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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미국 자본주의의 만행을 들여다보는 창”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2022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90년이 넘는 베니스 영화제 역사상 다큐멘터리 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2번뿐이다.

이 영화는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돼 호평받았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은 〈시티즌포〉(2014)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시티즌포〉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벌이는 전 세계적 불법 사찰을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하는 과정을 담았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이렇게 소개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만행을 들여다보는 창.”

〈…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새클러 가문이 예술 후원을 통해 명성을 세탁해 온 것에 맞서 싸우는 사진 작가 낸 골딘의 투쟁기다.

새클러 가문은 반세기 동안 예술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부자였다. 그 이름은 자선 활동과 거액의 기부를 상징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미술품 컬렉션을 가졌다.

하지만 실상은 마약왕이다.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에게 사살되거나 체포됐지만 새클러 가문의 사람들은 사살되지도 체포되지도 않고 여전히 슈퍼리치다.

미국 제약 산업의 자본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마약 영업 활동은 미국 국가가 공인하는 공식 의료 시스템에서 의학적 합법성을 앞세운 것이었다.

그래서 피해가 더 광범위하다.

오피오이드

새클러 가문의 중독 산업이 현재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되는 오피오이드 위기를 주도했다.

오피오이드는 아편유사제 약물을 말한다.

새클러 가문의 제약 회사 퍼듀 파마가 1996년 출시한 아편계 진통제가 옥시콘틴이다.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의 강한 중독성을 환자들에게는 숨기고 이윤 추구에는 적극 활용했다.

이 과정이 너무 노골적이라서 2007년 법정에서 그들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퍼듀 파마는 중소도시 노동계급을 표적으로 중독(오남용)을 산업화했다.

이들은 부상, 질병, 장애 등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치료, 재활, 휴식의 여력 없이 약으로 버티며 일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낙후된 노동계급 지역에서 시작된 재난은 2000년대 중반부터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는 단지 악덕 자본가의 일탈이 아니다.

퍼듀에 오피오이드를 공급하는 존슨앤존슨도 돈을 벌었고 펜타닐 오남용을 조장했다. 보험 회사, 유통 회사는 물론이고 언론, 학계, 법조계, 경찰들도 한몫 챙겼다.

퍼듀의 만행은 이들과 정부 기관이 지원·협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의사의 처방으로 중독이 시작된 환자에게 처방이 중단된다면 어떻게 될까?

길거리에서 동종의 아편제인 헤로인이나 (최근에는 주로) 가장 위험한 펜타닐을 구할 수밖에 없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2009~2019년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50만 명이 숨졌다. 2020년 사망자는 9만 명이 넘었다. 지금도 수백만 명이 고통스러워 한다.

새클러 가문은 이 사람들에게서 거의 50조 원을 뜯어냈다.

이런 진실은 6부작 드라마 〈페인킬러〉(넷플릭스)와 8부작 드라마 〈돕식: 약물의 늪〉(디즈니 플러스)에도 잘 나온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헤로인 vs. 히로인〉, 〈죽음의 진통제〉, 〈중독의 비즈니스〉도 부분적으로 뛰어나게 폭로한다.

반면,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는 사람들의 저항이 있다.

2014년 옥시콘틴 피해자가 된 낸 골딘은 2017년 단체 P.A.I.N.을 만들어 새클러 가문과 그들을 존경하는 미술계에 맞선 투쟁을 시작했다.

미술품 기증과 수백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통해 새클러 가문은 그 이름을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박물관, 대학 등에 새겨 놓았다.

영화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의 시위 장면으로 시작한다. 휘황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장 큰 전시관 이름이 새클러관이다.

2018년부터 낸과 P.A.I.N.은 뉴욕의 구겐하임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하버드 대학교의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국립초상화 미술관과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등에서 시위를 벌였다.

학술, 교육, 의료, 문화계 건물과 기금에서 새클러를 쫓아내고 법정과 의회에서도 싸움을 계속했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서, 그리고 현재까지도 새클러 가문은 체포되거나 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파산 신청을 통해 개인 소송을 면책받았다. (아직 대법원 판결 중이지만) 법이 그들을 도왔다.

8조 원 정도의 합의금을 내야 하지만, 이미 상당한 자산을 빼돌렸고, 피해자 개개인에게 돌아갈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중독 치료에도 약물이 필요하다. 날록손과 또 다른 오피오이드(부프레노르핀)가 쓰인다.

하원에서 낸은 이렇게 증언했다. “중독은 도덕의 문제도 범죄의 문제도 아니다.” “회복은 사회적, 도덕적 피해까지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피오이드 피해가 드러나고 십여 년이 넘도록 피해자들 대부분 제대로 된 치료도 회복 지원도 받지 못했다.

영화에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새클러 가문 사람들과 줌 화면으로 대면하는 실제 장면이 나온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한다.

“이 2시간짜리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16명이 더 사망자 명단에 추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

영화의 다른 절반은 골딘의 예술과 삶을 잘 다뤘다.

영화는 1960년대 보스턴 교외에서의 낸의 가족사로 거슬러 간다.

낸과 가장 친한 언니는 1964년 18세에 기찻길에 누워 자살했다. 낸이 겨우 11세 때다.

부모는 언니를 “정신 질환” 치료 시설들로 보냈었다. 언니는 성소수자였고 반항적이었다.

훗날, 낸은 언니의 담당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에서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라는 표현을 발견한다.

의사는 진단서에 언니가 아니라 어머니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기록했다.

반항적인 낸 역시 자살하게 될까 봐 14세부터 가족과 분리돼 위탁 가정을 전전해야 했다.

당시 미국은 “동성애자”는 물론이고 “반항적인 청소년”도 정신 질환으로 진단할 수 있었고 격리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위탁 가정들에서 파양돼 자유로운 “히피 학교”에 입학한 낸은 카메라를 만나게 됐고 회복하기 시작했다.

1973년 보스턴에서 아웃사이더들,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체포될 수 있던) 드랙퀸, 트랜스젠더 공동체에 소속된 낸은 친구들의 삶을 끝도 없이 사진 속에 담았다.

뉴욕에 가서도 비슷한 공동생활을 했다. 마치 진정한 가족을 만난 것 같았다.

그러나 뉴욕의 하위문화를 담은 낸의 사진들은 미술계의 정평 있는 시각과 너무 달랐다.

미술관들은 흑백의 우아하고 세련된 구도의 ‘예술적’ 사진을 원했다.

반면, 낸의 사진들은 지저분한 배경의 화려한 컬러 사진들이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 시각적 구성도 예술성도 없었다.

낸은 생계를 위해 스트립쇼도 했고 성매매도 했다. 여성들이 운영하는 (남성 경비원조차 고용하지 않는) 바에서 일하면서 거기서 사진들을 전시했다.

관객은 여러 부류의 가난한 남녀 예술가들, 활동가들, 성소수자들이었다. 사진의 인물들이 곧 관객들이었다.

이때부터 낸은 사진을 슬라이드 쇼로 전시했다.

이 방법은 필름을 현상할 돈이 없는 가난, 갤러리와 다른 (토론 가능한) 전시 환경 등이 맞물리면서 선택됐다.

낸의 즉흥적인 스냅사진 미학은 사진의 구도와 조명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다.

낸의 시선은 외부인의 것이 아니었다. 사진들이 마치 작가 자신의 가족 앨범이나 일기와 같았다.

전문가들은 “왜 작가가 자기 일상을 찍느냐”고 비판했다.

그런 비판은 19세기에 반 고흐에게도 가해졌던 것이다. 고흐는 미술의 주제를 고귀한 것들에서 일상의 것들로 민주화했다. 자기 침대, 구두, 우체부, 죄수들로 말이다.

1985년 벨벳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배경으로 상영된 낸의 슬라이드 쇼 사진집 〈성적 의존의 발라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성적 의존의 발라드〉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영화에서 우리는 〈… 발라드〉의 주요 장면들을 감상할 수 있고 낸의 목소리로 그 사연들을 들을 수 있다.

에이즈

1980년대 낸 골딘의 뉴욕 커뮤니티에도 HIV/AIDS 위기가 닥쳤다.

우익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물결을 일으켰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아래로부터 이뤄 낸 변화들을 공격했다.

성소수자들, HIV/AIDS 감염인들은 크게 위축됐다. 사회 전반의 투쟁 수준도 떨어지고 있었다. 성소수자 해방 운동은 수세적으로 변해 갔다. 활동가들은 그들만의 공동체나 정체성 정치로 후퇴했다.

그러나 정부의 느린 지원과 편협한 대응이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HIV/AIDS 감염인을 위한 연구, 치료 및 지원 자금의 지원을 거부했다.

그러자 1987년 ACT-UP(힘을 발휘하기 위한 에이즈 연합)이란 단체가 결성됐다.

이 단체는 제약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직접 행동을 벌였다.

1989년이 분기점이었다. 활동가들이 에이즈 치료제의 가격 문제로 월스트리트를 점거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 시위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하루 동안 폐쇄시켰다.

그해 12월, 낸 골딘은 〈증인들: 우리의 소멸에 저항하며〉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에 참가한 예술가들 대부분 에이즈로 이미 숨졌거나 투병 중이었다.

낸이 기획한 전시회는 천대와 혐오 속에 죽어 가는 이들의 분노를 나타냈다.

우익들이 맹렬히 공격했다. 국립예술기금은 “예술적이지 않고 정치적”이라며 지원금을 철회했다가 항의 운동에 밀려 원래대로 지급해야 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HIV/AIDS와 오피오이드라는 두 개의 위기를 연결해 다루고 있다.

두 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은 강력한 기관들에 책임을 물으며 맞서 싸워야 했다.

영화에서 우리는 1992년 에이즈로 사망한 미술가 데이비드 보이나로비츠가 미국은 “살인기계”라고 분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기 사진 속 친구들 대부분을 에이즈로 잃은 낸 골딘은 오피오이드 위기 속에서 또 다른 세대의 죽음과 울분을 보았다.

아트 워싱

“억만장자의 피부를 긁어 보면, 대개 그 돈들 뒤에는 시체들이 있다. 내 말은, 윤리적인 억만장자를 한 명만 대 보라는 것이다. 너무 어렵다.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는 여전히 그런 사람들로 가득하다.”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이런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낸 골딘이 잘 말했듯이, 예술계와 미술 시장은 자본가들이 통제하고 있다.

그들은 예술과 문화의 힘을 잘 알고 헤게모니를 유지하길 원한다. 그래서 예술의 수단들(전시장, 공연장, 상영관, 제작사, 홍보 수단)을 장악하고 있다.

또한, 위대한 미술품 컬렉션을 소유함으로써 거기서 반사되는 영광을 누리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자본가들이 좋아하는 두 가지 세탁 기능이 있다. 예술에 대한 후원은 자선의 이미지로 평판을 세탁하고 돈을 세탁할 수 있다. 미술품 매매는 흔히 비자금, 감세, 면세, 탈세에 활용된다(드라마 〈눈물의 여왕〉과 〈더 글로리〉).

미술품 매매를 이용한 삼성의 비자금 조성은 2000년대에도 수차례 폭로됐다.

2021년 이재용이 다시 수감되자, 삼성가가 소유한 수많은 미술품의 일부를 “이건희 컬렉션”으로 국가에 기증했다. 덕분에 삼성은 “이건희 기증관”을 종로에 세우게 됐고 상속세를 많이 줄일 수 있게 됐다.

BDS

종종 정치와 거리를 두듯 말하지만, 낸 골딘의 저항 정신은 충만하다.

낸은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 국가에 반대한다. 유대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유대인인 새클러 가문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대학교를 후원했다. (최근까지) 의과대학 건물이 새클러관이었고 새클러상도 시상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부터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미국 언론인과 예술가들은 언론사에서 해고당하거나 예술 산업의 부자들에게서 밥줄을 끊겠다는 위협을 당했다.

낸 골딘은 이에 즉각 항의했고, 11월 초에는 “이스라엘 편향 보도”를 일삼는 〈뉴욕타임스〉와의 협업을 중단했다.

그 전부터 낸 골딘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이스라엘에 공급하지 않았다. 이 영화도 물론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스라엘 국가 참여를 반대하는 예술가들의 행동에도 동참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5월 1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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