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삶과 생존권을 '퍼 준'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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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를 추진하면서 노무현 정부는 섬유·자동차 관세가 낮아져 수출이 늘어난다는 점을 가장 크게 홍보해 왔다.
물론 미국의 자동차 관세 2.5퍼센트를 없앴고 섬유 제품 중 일부의 관세를 인하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매년 15억 달러가 걸려 있다며 핵심 의제라고 선전하던 반덤핑 등 무역구제에서는 미국의 강경한 협상 자세로 거의 소득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관세 인하를 얻어내려고 한국의 자동차 관세 8퍼센트를 즉각 없애기로 했다. 쇠고기 등의 주요 농산물의 관세 인하를 약속했을 뿐 아니라 쇠고기와 유전자조작 식품의 검역 완화도 약속했다. 수출을 조금 늘리려고 식품 안전을 포기한 것이다.
더구나 관세 인하와 수출 증대가 현대·기아차 기업주들에게는 “경제적 실익”이겠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지난 몇 년간 현대·기아차는 수출 호황을 누려왔지만 비정규직 확대와 집단 해고가 거듭돼 왔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규정도 협정문에 넣어 생색은 냈지만, 북한의 비핵화 이후에나 협의할 수 있다는 ‘부실 어음’이다.
보수 언론 등의 한미FTA 찬성론자들은 관세 인하나 치열해진 경쟁으로 서비스 산업이 효율화하면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구입할 수 있어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선전을 강화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이런 효과로 1인당 약 30만 원의 소득 증대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노무현도 “사람들은 근거도 밝히지 않고 막연히 ‘양극화’라는 말만 주장하니 참으로 답답”하다고 뻔뻔하게 얘기한다.
“경제 선진화”
그러나 노무현이 추진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의 선진화”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양극화는 심해질 것이다.
사실 “사회·경제 시스템 선진화”야말로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사활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다.
한국 지배자들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선진 경제”로 가는 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에게 한미FTA는 “경제활동을 억누르고 있는 고질적인 규제와 불합리한 관행”을 날려버리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말하는 ‘선진 경제’나 서비스 산업 효율화로 평범한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완전한 사기다. 경제 시스템 선진화는 기업의 이윤에 방해가 되는 모든 규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하고 없애라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선진화’로 미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 기업도 이익을 얻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구조조정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의약품 분야에선 신약의 최저가격보장제를 제외하곤 다국적 제약회사의 요구가 거의 관철됐는데, 이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약값 부담이 크게 늘고 건강보험 재정도 악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 건강보험이 약해지면 민간 보험사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한미FTA는 공기업들에 대한 직접적인 민영화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공기업들에게 ‘상업적 이익’을 고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전부터 공기업들의 ‘상업적 공사화’를 추진해 왔고, 우리는 그 구조조정의 결과를 경험한 바 있다.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바뀌면서 원가보상률을 54.5퍼센트에서 단계적으로 1백 퍼센트로 상향조정한다며 수익이 나지 않는 역을 대거 폐쇄하고 값싼 열차 운행을 줄였다. 요금을 대폭 인상하고 동시에 어린이·청소년·장애인·경로 할인을 대폭 축소했다. 또, 3만 명 가량 되는 정규직 중 1만 명을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그 공백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려 한다.
IMF 이후 금융권 구조조정에서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고 은행의 이윤은 대폭 증가했지만, 그 이윤의 상당 부분은 은행 수수료 인상으로 생긴 이익이었다.
수익성 추구를 최대 목표로 삼는 이런 ‘선진화’ 정책은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의 제공이 아니라 국민의 사회적 기본권 박탈로 나타난 것이다.
언론은 산업별 이해 득실을 비교·분석하기 바쁘지만 한미FTA로 촉발될 효율화와 구조조정 압력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공공요금 폭등, 대규모 해고와 비정규직화, 서비스 질 저하를 겪게 될 것이다.
반민중적 협상
게다가 한미FTA 협상에서 거론되지 않은 교육·의료 분야 등도 한미FTA를 빌미로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자발적’ 구조조정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나 ‘비위반 제소’등은 신자유주의의 반민중적 내용을 거스르는 모든 시도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한미FTA는] 한미 양국의 기업에게는 최대한의 이윤을 한국(및 미국) 국민에게는 사회적 권리를 박탈한다는 측면”에서 “불평등 협정”이라고 지적했다.
김세균 교수도 “해외시장 개척, 미국 자본과의 결합, 국내시장 개방 등으로 노동 유연화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 정부 관료나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바로 한국의 국익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은 “FTA는 한 쪽이 득을 보면 다른 한쪽이 반드시 손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라고 했지만, 저들의 ‘국익’은 평범한 대중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예컨대 NAFTA 이후 캐나다에서 임시직 비율이 3배나 증가하고, 미국 제조업의 평균 임금이 13퍼센트나 감소한 반면 미국 기업 경영자들의 연봉은 4백60퍼센트나 증가했다.
한국에서도 IMF 위기 이후 10년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 비금융법인(제조업, 서비스업 등)의 가처분 소득이 6백9퍼센트나 늘어난 반면, 개인 가처분 소득은 겨우 65퍼센트 증가에 그쳤다.
따라서 한미FTA 반대 운동은 한미FTA의 반민중적 성격을 좀더 부각할 필요가 있다. ‘국익’ 논리에 강조점을 두고 산업별 이해 득실로 협상 평가가 옮겨가면 대중이 입는 피해라는 한미FTA의 핵심이 묻힐 위험이 있다.
한미FTA가 무엇보다도 반민중적이라는 점이 강조될 때 한미FTA에 일관되게 맞서 싸울 수 있고 대중적 운동 건설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