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시인이 쓴 민중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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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잠언시가 있다. 시대의 어려움을 입 밖으로 말하면 고통이 객관화되며 덜어진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선집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는 위 잠언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고향을 잃은 시인이 정갈한 언어로 슬픔을 덜어 내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한다.
자카리아 무함마드(1950~2023)는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태어나 이라크 바그다드대학에서 아랍문학과를 졸업했다. 유학 중 귀국 날짜가 이틀 늦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점령군은 그의 귀국을 막았고, 자카리아 시인은 25년 동안 난민 생활을 하다가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그는 여러 권의 시집, 소설, 그리고 산문을 쓰며 시인의 시선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고발했다. 2020년에는 팔레스타인 민족 시인의 이름을 딴 ‘마흐무드 다르위시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카리아 시인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그는 2003년 처음 방한했는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발행한 여권으로 방한한 최초의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자카리아 시인은 이 시집을 번역한 오수연 작가 등 한국 문인들과 꾸준히 교류했다. 2006년에는 자카리아 시인과 다른 팔레스타인인 문인들의 글을 엮은 산문집 《팔레스타인의 눈물》도 한국에 소개됐다.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는 자카리아 시인이 본인의 시집 8권 중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들을 추린 시선집이다. 시 93편과 산문 2편이 담겨 있다. 이 시선집은 소설가이자 한국작가회의 회원인 오수연 작가가 번역했고, 한국문명교류연구소의 감수하에 완성됐다.
한국 독자를 위해 작성한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이 단지 시집이 아닙니다. 우정과 연대의 노래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토록 기쁜 이유입니다.”라고 말하며, 한국의 독자에게 자신의 시 속 세계를 향한 친절한 초대장을 건낸다.
그의 시 세계에는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어휘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일상어와 아랍 옛 어휘를 통해 분노를 정제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영문 《팔레스타인현대문학선집》에서 평했듯이 그의 시는 시인을 “영웅이자 해방자로 보는 옛 아랍 시의 입장”과 달리 “개인적이고 고백적”임에도, “팔레스타인 민중과 함께하는 집단의식”이 돋보인다.
그의 시에는 일상과 죽음이 공존한다. 이는 점령하의 일상에서 실존적 문제를 겪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집은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초대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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