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조, 위원장 탄핵이 보여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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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공공운수노조 소속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동조합의 전무환 위원장이 탄핵됐다. 노조의 12개 본부 본부장이 주도하고 조합원 7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탄핵안이 투표율 83.1퍼센트(1만 1139명)에 찬성율 76.4퍼센트(8515명)로 가결된 것이다.
탄핵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언론은 고객센터(콜센터) 비정규직의 소속기관 전환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정규직들이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 복잡하다.
탄핵안은 위원장 탄핵 사유로 7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 중 적잖은 항목이 정규직 조합원들의 이익을 제대로 방어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예컨대, 탄핵안의 첫째 사유는 2021년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위원장이 절차를 무시한 채 단체협약을 자동 갱신하고,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확정했다는 것이다.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은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그런데 위원장이 교섭도 없이 단협 갱신을 직권조인 한 것은 불만을 크게 살 일이다.
또, 사측이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여러 개악을 관철시키고 있는 것, 승진이나 인력 충원을 위한 여러 협의체가 가동되고 있지 않은 것도 탄핵 사유에 포함됐다.
요컨대, 탄핵에서 드러난 조합원 불만의 적잖은 부분은 정규직 위원장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그 책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조합원들의 이익을 지키겠다며 비정규직 연대를 거부한 정규직 노조 위원장이 사실은 자기 조합원 이익도 제대로 지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번 탄핵 사유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불만만 반영된 것은 아니다. 못지 않게 중요한 쟁점으로는, 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투쟁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목소리도 섞여 있다. 위원장이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소속기관 전환을 막지 못했다는 점도 탄핵 사유에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이번 탄핵에는 기층 노동자들의 정당한 불만과 일부 보수적 반발이 섞여 있는 모순이 있다.
이번 건보 정규직 노조 위원장 탄핵으로 돌아볼 지점들이 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에 연대하지 않는다면 결국 공동의 적인 사용자에 맞설 힘도 약화된다는 것이다.
약화
그간 공단 측은 노노갈등을 부추기며 노동자들을 갈라치기 해 왔다. 그런데 탄핵된 정규직 노조 위원장은 공단 측의 이간질과 각개격파에 맞서기는커녕 되레 분열을 주도했다. 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일 때, 정규직 노조 지도부는 자신의 조합원 일부를 대체인력으로 투입했다. 힘을 합쳐서 같은 사용자에 맞서지는 못할망정 공단 측이 가장 바라는 일을 앞장서서 해 준 것이다.
그러나 공단 측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물리치는 데 정규직 노조의 반대를 이용하면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인력충원이나 승진 문제)을 묵살하고 심지어 개악도 추진해 왔다.
그러므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건을 방어·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를 구축하려고 애써야 한다.
본지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지 않으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할 때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합원이 1만 3000명이나 되는 잘 조직된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내친다면, 결국 자신들의 투쟁 명분도 약화된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단결과 계급의식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을 백안시하는 것은 아니다. 건보 정규직 노동자들 내부에도 의견 차이가 있다. 비록 비정규직에 연대해야 한다는 세력이 결집되지 못해 그 목소리가 미약했던 게 아쉬움이었다.
본지가 이전에 지적했듯이, “[비정규직이] 투쟁으로 조건 개선을 쟁취하는 것이 ‘불공정’하고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논리는 정규직에 대한 호봉제 공격이 벌어질 때나 승진 문제 등에 고스란히 되돌아올 수 있다.”
경쟁 논리가 아니라 계급적 단결을 구축해 공단 측을 압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노조 부문주의를 뛰어넘는 정치를 가진 활동가들의 존재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