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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배운다
파시스트에 맞서 우파에게 투표를 해야 하는가?

프랑스에서 파시스트 마린 르펜이 24일에 치러지는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일부 사람들은 파시스트의 당선을 막기 위해 좌파가 신자유주의자인 마크롱에 투표할 것을 호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2년에 파시스트이자 마린 르펜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이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했을 때에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고(故) 크리스 하먼은 당시 그런 주장을 반박하면서 1930년대 민중전선을 지지한 것과 비슷한 오류라고 지적했는데 오늘날에도 유용해서 소개한다.
“르펜도 아니고 마크롱도 아니다” 학생들에 의해 점거된 소르본대학 ⓒ출처 Victor Mérat

현 시대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과거의 쟁점이 새로운 형태로 제기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장-마리] 르펜이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사회당 총리인 조스팽을 무찌르며 2위를 차지하자, 이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프랑스 혁명 좌파들이 벌인 논쟁이 그런 경우이다. 이 논쟁은 1930년대 혁명가, 공산당 지지자, 사민당 지지자들이 민중전선을 둘러싸고 벌인 논쟁과 판박이였다.

수십만 명이 벌인 르펜 반대 시위는 지난해 예테보리, 제노바, 바르셀로나에서 있었던 반자본주의 시위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그러나 르펜 반대 시위의 참가자 대부분은 르펜을 막으려면 거리 시위 말고도 필요한 것이 더 있다고 여겼다. 결선 투표에서 우파인 시라크에게 투표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리와 투표소에서 르펜에 반대하자”가 이들의 슬로건이었다.

혁명적 좌파는 [결선에서 르펜과 맞붙은 우파 정당의 후보 자크] 시라크에 투표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 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혁명적 조직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회원 대다수는 그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결국 시라크에 투표하라는 입장을 채택했다. 이 점에서 그들은 1930년대 중반 스페인의 안드레우 닌과 프랑스의 빅토르 세르주 같은 이들이 걸었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요 부르주아 정당이 참여한 민중전선을 철저하게 반대한 레온 트로츠키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혁명적 좌파가 파시즘에 반대하는 대중의 정서와 괴리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물론, 프랑스의 또 다른 혁명적 단체인 노동자투쟁(LO)은 매우 거슬리는 방식으로 시라크 투표에 반대한 탓에 고립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라크에 투표하자”는 입장에는 큰 결함이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에 대항해 보수의 대부 격인 힌덴부르크가 “차악”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똑같은 주장을 했다. 9개월 후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보다 10년 전 이탈리아의 개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당시 총리를 배출한] 자유당에 의존했다. [하지만] 1922년 10월 자유당 의원들은 무솔리니의 첫 정부 수립을 지지했다. 두 경우 모두 대자본가들은 파시스트의 집권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경제적, 사회적 위기의 시기에 노동계급 운동을 분쇄하려면 파시스트의 집권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대자본가들이 후원하는 정당들은 이런 판단에 따라 보조를 맞췄다.

오늘날 프랑스 자본주의가 파시즘의 집권을 원했다면 시라크는 힌덴부르크나 이탈리아 자유당처럼 파시즘의 집권을 막지 못할 것이다. 시라크는 과거에 르펜과 거래를 한 바 있고, 앞으로도 자신에게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르펜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거리와 일터에서 대규모 행동이 일어나도록 준비하는 것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프랑스의 상황은 아직 1922년 이탈리아나 1933년 독일과 같지 않다.

르펜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조스팽의 득표율이 거의 바닥을 친 탓에 20퍼센트 미만인 극우 득표율이 커 보였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좌파 정당들의 득표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적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의 후보인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르펜이나 조스팽보다 더 많이 득표했다.

프랑스 자본주의는 이윤 유지를 위해 르펜과 같은 나치에게 의존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 있지 않다. 특히나 거리 시위의 규모를 확인한 프랑스 자본가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굳이 사회 격변의 위기까지 감수하면서 르펜 집권이라는 도박에 나서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프랑스 최대의] 자본가 단체인 메데프는 시라크에 대한 단호한 지지를 표명했고, 다수의 프랑스 언론은 르펜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의욕적으로 벌였다. 이들은 우익 유권자들 사이에서조차 시라크가 르펜보다 두 배나 많은 표를 받아 확실한 승리를 거두게 했다.

다시 말해, 르펜의 당선을 막기 위해 좌파가 시라크에게 투표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좌파가 시라크를 지지한 것은 매우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르펜 정당의 원내 진입을 막을 다른 방법이 없다면, 총선에서도 우파를 지지하며 좌파가 사퇴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르펜을 찍은 수백만 표가 결코 대수롭지 않은 것은 아닌데, 시라크 투표에 반대했던 단체 중 한 곳인 노동자투쟁당(뤼뜨 우브리에르)은 대수롭지 않다고 암시한다. 르펜의 득표 규모 자체는 중요하다. 이 득표 덕분에 르펜은, 기성 정치권에 갈수록 환멸을 느끼는 이들에게 주요 대안 세력인 양 행세할 수 있다. 그러나 르펜이 선거로 이루려는 바는 그것이 아니다. 이는 르펜이 3년 전 [자신의 당] 부대표인 브뤼노 메그레와 갈라섰을 때 분명해졌다. 르펜은 전투적인 파시스트 세력을 만만찮게 양성해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모방하고 싶어하며, 그에게 선거는 이를 위한 발판일 뿐이다. 프랑스 극우파의 전통적인 기반은 부유한 중간계급의 일부다. 르펜은 이 전통적인 기반에서 출발해, 하층 중간계급과 실업자 및 노동계급 일부에도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르펜은 그러려면 기존 정치 질서를 모두 반대하는 “아웃사이더”를 자임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학자 스테판 와니시가 말했듯이 “르펜이 꿈꾸는 구도는 [그의 정당] 국민전선과 ‘공화주의 전선’의 결투로 좌우 분단을 허무는 것이다. 르펜은 총선에서 자당의 후보자들에 맞선 ‘공화주의 전선’이 결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되면 르펜은 의회의 좌파와 우파에게 낙담한 모든 이들에게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우파를 위해 사퇴하는 것은 르펜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 될 것이다. 르펜이 불만에 가득 찬 수백만 명의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한 주장이 엉터리라는 점을 폭로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런 사람들에게 기존 질서에 대한 진정한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시라크에게 투표하라고 주장한다면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라크에게 투표해 르펜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시위대로부터 스스로 단절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시라크 투표에]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가 동의하는 것들을 놓고 함께 행동합시다. 거리로 나가 르펜이 진짜로 대변하는 것이 무엇인지 폭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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