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평화 활동가가 말한다:
“군국주의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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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징집 거부 활동을 지원하며 자국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평화 단체 ‘우크라이나 평화주의 운동’의 활동가 유리 셸라젠코(하단 사진)의 메시지다. 원래 영국의 반전 집회를 위해 작성한 메시지였지만, 본지가 그에게 4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반대 집회’ 소식을 전하자 그는 한국에도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했다.
친애하는 벗들에게.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평화주의 운동’을 대표해서 인사드립니다.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이 14개월간 계속되고 폭격으로 전기마저 끊겼지만 저는 휴전과 평화회담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평화의 가능성을 끝장내려는 사건들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여러분과 만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공격하고 우크라이나가 반격을 준비하는 가운데, 바흐무트에서는 양측 병사들과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동방의 러시아 무기 지원이 계속되는 지정학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토는 확장하고 있고, 우크라이나가 전투에서 이기게 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 핵무기 동맹은 또한 우크라이나를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우리 정부는 나토에 즉시 가입한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미국과 그 밖의 나토 국가들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서방 언론들은 정확히 그런 사태에 걸맞은 여론을 미리 갖춰 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과의 대결과 나토의 세계적 확장에 관해서도 그런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편, 러시아는 중국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의 이런 무모한 행보에 나토가 핵전쟁도 불사하고 싸워야 한다는, 마찬가지로 무모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1975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체결된] 헬싱키 협정에 담긴 데탕트 정신은 이제 죽었습니다.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열화우라늄탄을 제공하겠다고 하고, 자포리자 핵발전소 근처에서는 상호 포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환경을 전혀 걱정하지 않고, 대지를 불태워서라도 이기겠다는 정신 나간 정책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바흐무트 지역을 어느 쪽이 점령하든 남는 것은 폐허뿐일 것입니다. 이른바 “열강” 간의 싸움은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지구 전체를 바흐무트와 비슷한 상태로, 즉 전화에 휩싸여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이처럼 양쪽 모두를 유린하는 자기 파괴 행위를 두고 저들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라거나 “국제법 수호”를 위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입니다.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적 규범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법’은 원정을 위한 야비한 명분에 불과한 것이 됐고, ‘질서’는 혼란, 부패, 억압과 마녀사냥의 다른 이름이 됐습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우크라이나 군대는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양심수 비탈리 알렉신코는 전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투옥됐습니다. 헤나디 타뮤크나 미하일로 야보르스키도 전쟁 거부를 이유로 투옥 위기에 처해 있고, 보호관찰을 선고받은 이들도 많습니다. 우리 ‘우크라이나 평화주의 운동’의 회원이자 강제 징집돼 현재 전방 참호에 있는 기독교 평화주의자 안드리 비슈네베츠키는 양심에 따른 제대 절차를 대통령 젤렌스키가 마련하도록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민주 국가를 자처하지만 이런 것이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군대를 향한 맹목적 복종, 대량 학살 ‘영웅’에 대한 맹목적 칭송, 군국주의적 폭력이 기적을 선사할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미국 국방부의 기밀 문서 유출로 저의 오랜 경고가 사실임이 드러났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년 전부터 준비돼 왔고, 앞으로도 수년을 더 내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벌써부터 다음 세대에게 전쟁을 이어갈 준비를 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임명된 교육과학부 장관 옥센 리소브이는 전사이자 야전 지휘관 이미지로 내세운 자입니다. 그는 학교 안에 사격장을 짓고, 아이들이 전쟁을 감내하도록 가르치고, 교육을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저희 ‘우크라이나 평화주의 운동’은 리소브이의 박사 학위 논문 43퍼센트가 표절이라고 폭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표절을 일삼는 자를 교육부 장관에 앉히는 것은 미치광이에게 정신병원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지만 묵살당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퇴를 거부하고 박사 학위만 반납하겠다고 하자 모든 스캔들이 잠잠해졌고, 이후 리소브이는 관료 기구를 동원해 우리 측 내부 고발의 신빙성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학위조차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파괴
러시아인들이 러시아군이 자행한 부차 학살을 용인하고 우리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 군대가 [2014년에] 스타니차 루한스카에서 자행한 학살을 용인한다면, 또한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걷어차서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한 채 그들을 억지로 징병소로 끌고 가는 이 잔인한 징병제가 계속된다면,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러시아에서든 우크라이나에서든 군대에게 허용된다면, 교육부 장관을 맡을 한 용맹스러운 군인이 논문을 표절한 것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군국주의는 경제를 부패시키고 민주주의를 파괴합니다. 그에 대한 반대는 거의 없습니다. 오직 평화 운동만이 여기에 도전하며,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희망, 모두가 살상을 거부해서 전쟁이 사라진 세계를 향한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유럽’, ‘전쟁을 거부하라’ 캠페인은 사람들이 전쟁을 지긋지긋해 하고 다른 종류의 영웅을 찾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대량 학살을 이어가거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동족 학살을 일삼는 영웅이 아니라 바로 전쟁 중단을 외치는 영웅 말입니다.
제가 동족 학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형제이자 자매이기 때문이고, 인류가 하나의 지구를 공유하는 하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제정신인 곳으로, 모든 경계가 사라진 곳, 증오와 무기가 사라진 곳으로 만듭시다. 핵무기 군사 동맹보다 진실과 사랑이 세계의 사람들을 더 끈끈하게 이어줄 수 있습니다. 진실은 사람들이 전쟁에 지쳤고, 전쟁 시스템에서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돈을 세금 시스템에 뜯기는 데 신물이 났으며, 폭력 없는 평화와 정의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시민불복종 운동에 직면할 것입니다.
우리는 군국주의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군국주의자들이 우리 아이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전쟁, 그리고 모든 전쟁을 즉각 멈춰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해 나설 때 평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