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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팔레스타인, 저항, 혁명 ─ 해방을 향한 투쟁 ④:
가자지구: 하마스의 부상

오슬로 협정에 대한 환멸 속에 하마스가 성장했다. 2022년 하마스 창립 기념 집회 참가자들(가자지구) ⓒ출처 Mahmoud Ajjour/ The Palestine Chronicle

하마스(‘이슬람주의 저항 운동’의 약어)의 부상은 오슬로 협정과,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에 대한 파타의 배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마스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 때 등장했다.

그러나 하마스의 기원은 1970년대 가자지구에서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을 본받으려 한 활동가들이 설립한 이슬람주의 단체들과 복지 기구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십 년간 파타와 좌파 민족주의 분파들이 팔레스타인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 같은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지지를 구축했다.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개인의 독실한 신앙 생활을 강조했고, 자선 활동으로 대중적 기반을 구축하려 했으며, 직능인 단체 운영권을 놓고 세속적 민족주의자들과 경쟁했다.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슬람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하게 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1987년 12월 인티파다의 분출은 이슬람주의 활동가들의 전술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대중 봉기를 지지하는 데 흠뻑 뛰어든 것이다.

인티파다가 계속 이어지자, 하마스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부가 이스라엘과 미국 내 이스라엘 후원자들과의 타협을 받아들이는 것을 더 강경하게 비판했다.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직후 이슬람주의자들은 주변화됐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에 따른 ‘평화 프로세스’에 팔레스타인인들이 환멸을 느끼면서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커지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인 자치 구역에 대한 출입 통제가 팔레스타인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이스라엘 정착촌이 무서운 속도로 계속 확장됐다. 그러면서 하마스는 파타와 다른 전략을 제시하는 세력으로 비쳤다.

2000년 또다시 봉기(제2차 인티파다)가 분출하고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대응하자 하마스는 점령군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 나섰다. 하마스와 연계된 자살 폭탄 공격이 점령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감행돼, 전쟁과 점령이 낳는 공포가 이스라엘의 중심부까지 전달됐다.

하마스의 군사 전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군사력 규모, 군사적 자원의 커다란 격차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하마스는 또한 수십 년 전 파타와 PLO 좌파가 개척한 팔레스타인 게릴라 투쟁의 오랜 전통을 이어갔다. 파타의 일부도 이스라엘에 맞선 무장 투쟁을 이어갔지만, 팔레스타인 당국 보안군을 운영하는 파타의 처지는 극복 불가능한 모순을 낳았다.

파타 지도자들은 오슬로 협정이 낳은 팔레스타인 당국 등의 권력 기구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포기할 것인가? 그들은 저항을 포기하기로 했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 맞선 전투는 대부분 하마스에 의해 수행됐다.

하마스는 또한 선거에서도 자신이 파타의 강력한 대항마임을 입증했다.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고, 곧바로 장기 휴전을 공개 제안했다.

이에 미국과 이스라엘, 이집트는 하마스가 주도하는 민족 단결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파타와 함께 음모를 꾸몄다. 파타가 장악한 보안 기관들이 가자지구에서 쿠데타를 기도하자 하마스는 이를 제압하고 가자지구를 장악했다.

그 후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광범한 군사적·경제적 봉쇄에 직면했다.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댄 이집트도 봉쇄에 가담했다.

한편, 파타가 장악한 팔레스타인 당국은 하마스를 더한층 압박했다. 가자지구 공무원들에게 급여를 지불하지 않았고, 이스라엘과 공모해 가자지구로 가는 전기를 끊었다.

여기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 및 그 동맹국들과 이란 및 그 동맹국들의 진영이 중동을 무대로 벌이는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하마스는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카타르는 가자지구의 하마스 정부에 필수적인 자금을 대고, 2012년 어쩔 수 없이 시리아에서 철수한 하마스 지도부에게 피신처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그런 카타르마저 2017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적·외교적 제재를 받았다. 이것은 페르시아만을 지배하고 더 넓은 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세적 전략의 일부였다.

이러한 압력들이 결합돼 하마스는 후퇴를 받아들이게 됐고, 2017년 10월 하마스는 파타와의 ‘화해’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집트 정부가 중재한 이 합의에 따라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당국하에서 2018년 말 총선을 열어 통합 정부를 구성하는 데 동의했다.

2018년 3월과 4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접경지에서 거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봉쇄라는 비인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정의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극적으로 보여 줬다.

국경에 다다른 수많은 시위대는 이스라엘군의 살인적인 폭력에 직면했다. 중무장한 이스라엘의 저격수들이 깃발을 든 비무장 시위대와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청년들을 사살했다. 2018년 4월 3일 적어도 팔레스타인인 17명이 살해되고 약 1500명이 부상당했다. 5월 14일에는 최소 60명이 더 살해됐다.

이 ‘귀환 대행진’ 시위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지막지한 대응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이런 대응은 봉쇄를 통해 가자지구 주민들을 잔인하게 공동 처벌하는 것과 동일한 정책에서 나온 것이다.

그 정책은 무장 저항으로든 평화 시위로든, 하마스 소속이든 다른 단체 소속이든, 점령에 저항하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대변인들이나 서방 정부 내 이스라엘 옹호자들의 주장과 달리, 그들이 가자지구 통치 세력을 문제 삼는 것은 단지 그 세력이 하마스여서가 아니다. 그들은 점령에 저항할 권리, 팔레스타인인 난민들이 그들의 빼앗긴 땅으로 돌아갈 권리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단결 인티파다’

2021년 5월 역사적인 총파업이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를 단결시켰다. “역사적 팔레스타인”이란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있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비롯해, 1948년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려고 빼앗은 땅을 모두 아울러서 이르는 말이다. 2021년 파업은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반란이었고, 이스라엘의 인종 분리 체제에 맞서는 새 세대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호소로 시작됐다.

하이파에서 라말라까지, 가자지구에서 동예루살렘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은 동일한 요구를 걸고 거리로 나왔다. 가자지구에 대한 폭격과 봉쇄 중단,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청소 중단, 팔레스타인인들을 겨냥한 시온주의 정착자 운동의 폭력과 선동 중단을 요구했다.

2021년 ‘단결 인티파다’ 당시 동예루살렘의 시위대 ⓒ출처 Activestills

이 새로운 저항 물결을 낳은 요인 하나는 이스라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시민들에 대한 인종차별의 강화다. 1948년에 이스라엘에 빼앗긴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은 법적 차별 외에도 날로 심각해지는 시온주의 깡패들의 인종차별적 공격에 시달렸다. 2021년 5월 시온주의 정착자 운동은 텔레그램과 왓츠앱을 활용하며 리드와 하이파 등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집과 상점을 공격했다.

이에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은 조직적인 자기 방어뿐 아니라 대규모 시위와 파업으로 대응했다.

이스라엘 회사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인 버스 운전사 약 1000명이 총파업 호소에 응했다. 한편,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건설사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인 6만 5000명이 출근을 거부해 사용자들이 약 535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한편, 가자지구의 투사들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을 공격한 것에 대응해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2주간 포격을 퍼부었다.

2021년 투쟁은 수십 년 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열과 고립을 넘어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을 단결시켰다. 이는 아래로부터의 투쟁 전통을 부활시키는 중요한 일보 전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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