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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우버 기사들, 최저임금·휴가수당·연금 등 쟁취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플랫폼 노동자도 저항할 수 있다 2018년 10월 9일 영국 이스트런던 알드게이트에서 벌어진 우버 기사들의 파업 ⓒ출처 Steve Eason(플리커)

영국의 우버 기사들이 사측으로부터 종속적 고용관계에 있음을 인정받고 노동조건 개선을 쟁취했다. 3월 17일 영국 우버 사측은 기사 7만 명을 ‘노무제공자(worker)’로 재분류하고, 최저임금·휴가 수당·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영국 대법원이 우버 기사들이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무제공자 지위에 있다고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후속 조처다. 영국 대법원은 기사들이 “우버에 종속적이고 의존적인 위치”에 있다고 밝혔다.

우버는 대표적인 차량 공유 플랫폼 기업이다. 한국의 다른 플랫폼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우버 사측은 기사들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라고 주장하면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런 주장과 달리 실제 현실에서 우버 사측은 기사들을 통제해 왔다. 알고리듬은 기사들의 시간과 업무수행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우버는 수수료 조정으로 기사들의 임금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기사들의 근태도 통제해 왔다. 기사가 제공한 루트에서 벗어나 운전하면 우버는 수수료를 삭감했고, 평점이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아예 기사의 계정을 비활성화시켰다.

기사들은 우버로부터 요금의 25퍼센트에서 많게는 50퍼센트가 넘는 돈을 떼이면서도, 보험료, 자동차 유지비까지 자기 돈으로 내 왔다. 우버는 이런 위장 자영업자 지위를 이용해 퇴직금, 사회보험, 최저임금 등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피하며 돈벌이를 해 왔다.

2019년 우버가 막대한 적자를 본 상황에서, 우버와 우버이츠(음식 배달원)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폭증한 수요를 감당하며 사실상 기업을 떠받쳐 왔다. 그러나 반대로 보호와 지원은 거의 받지 못했다. 지난해 런던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린 한 우버 노동자가 자가격리 중 몇 주간 굶주리다가 사망한 일도 있었다.

우버 기사들이 자영업자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결과 사측의 양보는 우버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둔 성과다. 영국독립노조(IWGB)의 개인호출운전자지부 부위원장 네이더 아와드는 이렇게 지적했다. “우버는 명백하게 기사들이 가한 압력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 우버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파업과 법정 소송 등을 진행하며 투쟁해 왔다. 우버만이 아니라 딜리버루 등 다른 플랫폼 노동자들도 그간 수차례 파업과 투쟁을 해 왔다.

팬데믹과 플랫폼 노동자

이 노동자들은 온전한 노동자로서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영국 대법원은 우버 노동자들에게 법률상 노무제공자 지위만 인정했다. 이는 노동법상 가장 폭넓은 보호를 받는 ‘피고용인(employee)’ 지위에 미치지 못한다. 해고도 좀 더 유연하게 할 수 있고, 퇴직금·상병수당 등도 받지 못한다.

1990년대 이후 유럽연합과 주요국 정부들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온전한 노동자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자영업자와 노동자 사이의 제3지대를 만들어 일부 보호를 제공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의 노무제공자 지위도 이런 방식 중 하나다.(독일의 ‘유사근로자’, 프랑스의 ‘종속적 계약자’도 이와 유사한 방식이다.)

물론 이것이 노동자들을 자영업자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플랫폼 노동자들도 전통적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사측으로부터 노동을 통제받고 착취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노동법상 보호를 받아야 한다.

영국의 우버 노동자들은 이번 사측의 양보를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우버 사측의 약속은 여전히 대법원 판결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국 대법원은 기사들이 앱에 접속하고 종료하는 동안 최저임금 등을 적용해야 한다고 명확히 판결했지만, 우버 사측은 대기 시간을 제외하고 승객을 태운 시간에만 이를 적용하려 한다.

또, 우버 사측은 이번 양보를 수만 명의 우버이츠 노동자에게는 적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양보하긴 했지만 여전히 최대한 이윤을 쥐어 짜는 데만 혈안인 것이다.

우버 노동자들은 노조 인정, 부당해고에 항의할 수 있는 절차, 그간 지급하지 않은 최저임금 등의 소급 지급 등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우버 노동자들이 얻어 낸 이번 성과는 한국에서 비슷한 조건에 맞서 싸우는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즉, 플랫폼 노동자들이 너무 불안정하고 파편화돼 있어서 싸울 수 없다는 일각의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 준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할 수 있고,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투쟁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9년 노동부는 요기요 배달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인정한 바 있다. 최근 쿠팡이츠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하고 사측의 배달료 인하에 항의하며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배달의민족 라이더들도 최근 사측이 ‘번쩍 배달’(45분 내 배달)을 실시하며 노동강도가 크게 늘고 수입이 줄어서 이에 항의하며 시한부 파업에 나섰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자들의 저항이 전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