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사회주의 공포” 규탄 결의:
냉전의 무기로 국외의 적과 국내의 좌파 공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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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미국 하원이 ‘사회주의 공포 규탄’ 결의를 채택했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의원 과반수도 찬성 투표했다. 민주당 의원 몇몇은 표결 직전 공동 성명을 발표해 미국의 성장을 위해 사회주의를 거부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결의는 지난 세기의 가장 끔찍한 사건들을 모조리 “사회주의의 범죄들”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 목록 맨 위에 있는 볼셰비키 혁명은 노동계급이 기존 체제를 분쇄하고 스스로 해방되려 한 시도이지 “범죄”가 아니었다.
그리고 “범죄” 목록의 나머지는 실제로는 사회주의와는 관계 없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스탈린의 강제노동수용소나 중국 대약진 운동은 국가자본주의 지배 관료가 자본축적의 일환으로 노동계급을 상대로 벌인 일로,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사회주의의 기본 원리와 정면 배치되는 사건이다.
이 결의는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1975~1979년)의 ‘킬링필드’도 “사회주의의 범죄”라고 거론한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 전쟁 때 캄보디아에 대규모 폭격을 퍼부어 학살의 배경이 된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낳는 데 일조했다. 게다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폴 포트 정권이 밀려나고 학살의 참상이 알려졌을 때, 미국은 베트남을 견제하려고 폴 포트를 후원했다.
이런 결의가 채택된 배경에는 고조되는 제국주의적 쟁투가 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러시아와의 패권 경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화하면서, 미국 정치인들은 “공산주의 중국”을 비난하고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주의의 결집”을 운운해 왔다.
냉전기에 개발했던 이데올로기적 수단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번 결의는 그것의 또 다른 사례다.
‘내부의 적’
이번 결의는 “미국 국내에서 사회주의적 정책 시행을 일체 반대”한다며 미국 ‘내부의 적’도 겨냥한다. 사실 미국 우파는 알량한 서민 지원 정책조차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이번 결의의 배경에는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 두드러진 정치 양극화가 있다.
2007년 미국발 경제 위기 이래로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층에 대한 환멸이 커졌고, 좌우 양쪽에서 운동이 성장했다. 특히 오른쪽에서 강경 우익(극우 포함)이 공화당 안팎에서 두드러지게 성장했다.(관련 기사 431호 ‘바이든, 트럼프, 미국 좌파’)
결의문 발의자 마리아 살라자르는 취지 설명에서 미국인 40퍼센트가 사회주의에 호의적이라고 응답(이 결과는 불평등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었다)했던 몇 년 전 여론조사를 거론하며, 미국 안에서도 “전체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좌파적·친서민적 정책·인물을 “미국의 정신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전체주의”라고 규정하고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시사적이게도, 결의 채택 바로 다음 날인 3일에 미국 민주사회당(DSA) 소속 하원의원 일한 오마가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제명됐다.
2019년에 오마는 친(親)이스라엘 로비가 미국 의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번에 하원은 바로 이 글을 ‘유대인 혐오’라고 문제 삼은 것이다.
이 제명 결정은 인종차별(오마는 소말리아 출신이고 무슬림이다)이고 좌파에 대한 공격이지만,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의 문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 전략에서 중요한 발판이다. 그러니 이에 거슬리는 언행을 하는 자는 대외 정책을 논하는 장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국외의 적대자를 겨냥한 이데올로기적 공격과 국내의 좌파에 대한 공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