가격)가 급증하면 과잉생산을 부채질할 수 있다. 예컨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건축업자들이 건물이나 주택을 더 지으려 할 것이다.

투기꾼들이 사기를 멈추고 팔기를 시작하면 자산 가치가 떨어진다. 은행들은 부동산 등의 담보물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 여신 관리를 강화하고 대출금 회수에 나설 수 있으며, 이것은 다시 자산 가치를 떨어뜨려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투기 과잉은 자본의 금융 순환에 내재한 것이며, 금융 순환은 자본주의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봐야 한다. 또, 이런 문제는 단순히 체제를 금융과 생산 부문으로 나눠서 금융 부문만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생산 부문의 자본들도 투기를 하고 투기꾼들도 생산에 투자를 한다. 기업주들 전부가 이윤을 좇아 어디에든 달려들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무계획적 경쟁이 노동계급을 고통에 빠트리는 것이다.

이 글은 《마르크스21》 1호에 실린 롭 호브먼의 “금융 위기와 실물 경제”를 기초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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