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경찰은 자신의 적들을 중상모략하기 위해 문서를 위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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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데일리 익스프레스〉[영국의 보수 일간지]의 칼럼니스트인 리처드 베넷조차 지난 주에 이렇게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정보기관은 반정부 또는 반체제 인사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공작을 꾸며 왔다."
1970년대에 영국 보안경찰은 해럴드 윌슨 노동당 정부를 중상모략하기 위해 유난히 더러운 공작을 꾸몄다. 1974년 집권한 윌슨 정부가 좌파와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말이다.
사실, 보안경찰은 1970년대 초에 영국을 휩쓴 노동계급의 반란을 보며 겁에 질려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지배계급의 계획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인사들을 맹공격했다.
영국 군사정보부 제5국(이하 MI5)[보안국]은 북아일랜드의 공화주의 운동과 나아가 노동당 정부까지 중상모략하기 위해 정보장교 콜린 월러스가 주도하는 '시계태엽 오렌지'Clockwork Orange)라는 더러운 공작을 꾸몄다.
놀랍게도 MI5는 해럴드 윌슨을 비롯한 노동당 각료들만이 아니라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스도 소련의 첩자라고 생각했다. 월러스의 "흑색 선전" 팀은 노동당에서 발행한 다양한 전단들을 조작했다. 그들은 영국 공수부대가 비무장 민간인 14명을 학살한 '피의 일요일'사건 기념 유인물까지 위조했다.
노동당 고위 인사 5명이 '피의 일요일'사건 배후 조종자 명단에 추가됐다. 멀린 리즈, 스탄 옴, 토니 벤, 폴 로즈, 데이빗 오웬이 그들이다. 리즈는 노동당 우파였고, 오웬도 나중에 노동당 우파들이 떨어져나가서 만든 사회민주당(SDP)에 참여한 인물이다.
MI5는 또 멀린 리즈가 "영국의 아일랜드 점령지 6개 카운티를 위해 후한 금액을 기부한 것"에 감사하며 미 의회가 리즈에게 보냈다는 문서를 위조했다. 또, 그들은 혁명을 부르짖는 내용이 담긴 〈경제학: 인류의 주인이냐 노예냐〉Economics: Master or Servant of Mankind)라는 제목의 소책자도 위조했다.
데니스 힐리는 노동당 우파였음에도, 이 소책자의 저자 중 한 명으로 등재됐다. 월러스는 '시계태엽 오렌지'공작을 계속하기를 거부한 뒤 1975년에 MI5에서 쫓겨났다.
1980년에 월러스는 조너선 루이스 살인 혐의로 징역 10년형에 처해졌다. 그의 이야기는 폴 풋의 책 《누가 콜린 월러스를 무고(誣告)했는가?》(Who Framed Colin Wallace?)를 통해 만천하에 알려졌다.
결백을 주장한 월러스의 진술은 1988년 전직 MI5 요원이었던 피터 라이트의 책 《간첩색출자》(Spycatcher)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이 책에서 피터 라이트는 MI5 내 초강경 우익 집단이 1974년과 1975년 윌슨 정부에 반대해 음모를 꾸몄다고 말했다. 그는 MI5가 윌슨 정부 관료들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해 조사하고 총리 관저 자체도 도청했다고 시인했다.
TV 프로그램 〈파노라마〉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8∼9명의 장교들이 관여했다. 그들의 목적은 총리 관련 정보가 담긴 MI5 파일을 총리에게 들이대며 '우리는 당신이 사임하길 바란다. 만일 당신이 조용히 물러나면, 이 파일을 공개하지 않겠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윌슨은 사임한 뒤, 자신의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 MI5와 MI6[군사정보부 제6국(정보국)]의 활동에 대해 불평했다. 그 음모에는 당시 노동당 2인자였던 에드워드 쇼트가 스위스 은행에 "비밀" 계좌가 있다고 폭로한 위조 문서도 포함됐다.
1974년 7월 구체적인 은행 계좌번호가 국회의원들과 〈소셜리스트 워커〉Socialist Worker)를 포함한 신문사에 보내졌다. 그 문서에는 쇼트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 수천 파운드를 받은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 중상모략은 끈질기게 쇼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몇 달 뒤 경찰 보고서는 은행 계좌가 가짜고 그 문서도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에 루퍼트 머독의 신문 〈선데이 타임스〉는 전 노동당 당수였던 마이클 풋에 관한 완전한 거짓 이야기를 꾸며냈다.
"마이클 풋은 소련 스파이"라고 적힌 포스터가 전국 곳곳에 부착됐다. 그 신문은 KGB[옛 소련의 보안경찰] 출신으로 MI6의 보호를 받으며 영국에 거주하는 오렉 고르디예프스키의 말을 인용했다.
고르디예프스키는 풋이 소련 외교관을 위해 일하며 돈을 받고 정보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는 완전한 날조였고, 풋은 신문사를 고소해 3만 파운드의 위자료를 받아냈다.
진실이 밝혀지는 데 75년 넘게 걸렸다
가장 유명한 조작 사건 가운데 하나는 1924년의 "지노비에프 편지" 조작 사건이다. 이 사건은 "레드 컴플렉스"를 부추겨 최초의 노동당 정부를 좌초시키는 데 일조했다.
노동당 소속 총리였던 램지 맥도널드의 집권 기간은 1년도 채 안 됐다. 맥도널드 정부는 부자들과 대기업들에게 자신이 믿을 만한 파트너임을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헐뜯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익들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맥도널드는 러시아 정부가 영국에 진 빚을 받아내기 위해 협상을 시작했다. 총선 직전에 우익 신문 〈데일리 메일〉은 그리고리 지노비에프가 영국 공산당에게 보냈다는 편지 사본을 공개했다.(원본은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지노비에프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지지한 사회주의자들의 국제 조직인 코민테른의 의장이었다. 그 편지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노동당 내에서 "우호 세력"을 동원하고 군대 내에 반체제 세력을 형성하라고 호소했다.
오늘날 이 편지가 순전한 날조라는 것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 당국이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기까지 75년이 걸렸다.
당시 보수당과 그 지지자들은 그 편지가 사실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1928년에 영국 외무장관 오스틴 체임벌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정보의 출처가 전적으로 믿을 만하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그 출처가 공개된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1990년대에 공개된 문서들에 따르면, 이미 1950년대에 MI6는 지노비에프 편지와 관련된 핵심 자료들을 모두 폐기했다. 1999년 외무부 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 진영에 확고하게 충성했던" 인물로 나중에 MI6의 우두머리가 되는 스튜어드 멘지스가 그 편지를 〈데일리 메일〉에 보냈음이 드러났다.
외무부 자료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러시아의 백군 보안경찰은 매우 발전되고 잘 조직돼 있었고, 베를린에 위조 전문 부서까지 갖추고 있다. 그들이 [영국과 소련 사이의] 조약을 틀어지게 해서 노동당 정부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그 위조 기술자들이나 비슷한 기술을 가진 발트해 연안 국가의 기술자들에게 문서 조작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1920년대에 사용된 기술들이 보안경찰의 무기고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언제든지 그것을 사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