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먹통 사태:
시장 경쟁과 독점 규제, 둘 다 해결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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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카카오 먹통 사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과 걱정, 불안을 겪었다. 초대형 IT 기업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카카오는 국내 IT 성공 신화의 대표 격인 기업이다. 창업 10여 년 만에 시가총액 상위 10위권에 올라섰고, 연 매출은 6조 원이 넘으며, 130개 가까운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4700만 명이 이용하는 카카오톡은 무료 서비스이지만, 카카오는 그 이용자들이 자사의 각종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해 큰 성공을 거뒀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T 공룡들과 마찬가지로 카카오도 방대한 양의 이용자 정보를 플랫폼 기업에 팔아 수익을 얻는다. 그 이용자 정보를 구입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카카오의 자회사이다.
사실 구글과 페이스북도 최근에 각각 알파벳, 메타라는 이름의 모기업을 두고 여러 자회사를 만들어 독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업 실패에 불과?
사고 직후 언론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한국경제〉 같은 노골적인 기업주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독(과)점 규제 강화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시스템 안 갖춘 ‘기업 실패’의 문제 … 플랫폼 때리기로 흘러선 안돼”(10월 18일치).
단기 수익에 매달리느라 필수 투자를 게을리한 카카오 경영진의 문제일 뿐, 규제가 필요한 제도적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카카오가 플랫폼 사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서버 ‘이원화’를 하지 않아 사고가 커졌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서버가 마비될 경우 모든 기능을 대체할 서버가 상시적으로 준비돼 있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아 사고가 커졌다는 것이다. 카카오와는 달리, 네이버는 다른 데이터센터에도 서버를 마련해 놓아 비교적 신속하게 서비스를 복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조건 하에서도 ‘기본’을 지킨 기업주들이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경쟁력을 갖게 되는 셈이니, 규제 강화가 아니라 시장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 강화는 해외 기업들의 경쟁력만 키워 줄 뿐이라는 우려도 덧붙인다.
이러한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이 이번 같은 문제들을 자동으로 바로잡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카카오가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해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은 신화일 뿐이다.
카카오는 서버 이원화보다 인수·합병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이는 기업주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카카오의 성장과 이번 사고 이후에도 카카오에 투자가 계속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어쩌다 한 번 날지도 모를 사고’에 대처하려고 데이터센터 구축을 우선하는 것은 성장의 기회를 놓칠 일일 것이다.
사실 국내 IT 기업들 대부분이 카카오 수준의 복구 시스템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국내에서는 제1금융권의 전산센터에만 최고 등급의 이원화 조처가 의무화돼 있다(지디넷코리아, 10월 17일치).
네이버도 만약 이원화 구축에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한 초대형 메신저 서비스를 운영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진정한 문제는 통신, 교통, 금융 같은 필수 서비스가 이윤 시스템에 맡겨져 있는 상황 자체에 있다.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서비스일수록 기업들은 더 쉽게 이윤을 벌 수 있지만, 그들은 세계적 경쟁 속에서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그 서비스의 질은 점차 나빠지고 불안정해지며 쓸 만한 서비스의 가격은 비싸진다.
실제로 IT 대기업들의 서비스 중단 사고는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마존, 페이스북 등도 단전이나 서버 오류 등으로 서비스가 마비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시장 경쟁은 이런 기업들이 이미 겪은 오류를 다른 기업들도 똑같이 겪도록 방치한다.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 기업들의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플랫폼 자율규제’를 내세웠다가 대중의 불만을 의식해 ‘최소한의 개입’은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실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은 하루 종일 규제 강화 계획이 없다며 말을 주워 담느라 애썼고, 국무총리 한덕수도 “법률 개정 사항은 아니다” 하고 선을 그었다.
독(과)점 규제로 되나?
한편,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계 언론들은 독(과)점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기업의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인수·합병의 기준을 높여 “문어발식 확장”을 막고 독과점 기업의 지배력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필수 서비스의 중단 같은 일들을 피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이롭게 IT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기업에 서버 이원화 같은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조처는 상대적으로 작은 IT 기업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돼, 오히려 독과점 기업들을 보호하는 효과를 낸다. 시장의 역설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독(과)점의 형성, 즉 마르크스가 말한 ‘집적(개별 자본 규모의 성장)과 집중(경쟁 자본의 수 감소)’은 필연적이다. 패자는 퇴장하고 승자는 몸집을 키운다. 자본주의 자체가 자본들의 축적 경쟁을 동력으로 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자본이 새롭게 축적되고 확장되는 부문에서 성공하는 기업들은 결국 독점적 지위를 획득했다.
IT 산업 부상 이전에도 철도, 자동차, 석유, 금융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설사 독점 기업을 (형식적으로) 분할한 경우에도 과점 상태가 유지됐고, 그 과점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은 더 커지는 경우가 흔했다.
이 과정에서 흔히 정부는 독점을 규제하는 주체로 여겨지지만, (주로 제국주의 경쟁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자국 기업과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정부는 독점 기업을 보호하는 구실을 더 많이 한다.
예컨대 2020년 미국 의회는 구글과 페이스북 등을 청문회에 불러 적대적 인수·합병과 지배력 남용을 지적하며 들들 볶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시장 지배력에 영향을 줄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중국의 거대 IT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카카오와 네이버의 문어발식 확장을 각종 특혜와 예외 적용으로 도운 것도 다름 아닌 역대 한국 정부들이었다.
필수재와 생산이 경쟁적 축적에 종속된 자본주의하에서 이번 같은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식량이나 에너지처럼 생존과 직결된 자원조차 이윤 시스템에 종속돼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을 보라.
그래서 독과점 규제는 그 목적한 바를 이룰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흔히 지배자들이 체제의 근본 문제를 교묘하게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IT 기술의 발전은 세계적 규모에서 생산과 분배를 조정할 잠재력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따라 생산이 조직되는 사회에서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