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석방 촉구 시위:
러시아에서 왜 시위가 분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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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중 시위는 블라디미르 푸틴 하의 빈곤, 민주주의 부재, 불평등의 산물이다.
러시아의 평균 실질 소득은 지난 일곱 해 중 다섯 해에 하락했고, 2020년에만 3.4퍼센트 감소했다. 2020년에 평균적인 러시아인들이 지출할 수 있는 소득은 2013년보다 11퍼센트 줄었다. 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여러 보고서는 러시아가 지난 3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음을 보여 준다.
2017년의 한 연구를 보면, 러시아의 상위 10퍼센트는 전체 부의 87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상위 10퍼센트가 76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실업이 치솟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데, 보건 체계는 형편없고, 임금이 줄어드는 것이 평범한 러시아인들의 현실이다.
항의 목소리를 내고 시위를 벌이면 가혹한 탄압에 직면한다.
지난해 푸틴은 인기가 시들해지자 새 법을 통과시켜서 온라인 활동을 단속하고, 시위를 더한층 혹독하게 탄압하고, 경찰의 권한을 강화했다.
알렉세이 나발니가 반(反)푸틴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오른 것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지배계급 내의 치열한 쟁투 때문이다.
동유럽 정권들의 붕괴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변화가 아니었다. 1928년 이래 러시아에 존재한 체제는 국가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계급 사회였다.
1917년 혁명이 패배하자 그 폐허 위에서 국가 관료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장악력을 토대로 새로운 지배계급이 됐다.
그러므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로의 변화는 기존 체제의 정치적 재편이지 사회 혁명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였던 크리스 하먼은 한 형태의 자본주의에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 “게걸음”쳤다고 묘사했다.
신자유주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와 부총재를 지낸 사람이다. 그러나 훗날 러시아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반대했다.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는 새롭고 전례 없는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실제로 가져다준 것은 전례 없는 빈곤이다. 생활 수준 하락, 평균 수명 감소뿐 아니라 삶의 질 하락을 보여 주는 온갖 사회 지표로 드러난다.
“러시아에서 빈곤 인구는 40~50퍼센트로 늘었고 어린이가 둘 중 한 명 이상 꼴로 빈곤선 미만 가정에 산다.”
보리스 옐친은 소련 붕괴 이후 첫 대통령이 됐다. 옐친 정부는 세 집단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첫째 집단은 국가보안위원회(KGB)나 보안기관 출신이면서 여전히 정부에서 중심적 구실을 하는 인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옐친이 러시아를 서방에 팔아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그를 불신했다. 옐친은 이들을 주변화시키는 것으로 응수했다.
둘째 집단은 옐친과 혈연 등의 가까운 인적 연계가 있는 집단이었다. 일부는 구 정권 인사들과도 가까웠지만 그들과 직접적으로 결부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셋째 집단은 올리가르히였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여러 기업 부문을 장악했다. 이들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가난으로 내몬 “충격 요법”으로 득을 봤다.
올리가르히는 최고 권력자들의 약탈과 부패를 가능케 한 민영화, 매각, 경제의 전반적 혼란을 이용해 배를 불렸다.
올리가르히는 이전 공산당 정권과도 연계가 있었지만 서방의 다국적 기업이나 정치인들과의 협상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것의 한 사례는 올레크 데리파스카다. 데리파스카는 한때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다. 2008년에는 영국 노동당 우파 정치인이자 유럽연합 집행위원이었던 피터 맨델슨이 데리파스카의 초대형 요트에서 그를 만난 것이 폭로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맨델슨은 데리파스카에게 매년 5000만 파운드 규모의 무역상 양보 조처를 선사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보수당 예비내각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 보수당 정치자금 최고 조직자 앤드루 펠드먼도 데리파스카를 만났다.
이처럼 올리가르히는 부분적으로는 러시아의 다른 지배 엘리트들과 얽혀 있었지만, 독자적 이해관계도 있었다.
1999년에 대통령이 된 푸틴은 올리가르히가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푸틴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올리가르히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올리가르히를 숙청하기도 했다. 자산을 빼앗기도 했고 목숨을 빼앗기도 했다. 그래서 올리가르히 몇몇이 영국 런던에 살게 된 것이다. 이들은 “템스강의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발니는 푸틴에 대한 대중적 반감의 대변자를 참칭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나발니는 푸틴에게 “버림받은” 부유층 일부를 대변하기도 한다.
나발니는 여러 차례 정치 노선을 바꿨다. 나발니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민영화하고, 노동자 권리를 해체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고전적 신자유주의자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별로 인기 있는 노선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발니는 국수주의자로 변신했다. 2006년에 나발니는 유대인 혐오자, 무슬림 혐오자, 파시스트를 결집시키는 연례 행사인 “러시아 행진”에 일조했다.
“러시아 행진” 참가자들은 “러시아를 러시아인들에게!” 하는 구호를 외쳤다. 어떤 연설자들은 성소수자 혐오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음모론을 주장했다. 나발니가 지원한 어떤 시위에는 나치 철십자 상징이 전시되기도 했다.
2011년에 나발니는 한 영상에서 무슬림 이주민을 “바퀴벌레 떼”에 빗댔다.
그러나 국수주의와 인종차별은 경쟁자가 많은 영역이었다. 파시스트인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는 지난 총선에서 3위를 했고 사악한 강령으로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게다가 러시아 국가도 무슬림·소수자 적대의 대표 주자다.
푸틴 집권 직후 1999~2000년에 일어난 그로즈니 전투로 체첸 수도 그로즈니가 철저히 파괴됐다.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무슬림들에게 무시무시한 경고를 보내려는 것이었다.
최근에도 러시아 국가는 무슬림을 악마화하고 국가 권력 강화를 정당화하려고 테러 공격을 기획하거나 배후 조종했다.
10년 전 반(反)푸틴 시위 물결 동안에 나발니는 좌파적 주장이 인기를 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발니는 “반(反)부패”라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구호로 기조를 바꿨다. 나발니는 공무원 임금 인상, 연금 개혁 같은 쟁점들도 건드린다.
나발니는 서방의 꼭두각시로 그려지기도 한다. 물론,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최근 시위에 대한 탄압을 명분으로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보다 더 강경한 대(對)러시아 노선을 시사했다.
미 국무부는 민주주의 운운하는 전통적인 위선을 떨며 나발니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을 재빨리 비난했다.
국수주의
하지만 나발니는 단지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핵보유국 동맹들의 앞잡이가 아니다. 나발니의 정치 생명은 국수주의를 계속 내세우는 데에 달려 있다.
푸틴에 맞선 진정한 좌파적 반정부 세력의 출현이 어려운 것은 가짜 반정부 세력이 거듭 출현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나, 스탈린주의에 대한 향수로 결집해 있다.
이번 시위 이전에 일어난 시위 물결은 2011년의 소위 “눈꽃 혁명”으로, 총선 선거 부정이 그 계기였다.
당시 주요 지도자는 셋이었다. 그중 한 명이 나발니였다.
두 번째는 보리스 넴초프로, 옐친의 핵심 지지자였고 1990년대에는 옐친 정부의 부통령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에는 공공연한 푸틴 비판자가 됐다.
하지만 넴초프 세력은 자유 시장이 대중의 삶을 산산조각 내던 시기로 돌아가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인기를 얻기 힘든 정치였다.
2015년에 넴초프는 암살됐다. 러시아 금융 위기의 충격이 낳은 문제들에 항의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기 이틀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르게이 우달초프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우달초프는 “좌파적 반대파”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고, ‘붉은 청년 전위’라는 조직을 이끈다.
하지만 우달초프의 좌파 정치는 구소련을 동경한다. 우달초프는 스탈린 초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취를 모조리 파괴한 1930년대 스탈린의 공포 정치를 옹호한다.
우달초프가 속한 러시아연방공산당(이하 공산당)은 의회 내에서 푸틴에 맞서는 가장 큰 세력이다. 이 당은 2016년 러시아 총선(엄격하게 통제되고 부패한 선거였다)에서 13퍼센트를 득표했다.
그러나 공산당은 진정한 좌파의 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 구실을 한다. 공산당은 대개 푸틴에 맞서기보다는 푸틴을 돕는다. 그러나 현재 공산당 일부는 나발니를 지지할 태세인 듯하다.
최근 몇 달간의 용감한 시위는 반대파를 자처하는 이 모든 주류 세력들이 아니라 더 나은 정치적 대표체로 대표돼야 마땅하다.
개혁된 자유주의도, 스탈린주의로의 회귀도 평범한 러시아인들에게 필요한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시위대가 푸틴과 그의 국가 깡패들에 맞서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능동적으로 반정부 행동에 동참하는 데에 희망이 있다.
그리고 진정한 사회주의 사상과 1917년 러시아혁명의 사상이 대중적으로 부활하는 데에 그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