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호랑이를 조심하라
〈노동자 연대〉 구독
그게 아니라, 그들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야만적인 행위가 전 세계에서 미국 제국주의(그리고 그 하위 파트너인 영국)의 권력을 강화할 거라고 믿은 게 실수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 제국주의의 권력은 약해졌다. 미국 제국주의는 북한을 통제하기 위해 중국에 의존해야 하고, 미국 정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조언자들 가운데 한 명인 제임스 베이커는 두 “악의 축” 국가인 시리아와 이란의 도움을 받아 이라크 탈출 전략을 수립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는 결국 이라크 모험에서 후퇴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점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에서 쉽게 후퇴할 거라고 믿어서도 안 되고 미국의 후퇴가 유혈낭자하고 야만적인 일이 아닐 거라고 믿어서도 안 된다. 제국주의가 평화적으로 후퇴한 역사는 거의 없다.
이 달[10월]은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수에즈 운하 국유화 때문에 이집트를 침략한 지 50주년 되는 달이다. 그 일은 영국 제국이 1882년 이집트를 정복하고 1919년 프랑스와 아랍 지역을 분할하며 획득한 중동 지배력을 고수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수에즈는 영국 제국의 붕괴 과정에서 처음도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니었다.
영국 제국이 처음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가장 오래된 식민지 아일랜드에서였다. 영국 지배계급은 [아일랜드] 민족 운동을 회유하기 위해 제한적 개혁(“자치”)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분열해 있었지만, 아일랜드가 영국 국가의 재정적·군사적 필요에 종속돼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했다. 그러나 1920년 여름에 그들은 거대한 대중적 저항 운동을 분쇄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오히려 점령군에게 끔찍한 반격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갑자기 깨달았다.
내각 사무처 차관은 총리 데이빗 로이드 조지에게 소요 사태에 대처할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군대가 “더 버티지 못하고 십중팔구 와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 내에서 논쟁이 12개월 동안 계속됐고, 아일랜드에서는 혹심한 탄압이 자행됐다. 마침내 영국 지배자들은 3백 년 넘게 지속된 식민지 지배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그 때조차 영국은 가톨릭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종단적 증오심을 부채질한 오랜 역사 덕분에 아일랜드 섬의 북동부 지방을 계속 지배할 수 있었고 아일랜드의 나머지 지역에서도 독립의 영향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제국을 심각하게 붕괴시킨 것은 20년 뒤 인도였다. 1백50년 넘게 식민지 지배를 받은 인도는 영국 제국주의라는 “왕관의 보석”이었다. 1942년에 대규모 ‘큇 인디아’(Quit India)[인도를 떠나라] 운동 ― 시위·파업·사보타주·기차탈선·게릴라 투쟁 등 ― 이 인도 아(亞)대륙을 휩쓸었고, 4년 뒤인 1946년 2월에는 영국의 인도 해군 전체가 반란을 일으켰다. 갑자기 영국은 인도 출신 징집병들에 의존해 다른 곳에서 영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기는커녕 제국을 더 유지하기도 힘든 가혹한 현실에 직면했다.
전에 아일랜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 ― 오늘날 탈출 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을 둘러싼 논쟁 ― 이 영국 지배자들 사이에서 되풀이됐다. 대다수 지배자들은 영국이 두 차례 세계대전 때문에 약해져서 민족 운동을 진압할 돈이나 군대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 운동의 지도자들을 설득해서 인도가 영국 제국의 방어망 안에 계속 남아 있게 ― 그래서 영국의 중동·말레이반도·아프리카 지배를 도와주도록 ― 만들 때까지 충분히 오랫동안 자신들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또다시 ‘서로 이간시켜 각개격파하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봄베이[뭄바이]의 변호사 무하마드 알리 진나가 이끄는 무슬림동맹의 위신을 세워 주며 주요 민족 운동인 인도 국민회의의 요구에 대항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탈출 전략을 통제할 수 없었다. 1947년 6월 인도 북부 전역을 휩쓴 종단적 소요 사태에 대처할 수 없게 된 영국은 인도를 두 국가로 분할하고 10주 뒤에 인도를 영원히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제국의 붕괴
인도를 잃었지만, 제국의 나머지를 고수하려는 영국 지배계급의 노력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말레이반도·케냐·키프로스에서 영국에 맞서 싸운 게릴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그러나 1956년 10∼11월 수에즈 전쟁에서 패배한 뒤 영국 자본주의는 식민지와 제국을 계속 고수하기보다는 미국의 세계 패권에 의존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른 식민지들의 독립을 하나씩 허용했다. [독립] 투쟁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는데도 그랬다.
당시, 영국보다 경제적으로 취약했던 프랑스의 지배계급은 제국을 고수하기 위해 훨씬 더 격렬하게 싸웠다. 그들은 인도차이나(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에서 9년 동안 유혈낭자한 전쟁을 벌였지만 패배했다. 그들은 또 알제리가 프랑스의 완전한 일부이므로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8년 동안 또 다른 전쟁을 벌였다. 그 전쟁도 유혈낭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프랑스의 알제리 ‘탈출 전략’이 수립된 것은 지배계급 내에서 격렬한 분열이 일어나서 일련의 군사 쿠데타 기도가 벌어지고 대통령 샤를 드골 치하에서 독재정권 비슷한 정부가 들어선 뒤였다.
이런 사례들이 오늘날과 무슨 관련성이 있는가?
이런 사례들은 대개 점령군이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에야 떠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점령군이 철수할 때 어떻게든 영향력을 유지하려 애를 쓰면서 엄청난 파괴를 자행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영국의 ‘서로 이간시켜 각개격파하기’ 게임의 절정은 아일랜드·인도·팔레스타인·키프로스에서 일어난 분열과 종단적 살육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점령군은 지금 이라크 분할 계획을 고려하고 있는데, 인종과 종파가 뒤섞인 도시들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이라크를 분할한다면 인도에서 그랬듯이 끔찍한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거의 교훈들뿐 아니라 중요한 차이도 있다. 유럽 열강이 식민지에서 철수함으로써 직면한 정치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에즈 사태 때문에 당시 영국 총리 앤서니 이든은 사퇴해야 했지만, 후임 총리 해럴드 맥밀런은 7년 동안 집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프랑스에서도 드골이 알제리에서 철수한 뒤 6년 동안이나 권좌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런 정치적 안정의 이면에는, 1940∼50년대에 식민지 직접 지배권을 잃더라도 손해가 그리 크지 않다는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깨달음이 있었다. 전후의 경제적 변화 때문에 수익성 있는 투자처들은 대부분 옛 식민지들이 아니라 다른 선진국들에 있었다. 그래서 영국·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는 식민지를 잃은 뒤에도 모두 경제 호황을 구가했다.
오늘날 미국 제국주의의 상황은 약간 다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주된 목적은 이라크 석유 지배권을 장악하고 그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서 또는 이라크 산업을 사유화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핼리버튼 같은 기업들이 엄청난 이득을 기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이라크 신드롬
네오콘들은 이라크 정복을 “새로운 미국의 세기”에 세계적 패권을 확립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더는 다른 선진 공업국들보다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다. 오늘날 미국의 산출량은 대략 유럽연합과 비슷하고, 미국의 외채는 무려 약 3조 달러[약 2천8백조 원]나 된다.
그러나 [이라크를] 점령하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원료를 지배할 수 있고,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군사 기지 사슬에서 또 다른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산들은 다른 열강과의 경제적·정치적 대치 상황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크게 강화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효과는 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의 지배자들로 하여금 미국에 굴복하지 않으면 미국이 이라크를 처리한 뒤 시리아·이란·북한과 함께 “악의 축” 명단에 자신들을 추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미국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게 만들 것이다.
대체로, 미국은 막대한 군사 예산 ― 연간 4천억 달러[약 3백70조 원](전 세계 군사 예산의 거의 절반) ― 을 경제적 용도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이라크 효과가 아니라 이라크 신드롬에 직면했다. 군사적 하드웨어에 대한 엄청난 투자도 칼라슈니코프 소총과 조잡한 도로 매설 폭탄으로 무장한 저항 운동들을 진압하는 데 효과가 없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당분간 세계 다른 지역에 투입할 미군 병력도 충분치 않다. 이란·북한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미국에 공공연히 대항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조용히 미국을 무시한 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미국 지배자들은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모험에서 후퇴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둘러싸고 여전히 분열해 있다. 헨리 키신저 같은 영향력 있는 자들은 미국이 아직도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민주당은 공공연하고 분명하게 ‘이제 그만!’ 하고 말하는 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제2정당(미국을 냉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으로 끌고 들어간 정당)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라크에서] 나올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은 단지 미국 주류 정치권에만 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냉엄한 현실 ― 저항세력에 의한 군사적 손실, 국내의 반전 정서가 추가 파병을 가로막는 ― 때문에 원치 않는 후퇴를 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미국 주류 정치권 내부에 엄청난 혼란을 수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