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 〈한겨레〉 기자 vs 이해영 한신대 교수: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러시아에만 묻는 것이 문제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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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한겨레〉 기자가 이해영 교수의 신간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질서》(사계절)를 비판하는 서평을 썼다(2월 4일자).
비판의 골자는 이해영 교수가 “러시아에 전쟁 책임의 면죄부”를 주고,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결권에 대한 논의”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의 주장은 통념에 속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에만 초점을 맞추고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국민 방위전을 나토의 무기 지원까지 포함해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흔하다.
반면, 이해영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이 주도해 온 “글로벌 단극 체제”가 러시아를 적으로 삼고 옥죈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해영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친서방 언론의 전쟁 프로파간다를 끊임없이 폭로해 왔다(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간과하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최원형 기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됐음을 강조한다.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에서 전쟁의 성격을 찾다 보니, 최원형 기자는 미국 등 서방의 책임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 하는 문제를 전쟁을 분석하는 데서 덜 중요하게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의 성격이다.
예컨대, ‘한국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면, 북한의 남침이라는 점만 강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 되면 한국전쟁이 미국과 소련(과 중국) 등 동·서 제국주의 간 충돌이라는 점을 완전히 놓치게 된다.
베트남 전쟁도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는 점이 그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아니라 베트남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더라도, 베트남 전쟁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접근법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적용해 보자.
러시아가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를 먼저 침공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 전쟁에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국민 방위전 성격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와 대결하는 제국주의 간 대리전의 성격이 압도하고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배적 성격도 동·서 제국주의 간 각축전이다.
자결권 문제
최원형 기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을 분석하는 데서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결권”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해영 교수의 책에서 “침략 피해자인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해영 교수가 러시아의 침략보다 2014년 이후 “내전의 계속”이라는 측면에 더 주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전도 이미 서방과 러시아 간의 대리전 성격을 상당 정도 갖고 있었다.
물론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즉각 철군해야 한다. 푸틴이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러시아의 침공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원웅 본지 기자가 잘 지적했듯이, “문제는 그것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뤄지느냐”다.(‘우크라이나 전쟁 1년 — 확전으로 가나? 평화를 위한 대안은?’을 읽어 보시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맞서 미국 등 나토의 지원에 의존하는 것은 그 지역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뿐이다.
미국 등 나토의 승리는 전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나토가 러시아를 이기면, 조지아 군대가 러시아가 병합한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로 쳐들어가려 할 것이다.
러시아가 패배하면 미국은 그 여세를 몰아 대중국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그리 되면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갈등이 더 첨예해질 것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간 대결에서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것으로는 약소 민족들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결과를 전혀 얻을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자결권을 확고하게 지지하지만, 민족자결권을 결코 추상적인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제국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
국제주의
〈한겨레〉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논조로 말하자면, 〈한겨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지난해 12월 21일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무기 지원”을 호소한 직후 〈한겨레〉는 다음과 같은 사설을 실었다.
“제국주의적 의도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책임을 명백히 하되, 전쟁을 끝낼 협상의 실마리가 만들어지도록 각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
김동민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은 〈한겨레〉의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한겨레 신문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보도의 취재원은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발표, 미국과 영국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 그리고 우크라이나 현지라고는 하지만 키예프에 한정된 지역에서 피상적으로 보고들은 것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미국 네오콘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쟁연구소의 발표도 그대로 인용한다.”(〈경기신문〉, 2022년 7월 19일자)
비록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 한국은 장차 주요 전쟁 관여국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 사는 진보 활동가는 윤석열 정부의 나토 지원을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것이 나토의 확전과 확장에 반대하는 국제적 진보 운동의 일부로 자리매김 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과 서방에서 자국 정부의 전쟁 노력을 반대하는 운동은 푸틴의 전쟁 노력을 반대하는 러시아 국내 저항에 연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푸틴이 자국 내 반전 운동을 “친서방,” “친나토”라고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교전국 좌파들이 자국 정부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지 말고 오히려 반대해야 한다는 국제주의야말로 전쟁을 끝낼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데서 필수적이다.
러시아 비판에 초점을 맞추는 〈한겨레〉의 논조는 그런 운동을 건설하는 것에 장애물을 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