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신년 기자회견:
계속 좌우 줄타기하면서도 기업 살리기로 사실상 기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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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은 얼마나 알맹이가 없었으면 입양 관련 말실수 문제가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됐을까. 물론 겪어 보고 맘에 안 들면 입양 아동을 바꿀 수 있다는 문재인의 말은 열악한 처지의 입양 아동을 교환·환불 가능한 상품 취급한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대중을 말귀도 못 알아듣는 사람 취급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머릿속엔 아이가 상품이라는 발상 자체가 없다며 선진국에도 있는 ‘사전위탁보호 제도’를 보완하자는 취지였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문재인이 지칭했다는 바로 그 제도를 4년 전 (바로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가 아동 ‘쇼핑’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한 사실이 보도됐다.
정부·여당은 마치 문재인 말이 옳았음을 입증하려는 듯이 사전위탁제 제도화 강행을 시사하고 있다. 아동 학대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과 경찰의 무책임·무능이 정부의 위기를 심화시킬까 봐 억지 몸부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우파 눈치
문재인 정부의 공식 임기는 내년 5월까지이지만 대선이 내년 연초에 치러지므로, 문재인의 임기는 사실상 올해가 끝이라고 봐야 한다. 임기 마지막 해를 앞두고 문재인이 신년사(11일)와 신년 기자회견(18일)을 했지만, 위에서 지적했듯이 내용이 없다.
오히려 신년사는 대중의 공감을 사지 못 할 정권 치적 자랑에 거의 3분의 2를 할애했다. 서울동부구치소 등의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이후 기자회견에선 마지못해 형식적 사과를 했다.) 지난해 봄 신천지교회 이만희는 집단 예배를 강행한 책임으로 구속까지 됐었는데, 국가 수감시설의 미필적 고의 수준의 참사에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확인되는 문재인 정부의 2021년 기조는 우파의 눈치를 보며 사용자들의 요구에 더 확실히 부응하겠다는 것이다. 경제(기업) 살리기, 부동산 공급 확대 문제,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존중하는 해법을 찾겠다는 답변 등에서 이 점이 두드러졌다. 사면 거부가 그나마 기층의 염원에 부응했지만 그조차도 조건부 거부론이다.
부동산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는 ‘투기 근절이 목표’라고 말했지만 실상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추구해 왔다. 문재인은 공급 확대 방향으로 돌아서면서도 “공공 공급” 운운했는데, 정부의 공공임대 정책은 결코 노동계급 사람들을 안심시킬 주거 대책이 못 된다. 문재인은 새 장관인 변창흠을 통해 “공공이 역할을 하는” 공급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변창흠은 SH 사장을 하면서 사이비 공공임대 주택 정책을 지지하고 고수했다.(임대 입주 10년 후에 주변의 오른 시세를 반영해 분양하는 정책으로 임대 입주자 다수가 사실상 준강제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박근혜 사면을 반대한다면서 박근혜의 대표적 개악인 한일위안부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하고 일본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비난한 것도 위선과 모순을 보여 준다. 한·미·일 안보 동맹과 한일 경제 갈등에 대한 재계의 거부감을 중시해 피해자 할머니들을 배신한 것이다.
1년여를 ‘검찰 개혁’과 윤석열 찍어내기에 매진해 놓고는 이에 사실상 실패하자 이제 와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운운하는 흰소리를 하는 것은 검찰 개혁 드라이브의 명분이 완전한 위선이었고 허구였음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문재인은 윤석열이 야당 후보로 대선에 못 나오게 하려는 기막힌 책략이라고 여겼겠지만 말이다.
월성 핵발전소 문제에 대한 감사원·우파의 공격과 검찰 수사에 대한 질문에는 문재인은 감사와 수사가 정당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는 검찰총장 관련 발언처럼 실질적인 갈등이 없는 듯 호도하는 것일 뿐이다. 문재인의 진정한 관심사는 국가기관 간의 갈등을 덮어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지, 탈핵에 있지 않다.
문재인의 신년 기자회견은 중도파 정부가 친기업적 오른쪽으로 기준선을 옮기면서도 포퓰리즘 전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중대재해처벌법에 불만이지만 의의가 있으므로 만족하자는 답변에서 드러나듯, 왼쪽의 불만을 이용해 우파를 설득하고 우파의 반발을 이용해 좌파를 견제하는 줄타기도 계속될 것임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