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사법화 심화시키는 학폭전담조사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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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부터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제도가 시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있는 교사들과 대화를 나눠 봤다. 나와 얘기를 나눈 교사들은 학폭조사관제도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는데, 내 생각도 그렇다.
학폭조사관제도가 퇴직 경찰과 교원의 공공근로를 확대하는 고용 효과는 있을지언정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사법적 전문성과 교육적 전문성이 발휘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고용 조건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배움터지킴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시적 단기 인력일 것이라 추정된다.
사법화의 형식은 힘을 탈 것이나 집행은 매우 형식적일 것이다. 기관 간 업무 협조의 세부적 과제는 전혀 살피지 않은 채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다. 현장과 학부모의 추가적 불만과 민원이 누증할 것이며, 그에 따른 추가적 보수 작업이 실체적 문제 해결인 것처럼 본말이 전도되어 정책 담론을 휘발시킬 것이다.
조사관이 교육지원청에 위치함으로써 학생이나 학부모의 학폭 신고가 교육지원청으로 직접 전해지는 상황이 앞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때에도 조사관이 초기 조사를 스스로 할 것인지, 학교에 협조 요청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매뉴얼이 주먹구구로 집행될 것이다. 학폭조사관은 학교 현장에 대한 총체적 책임성이 부재한 관계로 잘못된 학폭 사무는 부실한 행정 매뉴얼을 자기의 변명거리로 삼을 것이고 책임 회피성 논란이 꼬리를 물 것이다.
교육지원청의 행정은 학폭조사관을 관리 지원할 뿐, 학폭조사관들과 학교공동체 갈등 관리 및 생활교육의 관점에서 학폭에 대한 질적 의사소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며, 결국 학폭조사관제도의 집행에 급급하느라 교육행정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채 학폭의 사법화를 위한 식민지행정으로 전락할 것이다.
교사들에게 보강 조사 업무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도 구체적 업무 협조 관련 매뉴얼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매우 혼란스런 상황이 유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선 교육지원청과 학교단위의 업무협조방식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음으로 인한 뒤탈을 막기 위해 장학사나 상담사가 학폭조사관을 지원하는 사무에 동원된다면 이는 결국 행정의 옥상옥처럼 중복행정을 유발시킬 것이니 꽤나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학교현장의 입장에서는 학교현장은 학폭사무의 외주화로 학폭 관련 조사 및 생활교육적 책무감이 약해질 것이고, 기존의 학교교육의 생활교육전통이나 공동체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고민과는 거리가 더욱 멀어질 것이다. 결국 학폭조사관제도는 기존의 학교 역할을 떠맡지 못함으로써 대한민국 공교육은 부실해지고 슬림해질 것이며, 청소년의 시민교육은 무너질 것이다.
2012년 학폭법 제정 이후 정부는 학폭 관련 생활교육의 사법화를 해결방식으로 추진하였는데, 이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평가의 기회를 갖지 않은 채로 시기시기 들춰지는 문제에 대한 대증요법에 급급하여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누증시키고 있음이 학폭조사관제도의 밑바닥 본질이다.
학폭의 사법 처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의 공동체 시민교육의 가치와 기능, 그 전통 및 교사전문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적절한 지원시스템으로 학폭의 사법화는 꿰어져야 할 것이다. 단지 학폭의 건수를 줄이는 것만을 목표로 공동체 갈등의 사법화를 유일한 원리로 밀어붙이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교사의 업무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효과를 계속 공수표로 남발하지만 그 실효성은 미뤄지면서 혼란스럽고 복잡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방향인지, 부분적으로 보완 수정하면 예정된 목표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교육부는 판단하지 못할 것이며, 사실은 판단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 교육부 정책에 대한 우려의 핵심 지점이다. 교육부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심사가 아니며 전시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정책으로서 실효성만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의 학폭조사관제도에 대한 반응은 매우 피상적이기만 하다. 어쩌면 현장을 잘 알고 있는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비겁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다. 그들은 정부 정책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환기시키는 추상적 언급을 남기는 수준에서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책임 있는 대립지점은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