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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촘스키의 비판은 가치 있지만 약점도 있다
《지식인의 자격》 서평에 대한 의견

촘스키의 책 《지식인의 자격》과 김어진 동지의 서평을 유익하게 읽었다.

김어진 동지가 서평에 썼듯이, 촘스키의 비판은 분명 가치가 있다. 국가와 권력자들에 순응하는 지식인일수록 더 높은 지위와 명망을 누리는 만큼 그들의 주장을 의심하라는 메시지는 오늘날 꼭 필요하다. 현재 국내 언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미국의 책임을 흐리는 방식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김어진 동지도 지적했듯 이 책의 메시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상황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비록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오래 전에 쓰여져 그 전쟁들을 다루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촘스키는 제국주의 문제에 관한 대안에서 약점을 보인 경우가 많은데, 김어진 동지가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그에 대한 비판이 결합돼야만 “정부가 도덕률에 배치되는 행동을 할 때, 정부에 기꺼이 저항하는 사람”(p97)이 되라는 이 책의 메시지가 현실적 힘으로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독자편지를 보낸다.

예컨대, 촘스키는 친서방 지식인들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옹호하고 푸틴을 악마화하는 것을 매우 날카롭게 논박한다. 그러나 “그래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라는 질문 앞에서는 치명적 약점을 보인다.

그는 서방의 무기 지원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보다는 계속 이어 가고 또 격화하는 데 일조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무기 지원을 지지하면 서방의 대리전에 반대하는 위협적 반전 운동을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점에서 이는 치명적 약점이다. 서방의 무기 지원은 나쁘지만 반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은, 반전 운동으로 서방과 러시아 양쪽에서 지배자들에 도전해서 제국주의를 물리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촘스키의 이런 약점은 오래된 것이다. 1990년대 말 유고슬라비아 전쟁 때도 서방은 보스니아에서 인종 학살을 막아야 한다며 “인도주의적 개입”(즉, 침공)을 정당화했는데, 촘스키는 서방의 위선을 논박하는 데서 발군이었다. 그러나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학살을 막으려면 미국과 나토의 파병에 반대하기 어렵다고도 봤다. 자신이 비판한 내용이 뒷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는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당시에도 서방의 군사 개입에 일절 반대하면서 유고슬라비아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모든 세력에 맞서는 국제적 연대 운동을 일으키는 것을 주장하는 좌파가 있었다. 이후 벌어진 실제 역사를 보면,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토 개입을 용인하자는 주장이야말로 현실성이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한 독재자보다 나토가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에 대해서도 촘스키는 아랍인과 유대인이 민주적 비종교적 단일 국가를 이룬다는 ‘한 국가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봤다. 대신 그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두 국가 방안’을 진지하게 촉구해서 이스라엘에 실질적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도 촘스키는, 중동 노동계급이 혁명적 반란으로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미국과 그 아랍 동맹국들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제국주의 질서 자체에 도전할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보지 않는다.

이처럼 촘스키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국주의적 행태와 이를 정의로운 것으로 옹호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데서는 탁월한 모습을 보이지만, 막상 대안 문제에서는 ‘국제사회’(서방 제국주의 국가들 포함)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개입을 지지하는 것으로 뒷걸음치는 경우가 흔하다.

촘스키의 이런 약점은 그가 노동계급의 혁명적 반란의 잠재력을 보지 못하고, ‘현실적’ 대안을 찾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서방 지배자들을 향한 촘스키의 날카로운 비판은 계급투쟁으로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레닌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대안과 만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