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핵 군축 협정 중단 선언:
푸틴뿐만 아니라 미국도 인류를 핵 볼모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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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에서는 치열한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군 지휘관은 그곳을 “지옥”으로 묘사했다. 바흐무트를 공략하는 러시아의 바그너 그룹도 탄약이 부족한 상황이다.
양측 모두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있다. 많은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전략적 가치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을 차지하고자 이런 희생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동·서방 제국주의 간 갈등도 갈수록 첨예해지고 핵 전쟁 위험이 커지고 있다.
푸틴은 2월 21일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START)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2010년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이 협정은 양국이 배치할 수 있는 핵탄두와 운반체의 수를 제한하는 협정이다.
협정 이행 중단을 선언한 푸틴은 극초음속 미사일 생산을 대거 늘리고 “핵전력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겠다”고 했다.
다만, 러시아 정부는 이행 중단을 선언하면서도 협정에 명시된 제한은 한동안 지키겠다고 했다. 이 협정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을 압박하는 카드로 쓰려는 것이다.
핵 무기 경쟁
바이든은 푸틴의 결정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많은 언론은 악당 푸틴이 궁지에 몰리자 핵전쟁 위협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사태를 묘사한다.
물론, 푸틴의 행보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푸틴의 행보는 서방과 벌이는 제국주의적 핵무기 경쟁의 일환이다. 그리고 그 경쟁은 결코 일방이 벌이는 게 아니다.
미국 또한 자신의 핵 우위를 위해 주요 핵 군축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바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이 최초로 탈퇴한 협정은 1972년에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이다.
냉전 시기 ‘공포의 핵 균형’은 미국과 소련 모두 상대방을 몇 번이고 초토화시킬 탄도미사일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유지됐다. 그러나 탄도탄요격미사일은 그 ‘균형’에 깔린 계산을 뒤흔든다. 이 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은 핵 선제 공격을 당한 상대국이 보복 차원에서 쏘는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무기 체계가 도입되면 각국은 조금이라도 보복 가능성을 높이고자 핵무기를 걷잡을 수 없이 늘리게 된다. 그런 사태를 피하려고 소련과 미국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기로 협정을 맺은 것이다.
2002년 ABM 제한 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한 미국은 2010년 루마니아와 폴란드에 탄도탄요격미사일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그후 미국은 이 나라들에 그런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이지스 어쇼어 무기 체계를 배치했다. 미국의 이런 행보는 미사일방어체계(MD) 제한에 의존한, 이미 취약한 핵 군축 합의 구조를 크게 약화시켰다.
또, 2019년 미국은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중국을 핑계로 들며(‘중국도 포함한 조약이 필요하다’며) 탈퇴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토가 상당히 동진한 상황에서 미국이 동유럽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게 해 러시아를 위협하는 것이기도 했다.
선제 타격에 대한 공포
러시아의 핵 전략은 자국의 핵 억지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미국의 선제 타격 능력에 대한 공포에 기초한다.
이번에 푸틴이 이행 중단을 선언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은 핵탄두의 숫자는 제한하지만, 상대방을 초토화하고 상대방의 핵 전력을 무력화시키는 무기 체계의 현대화 경쟁은 막지 않는다. 이런 기술에서 미국은 대체로 우위에 있어 왔다. 이것이 푸틴이 협정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요격이 어려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린 것도 미국의 우위를 넘기 위해서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앞세운 서방 대 러시아 간 대리전 성격에 압도된 지 오래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무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무기를 사용할 좌표도 제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은 때때로 러시아 영토 내의 꽤 깊숙한 곳에서도 벌어진다.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의 주요 내용 하나는 서로가 상대방의 핵 시설을 점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 점검은 중단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러시아는 이를 통해 핵 시설 좌표가 우크라이나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물론, 푸틴과 바이든 모두 지금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핵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푸틴이 당분간은 협정에서 정한 핵탄두 제한을 지키겠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류 전체의 운명을 걸고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
이들이 불장난을 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각국에서 자국 정부의 전쟁 노력에 반대하는 운동이 건설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