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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시스트 장마리 르펜 죽다
그러나 그가 남긴 파시즘 운동은 죽지 않았다

프랑스 파시스트 지도자 장마리 르펜이 죽은 1월 7일 밤 파리 거리에서는 춤판이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환호했다. “더러운 인종차별주의자가 죽었다,” 혹은 더 간단하게 “멋진 날”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권세 있는 정치인들은 기뻐하는 시위대가 “고인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경악했다. 프랑스 내무장관 브루노 르타이오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축하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한 인간의 죽음은, 그가 정적이라 할지라도 자제와 엄숙함만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환호가 넘치는 이런 광경은 매우 무도하다.”

제정신인가? 국민전선(FN) 전 지도자 장마리 르펜이 자신의 적에게 존중을 표한 적이 있나?

나치의 가스실 학살을 부인할 때 르펜은 자신의 적을 “존중”했던가? 1987년 르펜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2차세계대전에 관한 1000쪽짜리 책을 보면, 강제 수용소는 고작 두 쪽이고, 가스실은 10~15줄로 다뤄진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사소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대계 프랑스인 7만 6000명을 살인 공장으로 보낸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프랑스 점령이 “딱히 비인도적이지 않았다”고 묘사할 때 르펜은 자신의 적을 존중했던가?

1988년 르펜은 유대계 장관 미셸 뒤라푸르의 이름으로 “오래 타는 화장터”라는 역겨운 말장난을 하며 그를 비하했다(프랑스어로 ‘뒤라’는 ‘오래 간다’는 뜻이고, ‘푸르’는 ‘오븐’이라는 뜻이다). 뒤라푸르는 존중받을 자격이 없었나?

프랑스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과 전쟁할 당시 공수부대에서 복무하던 르펜에게 고문당했다고 증언한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가? 알제리인들은 존중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르펜이 허구한 날 공격한 무슬림들은 어떤가? 르펜은 무슬림을 향한 인종차별적 증오 발언으로 2003년, 2005년, 2008년, 2011년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물론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이슬람을 악마화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건 거의 소용이 없다. 그들에게 이슬람 악마화는 일종의 국기(國技)가 됐다.

르펜은 생전에 어떤 존중도 표한 적이 없고, 죽어서 존중받을 자격이 조금치도 없다.

주류 언론들은 조사에서 르펜을 “실언 제조기” 혹은 “선동꾼”이라고 간단히 무시한다. 그가 내뱉은 말들이 어릿광대의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르펜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것이고 더 큰 계획의 일부였다.

나치

르펜은 투철한 나치였다. 그는 대학 시절 좌파를 상대로 거리 전투를 벌이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국민전선을 창당하기 전 르펜은 음반 기획사를 운영하며 나치 군가를 알리고 점령기에 나치에 부역한 프랑스 지식인들을 찬양하는 음반을 제작했다.

르펜은 프랑스가 갈리아 문화와 로마 가톨릭이라는 뿌리와 “자연의 섭리”에서 일탈했기 때문에 프랑스가 “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자연의 섭리는 가족, 조국, 교육, 살아 있는 세계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르펜은 자신이 갈구하는 프랑스를 만들려면 국가를 장악하고 국가를 자신의 비전대로 변화시킬 운동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바로 파시즘 운동 말이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특히 나치가 운영하던 강제 수용소의 실상이 폭로되고 난 후, 파시즘은 지지를 얻기 힘들었다. 나치 점령의 대가를 몸소 치른 수많은 사람들은, 인종적 순수성을 추구하고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파시즘 사상을 역겨워했다.

극우 정치를 고수한 극소수 활동가들은 1930년대의 전략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1970년대 초 국민전선이 창당됐을 때, 그 당의 지도자들은 주류 정치 진출이 차단당하지 않으려면 “파시스트” 딱지를 피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권력 장악으로 가는 길이 평화적이지 않을 것임을 이해하는 확고한 중핵이 파시즘 운동에 필요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1970년대 초 이래로 르펜을 비롯한 국민전선 지도자들은 당국이 용인하는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화법을 발전시켰다. 이를 두고 짐 울프리스와 피터 피시는 저서에서 “이중 담론”이라고 불렀다.

울프리스와 피시가 설명하기를, 그 담론의 한 부분은 “공식적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서, 스스로를 주류 정치의 정당한 일원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다른 한 부분은 “비공식적이고 암묵적인 것으로서, 국민전선의 반(反)민주적·권위주의적 노선을 반영한다.”

국민전선의 강경한 발언은 “국민전선 조직과 주변 사이, ‘강경’/‘온건’ 지지층 사이의 긴장을 고의로 조장하는 것으로, 동조자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그들을 국민전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르펜의 공격적 발언은 말실수가 아니라, 국민전선의 파시스트 중핵을 확장·단련시키려는 주도면밀한 노력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발언들에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1990년대에 국민전선은 이민 문제에 관한 독자적 슬로건을 고안해 내 당의 대변자들과 활동가들이 끝없이 되풀이하게 했다. 이민을 “침공”이라고 일컫고, “용인 가능한 수준”의 이민자 유입, 외국인들의 “소란과 냄새” 운운하는 것 등이 그런 사례다.

1990년대 당시 파리 시장이자 훗날 대통령이 되는 주류 우파 정치인 자크 시라크가 이민자들을 두고 시끄럽고 냄새난다고 했을 때 국민전선 지도부는 쾌재를 불렀다.

주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발언에 파시스트들의 표현과 논점을 차용하기 시작하자, 국민전선 지도자들은 이렇게 우쭐거릴 수 있었다. “원조와 복사본 중 누가 더 낫나?”

파시스트들은 중도 정치인들의 이민자 정책과 담론 모두를 자신의 지향으로 기울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덕분에 국민전선은 프랑스 정치의 중심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대선에 도전한 것이다.

인종차별에 더해 르펜은 프랑스 정치권 중심부의 정치인들이 좌우를 불문하고 “모두 별세상에 사는 썩어 빠진 공모자들”이라고 비난했다.

르펜이 2002년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해 시라크의 유일한 대항마가 돼 경악을 자아냈다. 르펜은 결국 큰 표차로 떨어졌지만, 강경하고 인종차별적인 공약으로 500만 표 가까이 득표했다.

이미지 세탁

그러나 정치적 야망이 있는 국민전선 인사들 대부분이 보기에 그 정도 득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들은 르펜에게 당권을 맡기지 않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국민전선이 이미지 세탁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2년 대선 이후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 당권을 잡고 숙정을 시작했다. 주류 우파에 더 가까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고 주류 우파 정당들과 협력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린 르펜은 아버지 르펜의 유대인 혐오와 거리를 두고, 나치 수용소를 “야만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2015년에 마린 르펜은 당의 명예 총재로 남아 있던 아버지 르펜을 출당시켰다. 아버지 르펜의 거듭된 홀로코스트 부인은 “그의 목표가 당에 해를 끼치는 것임을” 보여 줬다고 했다. 3년 후 마린 르펜은 당명을 국민연합(RN)으로 바꿨다.

그러나 포장을 바꿨을지언정 국민연합의 목표는 국민전선과 같다. 파시스트의 지도하에 극우를 결집시키는 것이다. 국민연합의 후보들이 노골적인 나치 단체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고 근래에도 인종차별적이고 유대인 혐오적인 발언을 한 것이 폭로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국민연합은 국민전선의 이중 담론 전략을 계승했다. 다만 그 표적은 거의 전적으로 무슬림이 됐다.

마린 르펜은 “소수자들의 끝없는 요구”를 비난하고 무슬림이 쓰는 얼굴 가리개를 “나치즘만큼이나 위험한” 이데올로기적 표지라고 공격한다. 이는 흔한 이슬람 혐오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되 주류 정당들보다 한술 더 뜨는 것이다.

국민연합의 핵심 공약은 헌법을 고쳐서 이민자들의 권리를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보다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국민 우대” 정책은 복지·주거·의료에서 이주민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우선권을 보장하는 데에 이용될 것이다.

국민연합 당원 다수는 강경하면서도 주류 정치를 지향하는 이런 노선 변경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많은 수의 기층 당원은 장마리 르펜이 20대 시절 깨달은 바, 즉 자신들이 원하는 프랑스는 “혁명적” 국수주의로만 쟁취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1996년에 장마리 르펜은 다가올 일에 대해 국민전선의 청년 조직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위기는 역사의 위대한 산파다. 상황이 교착 상태에 빠질 때, 새 시대의 돌파구를 열어젖히는 것은 인간 본성의 추동력이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끝장나는 시기도 있다. … 어느 시점이 되면 벌레 먹은 구멍이 숭숭 난 우리 체제는 붕괴할 것이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르펜의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그런 상황을 르펜의 세력과는 완전히 다른 세력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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