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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부도 위기:
일자리 보호 위해 국유화 필요하다

쌍용자동차 매각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쌍용차는 미국 HAAH오토모티브로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며 일단 부도를 피하고 시간을 벌었지만, 협상은 약속 시일을 이미 넘겼다. 최종 인수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2009년 쌍용차 부도와 협력업체 줄도산 사태가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 여부와 함께 인력 구조조정이 매각 협상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온다. 사용자 측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도 노동자 희생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자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같은 ‘자구안’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노동자 일자리 보호는커녕, 되레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대가를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쌍용차가 매각된다 해도 노동자들에게 결코 나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휴지 조각이 된 정부의 일자리 보호 의지 1월 21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이 고용 안정을 외면하는 이동걸 회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거부당하자 서한을 찢어 버리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노동자 희생 요구하는 정부

이런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쌍용차가 부도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복돼 왔다. 역대 정부들은 쌍용차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그것은 기업주와 채권단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뿐 노동자들을 구하지 못했다.

가령, 노무현 정부가 2004년에 쌍용차를 ‘먹튀’ 가능성이 높은 상하이차에 매각한 것은 비극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정부는 워크아웃 기간에 쌍용차에 1조 2000억 원을 쏟아붓고는, 투입한 돈의 절반도 안 되는 헐값에 상하이차로 매각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에 상하이차가 부도를 내고 떠날 때도 마지막까지 지분을 팔아 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방조했다. 이듬해 쌍용차를 마힌드라에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온갖 특혜를 제공했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들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2009년에만 3000여 명이 해고됐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 일부는 가정이 파탄 나는 아픔을 겪었고, 노동자와 가족 3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간신히 일자리를 지킨 노동자들도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보장 받지 못했다. 지난 11년 동안 거듭 임금이 깎이고 노동강도가 세졌다. 2019년에는 두 차례 ‘자구안’을 시행해 성과급·상여금 반납, 기본급 동결, 각종 복지의 대폭 축소를 단행했다.

금속노조 등 노동운동 내 일부는 쌍용차 위기의 원인을 “외국 투자기업의 특수성”(〈매일노동뉴스〉)에서 기인한 것으로 진단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대안으로 ‘먹튀 방지법’ 등 외국 투자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상하이차나 마힌드라 등의 ‘먹튀’ 문제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을 단지 해외 자본의 ‘먹튀’ 문제로 다루는 것은 협소한 접근이다.

해외 기업에 매각되기 전에도 쌍용차는 1998년 대우그룹에 매각됐다가 1999년 대우그룹 부도로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이 시작됐다. 반복되는 쌍용차 위기가 1997년 IMF(를 부른) 경제 공황, 2008년 세계경제 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찾아온 유례 없는 경기침체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자본주의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침체는 점점 더 길어지고 깊어지는 동안, 완성차 업체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약체인 쌍용차는 심각한 위기를 되풀이했다. 그리고 냉혈한 자본주의 시장 논리 속에 노동자들은 일자리와 삶을 보호받지 못한 채 끔찍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따라서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일자리 보호를 위해 체제의 시장 논리에 도전해야 한다.

일시적 국유화는 고용에 도움 안 된다

앞서 봤듯이,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위기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이다. 쌍용차 노사가 스스로 회생 방안(매각이나 강도 높은 ‘자구안’ 마련 등 노동자 희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쌍용차 위기에 적잖은 책임이 있다.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하고, 마힌드라에 매각한 것은 정부가 법정관리로 쌍용차를 사실상 소유하고 있던 상황에서 벌어졌다. 노동자들을 대량해고 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무엇보다 정부는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할 책임이 있고, 국가만이 이를 위한 자원을 동원할 능력을 갖고 있다. 정부는 위기에 빠진 기업주들을 살리려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왔다. 지난해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과 경제침체 상황에서 전 세계 국가들이 기업 파산을 막으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지원했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 돈은 기업주들이 아니라, 경제 위기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기업주가 회사를 운영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쌍용차를 소유·운영하는 국유화만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를 제기하며 투쟁하는 것은 쌍용차 일자리 문제를 국가 차원의 정치 이슈로 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국가 소유가 더 진보적이거나 모종의 사회주의적 조처라고 환상을 가져서 국유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 보호라는 노동자들의 즉각적인 필요를 위해 국유화가 필요한 것이다.

국유화 요구는 기업주의 책임을 분명하게 묻는 방식이기도 하다. 기업주가 공장을 폐쇄하거나 부도를 내면 정부가 경영주와 채권단이 갖고 있는 지분을 무상으로 몰수해 소유권과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쌍용차 부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노동운동 내에서도 대안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1월 중순 금속노조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도 산업은행의 출자전환, 일시 국유화, 쌍용차·한국지엠·르노삼성 등 해외투자 완성차 기업들을 하나로 묶어 공기업화하자는 방안 등이 제시되기도 했다.

매각을 위한 기업 회생

이런 주장들은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대가를 치르게 하지 말고 정부에 일정한 책임을 묻자는 취지에서 제기된다. 그럼에도 당면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가령, 일시 국유화는 말 그대로 쌍용차가 매각될 때까지 임시적 조처로서만 국유화를 유지하는 것으로, 공적자금 투입이나 산업은행의 출자전환 등과도 결합되곤 하는 법정관리를 뜻한다. 한국 정부를 포함해 각국 정부들이 취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산업은행이 쌍용차 지원의 대가로 노동자 희생을 요구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일자리 보호와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일시 국유화는 매각을 위한 기업 회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노동자 해고와 조건 악화가 수반된다.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2009년 쌍용차 법정관리 하에서 대량해고가 벌어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매각을 전제하는 일시 국유화가 아니라, 일자리 보호를 위한 영구 국유화 요구가 필요하다.

일부 좌파는 해외투자 완성차 업체들을 공기업화하는 산업 국유화(조선·항공 산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요구를 제기했다)를 대안 경제 모델(강령)로서 제시한다. 그러나 국내외 여러 국유화(혹은 국가자본주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국유화나 국가 통제는 노동자들에게 반복된 위기의 대가를 떠넘기는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산업 국유화를 주장하는 일부 좌파는 단위 기업 차원의 국유화 요구와 투쟁을 중시하지 않는 약점이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당면한 일자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전술) 제시를 회피하는 것이다.

산업 국유화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외투기업 3사를 통합한 공기업을 만들어서 규모를 키워야 전기차·수소차 등 생산으로 전환하기가 용이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러나 해외 투자기업들을 통합해 공기업으로 만들더라도 국내적·국제적으로 전개되는 치열한 경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속에서 통합 공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들은 또다시 희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노동운동은 기업의 경쟁력, 시장 경쟁력 논리에 정면 도전하면서 일자리 보호를 위한 영구 국유화를 요구해야 한다. 물론, 국유화 요구를 성취하려면 아래로부터 노동계급의 투쟁이 결정적이다. 당장 우리 눈앞에 국유화 요구를 성취할 강력한 투쟁이 분출하지 않더라도, 혁명적 좌파는 참을성 있게 산업 현장에서 그런 투쟁을 이끌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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