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바버라 킹솔버 지음, 강동혁 옮김, 은행나무, 2024):
학대와 약물 중독 위기에 고통받는 미국의 빈민 아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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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킹솔버의 신간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는 지난해 퓰리처상과 여성소설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70주간 올랐다.
바버라 킹솔버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가 중 한 명이다.
바버라의 책 대부분이 베스트셀러인 첫째 이유는 정말 글을 잘 쓰기 때문이지만 둘째 이유는 자신의 글이 현실에 대한 창과 거울이 되길 바라고 쓰기 때문이다.
바버라 킹솔버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 봐도 이런 두 가지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1998년의 베스트셀러 《포이즌우드 바이블》은 콩고에서 제국주의의 수탈, 독립과 내전까지 콩고의 역사를 생생히 보여 준다.
《화가, 혁명가, 그리고 요리사》에는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비중 있게 나온다. “트로츠키는 수십 년 동안 저를 매혹시킨 인물이었습니다.”(바버라 킹솔버) 이 소설 역시 2010년 여성소설상을 수상했다.
바버라 킹솔버의 신작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는 찰스 디킨스의 고전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미국을 배경으로 현대적으로 리메이크 했다.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의 캐롤》, 《위대한 유산》 등을 써서 가장 널리 알려진 19세기 영국의 소설가다.
찰스 디킨스가 어린 시절 하루 10시간씩 공장에서 일할 때 가족은 모두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이런 가난과 학대의 경험이 많이 들어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찰스 디킨스를 이렇게 평했다. “프로페셔널한 정치가들, 정치평론가들, 도덕주의자들 그들 모두의 발언을 합친 것보다 더 정치적이고 더 사회적인 진실을 세상에 보여 줬다.”
애팔래치아
바버라 킹솔버는 “애팔래치아 출신”이다.
애팔래치아는 같은 이름의 산맥이 지나가는 미국 조지아주 북부, 테네시주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와 버지니아주의 서부, 켄터키주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석탄지대, 그리고 펜실베이니아주의 일부를 말한다.
바버라 킹솔버는 ‘위대한’ 애팔래치아 소설을 쓰고 싶었다. 애팔래치아의 빈곤, 오피오이드(아편유사제 약물) 위기에 대한 창과 거울이 될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절망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했다.
결국 그 해답을 찰스 디킨스에게서 구했다.
“내가 사는 지역과 시간대로 그의 소설을 변용해, 그가 품었던 분노와 창의력, 공감 능력의 도움을 받아 몇 년째 노력한 결과, 나는 그를 나의 천재적인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바버라 킹솔버)
이 소설은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부모가 죽거나,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아프거나 감옥에 있어서 고아원과 위탁 가정, 친척 집을 전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애팔래치아는 “러스트 벨트”와 일부 겹치면서 바로 아래에 있다. 러스트 벨트가 “스틸 벨트”(철강 산업 지대)였던 시절에 이 지역은 “석탄 벨트”였다.
미국 자본주의의 연료를 공급하던 (환경 파괴적) 산업이 폭락하고 신자유주의가 거세지면서 이 지역에 산재와 장애, 가난과 실업을 남겼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 목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자본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제약 회사들, 약국 체인들, 의료보험 회사들이었다. 제약 회사 퍼듀 파마가 미국 전역의 데이터를 살피고 나서, 이 지역의 노동계급을 타깃으로 정했다.
애팔래치아는 의료 서비스가 특히 극악해서, ‘의료 사막’이 광범위하다. 4~5시간 차를 몰고 가서 의사를 만나면 다행이다. ‘의료 사막’은 일종의 계급적 공간 구획으로 시골이 아닌 대도시 한복판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중독성 강한 마약성 진통제 판매에 최적의 조건인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 시간대인 2006~2012년 제약 회사들이 이 지역에 판매한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켄터키주 주민 1인당 연간 오피오이드 63알, 테네시주 주민 1인당 연간 58알,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주민 1인당 연간 67알이었다.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어린이는 의사가 될 확률보다 오피오이드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 많은 아이들이 엄마 배 속에서부터 중독됐다.
사람들은 그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알람을 맞추고 꼬박꼬박 제 시간에 약을 복용했는데 그렇게 30일쯤 지나면 중독이 시작될 수 있다.
반세기가 넘게 미국 정부가 벌인 ‘마약과의 전쟁’은 중독을 처벌받아야 하는 개인들의 실패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른 건강 문제가 그렇듯이, 중독 치료에는 처벌과 투옥이 아니라 안정과 보살핌과 약이 필요하다.
레드넥
‘데몬 코퍼헤드’ 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 데이먼은 “루얼린 탄광촌과 라이트 푸어[그야말로 가난하다는 뜻]라고 불리는 정착지 사이에 있는 리 카운티의 한가운데” 트레일러 주택 안에서 태어났다. 애팔래치아 지역에서도 진짜 가난한 동네다.
이곳 사람들은 흔히 ‘레드넥’, ‘힐빌리’, ‘트레일러 쓰레기’라고 멸시받거나 ‘트럼프의 꼭두각시’ 로 취급받기도 한다.
열한 살까지 데이먼이 겪는 불행과 고통, 기아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발자취를 따라가지만 《올리버 트위스트》의 사회적, 제도적, 계급 차별적 아동 학대들을 훨씬 더 떠올리게 한다.
데이먼 자신의 소감이 그렇다. “찰스 디킨스가 쓴 책들도 그랬다. 그야말로 늙은 그 아저씨는 죽은 데다 외국인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 주여. 그는 어린애들과 고아들이 신세를 망쳤는데 아무도 쥐똥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그려 냈다. 이 동네 출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데이먼이 겪는 미국은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처럼 제도와 정책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데이먼은 위탁 아동을 노예처럼 부리는 담배 농장과 필로폰 제조공장을 위장하기 위한 쓰레기장에서 고역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소설은 아동 복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예산이 부족한 사회복지 시스템을 폭로한다.
사회복지사들은 업무가 너무 많고 보수가 너무 적다. 미국에서 임금이 가장 적다는 교사들보다도 적다. 따라서 사기 저하돼 냉소적이거나 이직이 너무 빨라 위기의 아이들을 너무 자주 놓친다.
“그런 어두운 곳에서 매일 배고픈 채 깨어나는 아이들, 가난과 고통의 알약에 가족을 잃고, 담당관은 계속해서 그들의 서류를 잃어버리며, 투명 인간이 되었다고 느끼거나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너희를 위한 것이다.”(바버라 킹솔버)
저항
소설에는 짧게 나와 아쉽지만, 이 지역에는 노동계급의 위대한 투쟁의 역사가 있다. 애팔래치아 노동계급은 단지 피해자가 아닌 것이다. 계속 저항에 나섰고 또 나설 것이다.
역사 수업 시간에 데이먼이 본 영화는 존 세일즈 감독의 〈메이트원〉(1987)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과거 노동운동과 영화운동 현장에서 많이 상영되었다.
“사람들이 파업을 하고 회사에서는 그들을 억지로 일터로 돌려보내기 위해 군대를 불렀다. 그러자 광부들이 뭐라고 말했을까? 우리에게도 총이 있다고 말했다. 심각했다. 블레어산 전투. 이 전투는 남북전쟁을 제외하면 미국에서 벌어진 가장 큰 내전으로 변했다.”
〈메이트원〉은 이 전쟁의 초반을 다뤘고 블레어산 전투(1921년)는 최절정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노동자 무장 항쟁이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편이라는 걸, 노동자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목에 붉은 반다나를 둘렀다. 암스트롱 선생님은 사람들이 우리를 레드넥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그 시절의 붉은 반다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레드넥은 쩔었다.”
1960년대 애팔래치아 노동계급의 운동은 작업장의 안전, 환경, 건강과 복지의 권리를 위한 연방 차원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요구하며 싸웠다. 2010년대에는 교사들의 운동이 성장하고 승리해 다른 지역 교사들의 파업에도 불을 지폈다.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는 노동계급 아동이 경험하는 현실, 정부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 때문에 많은 공감을 살 것이다. 그리고 분명 답답한 감정이 올라올 것이다. 하지만 바버라 킹솔버의 문장에는 재치가 넘치고 이야기에는 감동과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