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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영화평 〈하얼빈〉:
안중근을 불의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재조명하다

극우파와 우파들은 〈하얼빈〉이 개봉하기 전부터 악플 공세를 벌였다. 우리를 “개돼지”라 여기는 지체 높은 분들을 가장 통쾌하게 까발린 영화 〈내부자들〉(2015)의 우민호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심하게 자극했을 것이다.

〈서울의 봄〉과 〈파묘〉처럼 대중적인 반우파 정서에 공명한다면 〈하얼빈〉도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메시지의 강도는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영화 〈하얼빈〉은 1908년 7월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 장면에서 시작한다.

영화 〈하얼빈〉, 우민호 감독

안중근

안중근은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만, 생포한 일본군들을 풀어 주는 잘못을 범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무기까지 돌려줬다. 의병들 대부분 격렬히 반대했고, 일부는 부대를 떠나 버렸다.)

안중근의 치명적인 패착은 일본군의 기습을 불러오고, 그의 부대는 전멸하게 된다. 가까스로 (실제로는 한 달 반 만에 일본군의 추격, 숱한 죽을 고비, 자살 충동을 이겨내고) 안중근은 연추(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거주지)로 살아 돌아온다.

하지만 동지들 사이에서 불신을 사게 된 그는 고립되게 된다.

1년이 지난 1909년 9월 안중근은 식민 지배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영화는 이토를 암살하기까지 안중근의 행적을 좇는다. 이 과정은 대체로 사실에 근거하나, 일부는 사실과 거리가 멀기도 하다.

사실과 가상을 재구성한 이야기는 스릴러 장르의 관습을 따르는 동시에 안중근의 인간적인 면모를 재조명하는 데 기여한다.

게릴라

실제 안중근의 활동기는 공식적인 일제 강점기가 아니었지만, 일본이 조선을 사실상 식민지배하던 때다. 공식적인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남의 재물이나 영토, 주권 따위를 강제로 제 것으로 만듦](1910년)이 임박하자, 강렬한 저항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 시기이기도 하다.

1907년 안중근은 실력 양성에서 무장 투쟁으로 독립 운동 노선을 바꿨고 연해주로 망명했다.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당시 “의병” 즉 비정규 무장 게릴라들의 저항은 한반도의 인구 밀집 지역까지 퍼져 나갔다. 1908년 일본이 추정한 의병의 수는 6만 9832명이고 일본군과 거의 1500회 충돌했다. 하지만 1909년 그 수는 2만 5000명가량으로 줄었고 1910년에는 2000명 미만으로 확 줄었다. 그즈음 많은 반란자들이 만주와 연해주로 피신했다.

조선인들의 망명과 이주 생활은 고국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처럼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도록 현실에서 친일 우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안중근을 칭송해 왔다.

우파들

박정희를 비롯해 일제 부역 권력자들, 뉴라이트와 〈조선일보〉 같은 친일사관 주모자들은 안중근을 이용해 평판 세탁은 물론 국가와 국민의 자금 지원까지 도모했다.

실제로 안중근은 양반 지주 계급 출신으로 아버지와 함께 동학농민군 진압에 직접 앞장서는 등 동시대의 (주로 동학 운동에 뿌리를 둔) 농민 의용군이나 사회주의·민족 해방 투사들과는 배경과 사상이 달랐다.

거의 비슷한 시기, 비슷한 지역에서 활동한 김알렉산드라(1885~1918)는 철도 건설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에서 성장했다. 안중근처럼 민족 해방 투사였지만, 노동계급 혁명에 헌신하는 사회주의자였다. 앞으로 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영화, 드라마도 꼭 나오길 바란다.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30세로 죽는 날까지 안중근은 식민 지배에 부역하는 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일본군 포로를 풀어 줄 때조차, 가서 일본의 전쟁광들을 끌어내리라고 당부했다.

그러니 안중근에 대한 우파의 칭송은 역겨운 위선이다. 다만, 이제 우파는 그런 위선조차 덜 부릴지 모른다. 홍범도는 물론, 안중근까지 부정하는 (극)우파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류 우파는 더 우경화했다. 이 점은 윤석열의 12·3 쿠데타 기도 이후 급격하게 드러났다. 주류 우파가 극우파에게 근접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지정학적 위기와 경쟁, 기후·경제·정치 위기가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저항과 연대

몇몇 영화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파적 관점과 달리 과거를 박제하지 않는 강점이 있다.

눈과 피와 진흙과 온몸이 뒤엉켜 혼신을 다해 점령군과 사투를 벌이고, 동지들의 머리가 다 날아간 생지옥의 현장에서 울부짖고, 두만강 거대한 설빙 위에 쓰러져 그대로 삶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자신의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목숨임을 깨닫고는 기어이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투사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 겨울, 여의도·광화문·남태령, 또 다른 어딘가에서 저항과 연대로 추위를 녹여 본 관객이라면 아마 금세 답을 얻을 것이다.

불의에 맞서 자신을 내놓은 이들이 보여 준 헌신과 희생의 기억으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적·민주주의의 적·공공의 적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자.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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