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활하는 학교·직장·가정, 우리가 주로 보는 드라마·영화·스포츠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는 거의 없다시피 할 것이다.
고정관념을 제외하곤 성소수자의 존재가 거의 무시되기 때문이다.
2024년은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이 예외가 될 것이다. 주인공은 서울에 사는 게이 청년이다. 드라마는 그의 친구, 연인, 가족,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원작은 박상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이다.
“나는 때때로 성소수자가 정말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순진함에 놀라곤 한다.”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에서)
《대도시의 사랑법》에 수록된 4편의 중단편 소설을 드라마는 각각 2부씩 전체 8부로 제작했다.
1화와 2화는 많이 아쉽지만 3화와 4화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가장 돋보인다.
드라마와 소설에서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는 성소수자 억압에 관한 상징적인 일화가 여럿 등장한다. 성적 지향이 ‘발각’될까 하는 두려움, ‘벽장’ 속과 같은 삶에 대한 자기 혐오, 스탈린주의(가짜 사회주의)의 동성애 혐오,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연인에게 거부당하는 고통스런 경험, 정신병원의 폐쇄병동 강제 입원과 극단적인 선택까지.
5, 6, 7, 8화에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문제와 함께 더 긴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본주의는 인간관계를 자주 뒤튼다. 냉혹한 세상이 주는 엄청난 압력과 고립감 탓에 사람들은 애정과 안정을 더욱 갈구하게 되고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만큼이나 자기중심적으로 연인을 대할 수 있다.
소설과 드라마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소설을 더 권한다. 드라마에선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3, 4화가 소설과 느낌이 꽤 다르면서도 매력적이다.
드라마와 같은 제목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도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영화는 소설에서 첫 번째 단편인 ‘재희’만 각색해 제작했다. 영화의 초중반은 호쾌하지만 뒤로 갈수록 낡은 로맨틱 코미디 작법과 설교적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흔한 통념과 달리 동성애자들이 겪는 곤경의 진정한 책임 소재는 고약한 개인이나 개인의 머릿속 후진적 의식이 아니다.
동성애라는 말 자체가 19세기 후반에 처음 생겼다(뒤이어 이성애라는 말도 처음 만들어졌다).
동성애자 억압은 자본주의에서 시작된 것이다. 자본가 계급에게 가족이 너무 중요한 노동력 재생산 단위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단결해서 투쟁할까 봐 무서워, 분열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
트럼프 같은 극우파들은 이주민, 무슬림,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체제 위기의 희생양 삼아서 맹렬히 공격한다. 윤석열 정부도 동성애 혐오주의자를 국가인권위원회장에 앉혔다.
박상영 작가의 말처럼 “소수자들에게 대도시라는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 성소수자의 하위문화는 대도시에서 번성했다. 대도시는 그의 말처럼 “인간이 너무 외로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대도시는 저항과 반란의 중심지다. 프랑스 혁명, 영국 차티즘 운동, 러시아 혁명, 독일 혁명, 1968년 반란과 함께 대도시에서 동성애자 운동과 해방의 기운이 고조됐다.
반대로 반혁명, 파시즘의 득세, 홀로코스트 속에서는 고난과 재앙을 맞았다.
한국의 동성애자 운동도 1997년 대중파업 전후로 등장했다. 동성애자 운동의 역사는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와 성패를 함께했다. 이것이 대도시의 투쟁법이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티빙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