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팔레스타인의 눈물》:
“손바닥으로 송곳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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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자카리아 무함마드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작가 14인이 함께 펴낸 산문집이다. 소설 《범도》의 방현석 작가가 지난달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강력 추천하는 것을 듣고 읽었다. 이 책에는 점령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망명지에서 생활하며 겪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참혹한 일상과 의식이 생생히 스며들어 있다. 어떤 글에서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주도하는 파타와 그에 대항하는 하마스 등을 대하는 정치 입장이 드러나고 내부 논쟁도 흘깃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책은 2014년 7월 오마르 그라옙의 글로 시작한다. 그가 묘사한 가자지구의 참상은 소름 돋을 만치 지금과 똑 닮았다. 마치 2023년 10월 이후의 가자를 미리 다녀온 듯한 기시감과 현실감이 압도적이다.
오마르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맹세’하고 아랍 민족 지도자들, 인권단체, 구호단체, 인도주의에 작별을 고하며 글을 끝맺는다.(수록 글 「아이를 갖지 않기로 맹세한 이유」) 이스라엘의 끔찍한 인종 청소, 그런 이스라엘의 뒤를 봐주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 끔찍한 제국주의 폭력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아랍 지배자들과 국제기구들을 보노라면 그들의 위선에 작별을 고하는 오마르의 말이 이해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검문소나 국경 출입국 관리소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대학 장학금을 놓치거나,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병원 치료를 못 받고 죽는다.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해 얼토당토않는 일을 겪어야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얘기가 이 책에 실린 「가자의 일기」와 「먼지」에 담겨 있다.
가난한 유학생이 차비가 없어 검문소에 제때 도착 못한 결과 무려 25년간 고국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연이 담긴 「귀환」을 읽을 때도 심장이 찢어진다. 「귀환」은 오랜 망명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겪는 소외와 이질감, 애환을 주로 다룬다. 요르단강 ‘귀환의 다리’를 건넌 이후 삶은 기대와 사뭇 다른데, 「취한 새」나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에는 마치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고뇌가 잘 드러난다.
이스라엘 고문관이 팔레스타인 여성 독립 투사를 「심문」하며 묻는다. “손바닥으로 송곳에 맞설 수 있어?” 운동을 만류하던 친구 어머니에게 ”꽁무니를 빼면, 세상은 누가 바꿔요?” 했던 아이샤 오디는 모진 고문에도 꺾이지 않는 저항 의지를 쏘아올린다. “예. 우리는 손바닥에 쇠를 입혔거든요.”
짓밟힌 일상 속 장면을 읽다 보면 금세 팔레스타인 역사 한복판으로 이동한다. 식민지 강탈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존재들의 삶과 심리가 구체적으로 어땠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역사적 배경을 잘 몰라도 두려워할 것 없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에 촘촘하고 깊게 새겨진 참상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물론, 책을 읽다가 혹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리고 관련 책을 펼치며 진실을 추적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물음과 분노가 일 것이다.
처절한 삶 속에서도 작가들이 툭툭 던지는 풍자와 해학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검문소 통과에 필요한 예루살렘 신분증이 없는 수아디 아미리는 「개 같은 인생」을 꿈꾸며 반려견을 질투한다. “나는 이 개의 운전사예요. 보시다시피 이 개는 예루살렘 개인데, 차 운전을 못해서 혼자서는 예루살렘에 갈 수가 없지요.”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단지 고통스러운 과거로의 초대만은 아니다. 팔레스타인 전설 속 목을 꺾어 뒤를 바라보는 새 ‘필리스트’를 두고, 자카리아 무함마드 시인은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뒤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하고 썼다. 그렇듯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저항하고 있다.
‘손바닥에 쇠를 입혀 송곳에 맞서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국제 연대 행동의 일부가 되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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