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위험한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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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을 대거 폭격했다.
이 공세는 우크라이나군이 미사일 공격으로 러시아군의 모스크바함을 흑해에서 침몰시킨 데 대한 보복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함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우크라이나군이 모스크바함 공격으로 러시아군의 사기를 꺾을 뿐 아니라, 첨단무기 운용 능력을 과시해 서방의 지원을 촉구하는 목적도 있다고 풀이했다.
러시아의 이번 공격으로 마리우폴은 거의 함락됐다고 한다. 그 공격 며칠 전에 푸틴은 “애초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군사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마리우폴을 점령하려고 벌였던 유혈 참극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이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를 완전 점령하기 위한 작전들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전장이 확대되면서 사상자는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스웨덴과 핀란드
푸틴이 말한 “애초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국가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가해 나토의 동진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나토는 외려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와 인접국인 스웨덴의 나토 가입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4월 14일 핀란드·스웨덴 양국 총리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나토 가입 신청 여부에 대한 검토를 몇 주 안에 마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핀란드 국경에서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거리는 서울-대전보다 더 가깝다. 러시아로서는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에서 우세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목에 칼이 들어오는 형국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14일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발트해는 더는 핵 무풍지대가 아니다” 하고 말했다. 같은 날 발트해 연안 국가 리투아니아의 국방부는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를 배치했다고 주장하며 우려를 표현했다.
칼리닌그라드는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스웨덴과 마주한 러시아 역외 영토로, 육지로는 폴란드·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곳에 핵탄두를 배치한다는 것은 북·서유럽 전체를 사정권에 놓겠다는 것이다.
나토도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는 러시아군이 작전을 벌이고 있는 흑해에서 나토군이 러시아군 항공기의 활동을 감시하는 대규모 항공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과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좀 더 커진 것이다.
나토의 주도국 미국은 러시아 압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푸틴을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범한 “전범”으로 규정했다. 국무장관 블링컨은 러시아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백린탄을 쓸 때는 침묵하던 미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핏대를 세우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늘리려는 포석일 것이다.
이에 발맞춰 미국 상원은 재래식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무제한 지원하는 무기대여법을 만장일치로 재가동했다. 81년 전 이 법이 제정됐을 때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유혈낭자한 전쟁인 제2차세계대전이 진행 중이었다.
항공모함과 순항미사일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시아에서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일주일 전인 4월 12~14일,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이 동해상에서 일본 자위대와 연합훈련을 벌였다. 미국 항공모함이 동해에 진입한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훈련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하는 것이었지만, 러시아를 압박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도 경계 태세를 높였다. 그리고 푸틴은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응해 자국의 핵 전력 경계 태세를 높였는데, 미국은 동해에 항공모함 전단을 투입해 이 함대를 견제한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동해에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렇게 동해에서 군사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미국·러시아뿐 아니라 중국도 자극하는 일이다.
한국은 이번 연합훈련에는 불참했지만,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에 협조해 왔다. 지난주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국회 연설 직후 한국 정부는 군수 물자 20억 원어치를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하는 등, 러시아 압박을 위한 미국의 군사 지원에도 동참하고 있다.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지금, 한국이 미국을 편들며 긴장 고조에 일조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정의당의 젤렌스키 국회 연설 지지는 우크라이나 평화를 돕는 길이 아니다
4월 11일 젤렌스키의 국회 화상 연설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기술과 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본지 412호 ‘젤렌스키 한국 국회 연설은 확전에 기여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와 이동영 수석대변인은 젤렌스키의 국회 연설을 “적극 지지하고 연대”한다고 밝혔다. 여 대표는 젤렌스키가 “무기를 비롯한 지원을 호소”한 데 대해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진보당은 젤렌스키 국회 연설에 관해 논평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수석대변인의 말과 달리 이 전쟁은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위[한] 처절한 사투”라고 보기 어렵다. 러시아군의 승리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젤렌스키와 서방의 승리도 이런 것들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관련 기사 본지 411호 ‘제국주의 간 충돌에서 누가 승리하든 우리의 패배다’)
이미 젤렌스키 정부는 이 전쟁이 끝나도 “향후 10년은 안보가 최우선일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회의 군사화를 공언해 왔고, 배타적 애국주의 프로파간다와 군대 숭상을 부추기며 이를 비판하는 야당들을 탄압하고 있다.
젤렌스키의 연설은 이 제국주의적 충돌에 한국 정부가 더 깊숙이 관여하라고 촉구하는 셈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방향이다.
‘국익’ 논리
그간 정의당은 평화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지정학적 갈등 문제들에서 ‘국익’ 논리를 따라 왔다. 정의당은 한국 국가의 군비 증강에 반대하지 않았고, 대북 문제 등에서 한국과 미국 중심 ‘국제사회’ 질서 수호를 편들어 왔다.
또, 외교·안보 문제에서 ‘국익’을 유능하게 지키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 애써 왔다.
정의당이 지금은 평화주의적 언사를 발하지만, 그런 논리로는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한국 지배자들의 친서방 태세를 추수해 서방 측 동맹에 일조하는 방향으로 쉬이 미끄러질 수 있다.
젤렌스키의 요구가 살상무기 지원인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데에] … 정의당도 함께하겠다”고 답한 것이 그 한 사례다. 이는 정의당의 평화주의가 일관되지 않음을 드러낸다.
한국 등의 (친)서방 정부들과 언론들은 이 패권 다툼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로 포장하고 여기에 관여하는 것을 도덕적 책무로 내세우며 세계를 더 위험한 곳으로 몰고 가고 있다. 정의당의 입장은 이런 전쟁 몰이에 맞서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