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추진:
열악한 곳에 고용되므로 이주노동자 유입을 반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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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울시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허용 업종에 ‘가사근로자’를 추가하는 방안이다.(관련 기사: ‘정부·서울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추진: 공공성 공격하면서 돌봄을 시장에서 값싸게 해결하라고?’)
질 좋은 공적 돌봄 서비스가 부족한 문제를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해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임금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
지난 3월 시대전환 국회의원 조정훈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법안을 발의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약한 법안이다.
이에 대한 반발을 의식한 듯, 정부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역시 이주노동자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제도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과 업종 변경을 극도로 제약한다.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게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는 이주노동자가 최소한의 협상력조차 갖기 어렵게 한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 7개 단체가 2020년 실시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은 주평균 53.3시간 일하고 월평균 222만 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최저임금보다 9만 원가량 적다.
한술 더 떠 오세훈은 SNS에 서울시가 정부와 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홍콩과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홍콩의 가사노동자 임금은 자국 국민 월평균 급여의 최소 25퍼센트, 싱가포르는 8~12퍼센트 수준이다.
가사노동자 수요가 많을 서울 등 대도시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으로 생활하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그러면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기려고 고용허가제를 벗어나 미등록 체류하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
정부가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에 대응해 전반적인 이주민 유입을 늘리려고 하면서, 동시에 미등록 이주민 단속추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고분고분한 저임금 노동의 필요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지난 3~4월 정부합동단속으로 미등록 이주민 1만 3000여 명을 강제 출국시켰다. 단속 과정에서 예배 중인 교회까지 들이닥쳐 수갑을 채우는 등 인권 침해도 서슴지 않았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받게 될 이런 차별에 반대해야 한다.
환영
한편 정부가 이주노동자 유입을 늘리려 하자, 그들이 놓일 열악한 조건을 이유로 이주노동자 고용·유입에 반대하는 주장이 적잖게 제기된다.
이번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의 경우에도 민주노총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성적 학대·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고 우려하며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주여성을 가사노동자로 … 유입하기 위해서는 … [한국인과]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제도와 인식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제도와 인식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해당 부문에 이주노동자 유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물론 조정훈의 법안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해치므로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열악한 조건의 이주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노동자들 간 경쟁을 강화하려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이주노동자의 고용·유입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부 방안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이주노동자를 환영하고, 이주노동자의 임금과 처우를 내국인 노동자 수준으로 올리도록 투쟁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낳는 세계적 불평등과 빈곤 때문에 경제적 선진국에서 열악한 일자리라도 일단 구해야만 하는 이주노동자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들의 한국 유입이나 사용자의 이주노동자 고용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주기적 단속에도 지난 몇 년간 미등록 이주민이 꾸준히 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등이 아무리 선한 의도일지라도 이주노동자의 고용·유입 제한 입장을 갖고 있다면 한국에 오기 전이나 후로 이를 알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노조나 노동운동을 경계할 것이다. 그러면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의존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는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끌어내리는 압력이 된다.
노동시장에 새로운 노동자가 유입되는 것이 고용과 임금 감소, 노동조건 악화로 직결되는 게 아니다. 경제 상황과 투쟁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도입될 외국인 가사노동자들도 열악한 조건을 무한정 참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싸게 쓰려고 중국 동포 등을 데려와 썼지만 지금 그들의 임금이 올라서 새로운 이주노동자를 데려오려고 하는 점도 봐야 한다.
새로 들어올 노동자들이 주로 도시나 그 근교에 거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다른 업종에 견줘 접촉하고 조직하기에 유리한 점이다. 물론 만만치 않을 일이겠지만, 홍콩에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돼 투쟁해 왔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환영하면서, 정부와 사용자들이 이들에게 강요할 열악한 조건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