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김샘 독자의 질문에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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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샘 독자가 보내 온 독자편지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되는가’를 읽고’에 답한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독자편지]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되는가’를 읽고”를 읽으시오.
사실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되는가’ 하는 기사에 나온 것처럼 인플레이션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복잡한 현상이고, 이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으로 제대로 이해하려면 추가적인 연구와 토론이 필요합니다.
질문해 주신 “자본축적률은 높은데 이윤율이 낮을 때 인플레이션이 벌어진다”는 안와르 샤이크의 주장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와르 샤이크는 경기순환, 화폐와 신용의 공급과 함께 과잉수요가 지속되는 것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라고 봅니다. 여기서 과잉수요의 핵심 원인으로 자본축적의 증가세는 높은데 반해 이윤율은 낮은 상황을 꼽습니다.
자본축적의 증가세가 높다는 것은 자본가들이 투자를 많이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 기계, 원자재, 노동력 등에 대한 수요도 많은 상태가 됩니다.
만약 이윤율이 높은 상황이라면 벌어들이는 이윤이 충분하기 때문에 축적에 필요한 수요(즉, 투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도 투자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하면, 이윤의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아 과잉수요가 생기면서 인플레이션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970년대에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장기 호황 시기에는 높은 이윤율을 기반으로 투자 증가세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는 이윤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도 각국 기업들은 기존의 관성에 따라 높은 수준의 투자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벌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세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국 기업들이 국제적 경쟁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이었고, 각국의 독점적 대자본들은 물가 인상을 통해 떨어지는 이윤율을 만회하고 그 대가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기도 지금보다는 쉬웠습니다. 또 1970년대 초에 위기가 닥치자 각국 정부들은 일단 케인스주의적 정책으로 대응했는데, 이것도 수요를 높이는 요소가 됐습니다(물론 케인스주의 정책이 이윤율을 높이지 못하자 각국 정부는 곧 케인스주의 정책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의장 폴 볼커가 1979년~1982년 금리를 20퍼센트로 올리면서 저성장과 높은 물가상승률이 계속되는 상황(스테그플레이션)은 끝을 맞게 됩니다. 취약해진 여러 기업들이 파산했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낮아진 이윤율에 맞춰 투자 수준을 낮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이 노동계급에게 큰 고통을 줬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2008년 이후 장기 불황 상황에서는 이윤율도 낮고, 투자 증가율도 낮은 상황이 계속돼 왔습니다. 그래서 주요국 정부들이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물가상승률은 낮은 상황이 지속된 것입니다.
현재 세계경제도 투자 증가율이 높지 않고, 이윤율도 낮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공급 차질이 해소되면 다시금 장기불황의 패턴, 즉 저성장·저물가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있어서 이로 인한 공급 차질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말입니다.
한편, 터키 리라화의 가치 폭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일차적으로는 터키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쓰면서 외화가 빠져나간 것이 원인입니다. 앞서 썼듯이 인플레이션은 다양한 요인 때문에 발생할 수 있고, 화폐가치 하락도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낳을 수 있는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터키의 사례도 단지 화폐적 현상만이 아니라 실물 경제의 이윤율 등과도 관련이 돼 있습니다.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은 리라화 가치 절하를 통해 터키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서 터키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이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경쟁력이 강화되면 외국자본의 터키 투자도 다시 늘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을 단지 화폐적 현상이라고 보거나 여러 피상적인 이유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근본에서 이윤율, 축적률 등을 종합해서 봐야 하고, 이에 기반한 분석을 더 발전시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자료: Explaining Inflation and Unemployment: Neoliberal Economic Theory, Anwar M. Shai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