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교황청이 발표한 ‘동성 커플 축복 허용’ 선언에 대해 아프리카 주교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발이 일자 교황청이 한 발 후퇴했다.

지난 12월 18일 교황청은 신앙교리성의 교리선언문 ‘간청하는 믿음’을 발표해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포함해 “비정상적 상황의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이는 동성 결혼을 혼인성사로 허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입장에서 한 걸음 진전이었다.

가톨릭 교회 내 많은 성소수자가 이를 반겼고, 이 소식은 세계 많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관련 기사: 본지 487호 ‘교황청의 성소수자 관련 정책 변화, 환영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가톨릭 교회 내 반발도 만만찮게 제기됐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주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아프리카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의 약 25퍼센트가 살고 있고, 가톨릭 신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가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할 정도로 동성애에 적대적이다. 이 국가들의 가톨릭 주교 대부분도 이런 흐름에 동참해 왔다. 예컨대 지난해 케냐 대법원이 불법이었던 동성애 단체의 등록을 허용하자, 케냐 가톨릭 주교단이 나서서 “이 판결로 생명을 파괴하는 동성애를 확산시키게 될 것”이라며 규탄했다.

완전 무시

잠비아와 말라위의 주교들은 동성 커플 축복을 시행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인근 교구의 존 오발라 주교는 동성 커플이 “동성 결합을 중단하기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경우에만 축복할 수 있고, 동성 커플이 예전처럼 계속 살겠다고 하면 축복할 수 없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나이지리아 가톨릭 주교회의는 성명을 내어 “축복을 구하는 일은 그가 얼마나 선하냐에 달려 있지 않다”며 동성애자를 축복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도, “교회가 동성 간의 결합과 행위를 축복할 가능성은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일부 주교들이 교황청의 교리선언문을 공개적으로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교황청의 공식 결정을 일부 지역의 성직자들이 선택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교회 역사에서 오래된 일이다. 그럼에도 주교들이 이토록 공개적으로 교황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현재 가톨릭 교회의 분열상과 위기를 반영한다.

교황청은 아프리카 주교들의 반발에 직면해 한 발 후퇴했다.

1월 4일 교황청은 성명을 내어 “각 교회의 맥락과 지역 문화”에 따라 달리 적용할 수 있다며 애초 교리선언문의 의의를 스스로 상당히 약화시켰다.

그리고 특별히 아프리카 대륙을 염두에 두고, 동성애 처벌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축복은 경솔한 일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사제가 동성애자를 폭력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아프리카 주교들이 교리선언문을 무시해도 될 여백을 공식적으로 마련해 준 것이다.

또, 교황청은 동성 커플 축복이 “그것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삶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 전반적으로 그 의미를 크게 희석시켰다.

애초 교황청의 ‘동성 커플 축복 허용’은 보수파인 베치우 추기경의 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바티칸이 매우 제한적인 개혁 요구를 수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겨우 3주도 안 돼 이번엔 보수적인 주교들의 반동을 받아, 디뎠던 한 발을 거둬들였다. 딱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