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정, 《중동 현대사》 서평:
수많은 역사적 사실, 그러나 비어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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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중동 연구자로 잘 알려진 홍미정 교수의 최근 저서인 《중동 현대사》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풍부한 사실들을 담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사실 나열이나 현상론에 그쳐, 오히려 길을 잃게 만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풍부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이슬람이 특별히 편협한 종교라는 편견이나 유대인에 관한 시온주의의 거짓 신화에 도전한다.
또, 중동 관련 책이 국내에 많지 않은 만큼 현상을 소개하는 것 자체도 흥미로울 때가 있다. 예컨대, 교리상으로는 이스라엘 국가에 반대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그 국가에 협력하고 있는지, 심지어 일부는 네타냐후의 중요한 동맹이 됐는지 보여 준다. 이스라엘 사회가 다양한 단층선에 따라 첨예하게 분열돼 있다는 점도 소상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모순과 분열을 이스라엘 국가 자체가 가진 정착자 식민주의 프로젝트라는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이 맥락을 놓치면 이스라엘 정치가 장기적으로 우경화해 온 근본적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고, 정착자 사회 내부의 변화에 헛된 기대를 걸기 쉽다.
더 문제적인 것은 하마스에 관한 서술 부문이다.
저자는 하마스의 ‘이면’이라고 할 만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자세히 다룬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좌파를 견제하려고 이슬람주의자들을 지원했던 것, 하마스가 아랍 혁명 패배 이후 팔레스타인 당국(PA)과 이러저러한 협상을 했던 일, 친미 국가인 카타르의 지원을 받고 팔레스타인 당국마저 쫓아낸 부패한 정치인 다흘란의 중재를 통해 주변국의 지원을 받는 것 등.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하마스가 오슬로 협정과 팔레스타인 당국의 부역에 반대하면서 부상한 세력이라는 더 중요한 맥락 속에 자리매김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마스는 마치 서방과 이스라엘이 은근히 밀어줘서 성장한 세력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반대자나 경쟁자를 견제하려고 다른 세력을 지원하는 일은 역사상 늘 있었다. 예컨대 19세기 제정 러시아는 나로드니키를 견제하려고 마르크스주의를 은근히 밀어줬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는 그 세력의 성격을 설명할 수 없다.
그 한계가 무엇이든 하마스가 현재 이스라엘에 맞선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다시 치솟은 이유다.
홍미정 교수가 이 점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보다 보니 균형을 잃은 듯하다.
나아가 이 책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심 주제로 다루면서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20세기 초에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할 때의 구도를 설명한 다음 곧장 21세기 상황으로 건너뛰는 대목이 많다. 그때 형성된 구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과 도전, 그리고 좌절은 유의미한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물론, 하마스의 온갖 타협과 후퇴는 저자가 한 대목에서 잠깐 언급하듯이 하마스의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현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도전과 좌절의 과정은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예컨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아랍 민족주의 물결의 부상과 좌절을 다루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 민족 운동을 이끈 파타의 궤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파타의 궤적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마스가 파타의 실패를 배경으로 성장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파타와 비슷한 전략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
이 책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에 대해 물음만 던지고 끝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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