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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보 영화의 흥행이 보여 주는 것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최근 3개월 2편이나 나왔다. 지난해 12월 말 〈서울의 봄〉과 올해 3월 말 〈파묘〉다.

각각 우파의 공인된 치부를 하나씩 다뤘다. 전자가 우파의 군부 독재가 연장되는 과정을 다뤘고 후자가 우파의 뿌리가 친일파임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두 역사는 사실상 종결되지 않았다. 우파는 광주를 욕보이는 방식으로 과거(군부 독재)를 스스로 소환하고 일제 부역 문제(친일파) 역시 그런 식이다.

〈파묘〉 개봉 즈음 우파 정치인들은 학살·독재자 우파 정치인(이승만)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하고 인증샷을 경쟁적으로 올렸다. 기고만장해진 그 영화의 감독이 “또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며 적반하장 선전포고를 시작했고 그 바람에 〈파묘〉가 더 흥행하게 됐다.

물론, 겨우 그깟 도발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해 내내 (그리고 아직까지 이어지는) 정부에 대한 넓은 반감과 낮은 지지율에는 윤석열 정부가 기시다 정부와 합의한 일제 강제동원 ‘해법’과 후쿠시마 핵폐수 방류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우파 정부에서 좌파 독립운동가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려는 등 한일 협력 강화에 발맞추는 역사전쟁을 벌인 것도 그러하다.

〈서울의 봄〉〈파묘〉는 이러한 분위기에 돛을 펼친 배처럼 흥행한 영화들이다.

이는 2012~2016년 ‘이명박근혜’ 우파 정부하에서도 두드러졌던 패턴이다. 1761만 명으로 역대 1위 관객 수를 기록한 〈명량〉을 비롯해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암살〉, 〈베테랑〉, 〈내부자들〉,〈귀향〉 등이 그러했다.

열망과 결핍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책 《천만 관객의 비밀》(2016)에서 이런 영화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망과 결핍에 광범위한 접점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이를테면 〈베테랑〉〈내부자들〉은 어떤 열망과 결핍에 통했을까?

아마도 권력자들이 저지르는 부정과 횡포가 응징됐으면 하는 열망, 실현된 적 없는 정의에 대한 결핍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기획, 제작, 배급, 홍보, 상영하는 회사들도 이런 가능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8대 대선(2012년 12월) 석 달 전에 개봉했고 〈변호인〉은 18대 대선 딱 1년 후에 개봉했다. 둘 다 문재인 후보를 찍을/은 1400만 명 이상(의 열망과 결핍)을 염두에 둔 타이밍이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최순실 재판의 여러 증언들에 따르면) 제작 배급사인 CJ와 이미경 부회장이 박근혜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히는 계기가 되었다.

2015년 말~2016년 초에 상영된 〈내부자들〉은 900만 관객 수를 기록해,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중 역대 최대 관객을 모은 〈친구〉의 기록을 깼다.

51분이나 더 짧은 〈내부자들〉이 상영되다가 인기 덕분에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이 뒤늦게 공개된 악조건 속에서 세운 기록이다.

반면, 개봉 당시 평론가들은 일제히 낮게 평가했지만, 〈내부자들〉이 후보에 오른 영화제들이 박근혜 퇴진 투쟁이 한껏 고조된 2016년 말에 열리면서 〈내부자들〉이 작품상과 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배우 이병헌은 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솔직하게 말했다. “약간은 과장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겨버린 것 같은 그런 상황이란 생각이 들어요.”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위안부’ 합의에 한층 다가선 2015년 여름, 〈암살〉이 개봉 25일째인 광복절 아침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해 12월 28일 결국 박근혜 정부는 미국 정부가 지지하는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고 이듬해 2, 3월 〈귀향〉이 깜짝 흥행했다.

두 영화 다 청산되지 않은 일제 부역(친일파)과 해결되지 않은 일제 가해 역사라는 현실과 관련 있다.

시민 펀딩으로 간신히 제작된 〈귀향〉이 3주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것은 거의 항의에 가까웠다.

이는 평등하고 공정하고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파를 싫어한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정서와 행동(저항) 사이 대개 차이가 있고 이러한 격차를 유지하는 데 개혁주의 사상과 정치 세력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럼에도 행동(저항)이 시작될 수 있고 그럴수록 정서도 고양되고 단단해진다. 2016년 늦가을부터 이듬해 이른 봄까지가 그러했다.

그럴 때에도 투쟁 속 선진적인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투쟁이 나아가게 분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