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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의 메스를 들이대며:
오직 자본의 이익을 위한 한미FTA

한미FTA 협상이 타결됐다. 노무현은 타결 후 발표한 담화에서 “오로지 경제적 실익을 중심에 놓고 협상을 진행”했고 “철저히 손익 계산을 따져서 우리의 이익을 관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 정부가 관철한 것이 과연 누구의 이익인가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이익은 한국 자본의 이익이다.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48시간 연장 협상에서 이루어진 빅딜은 한미FTA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끝까지 쟁점사항이 되던 자동차와 섬유 문제에서 정부는 몇가지 “빅딜”을 했다.

자동차에서는 배기가스 규제 완화와 세제 개편을 내주는 대신 미국 자동차 관세의 일부 조기 철폐를 받았고, 섬유 수출관세를 일부 줄이는 대신에 한국의 유전자조작식품(GMO) 규제를 완전히 철폐했다.

배기량 기준 세제 완화, 대형차 특별소비세 완화는 포드나 GM이나 현대에게는 대형차를 많이 팔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양국 국민들에게는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이고 환경정책의 포기다. 구호로 정리하면 이렇다. “자동차 기업 이익 위해 독가스 더 마시고 지구온난화 감수하자.”

섬유와 GMO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섬유 수출을 위해 “미국에서 안전하다고 규정한 GMO와 그 교배종에 대해 한국에서는 별도의 위험성 평가를 생략”하잔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GMO 안전평가를 어떻게 하나?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GMO를 동물에게 먹여 보는 실험은 시행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실험은 없다.

미국에서 하는 검사는 GMO가 일반 감자나 옥수수와 화학 성분이 비슷하다는 결과를 기업 측이 제시하면 그것으로 안전성 검사는 끝이다.(이것이 ‘실질적 동등성’에 대한 미국 기준이다)

독성실험? 판매 후 문제가 되면 그 때 예외적으로만 시행한다. GMO 동물실험? 그런 ‘비과학적인 실험’은 아예 없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해?”라는 순진한 질문은 던지지 않기를 바란다. 유럽이 GMO에 대한 실질적인 모라토리움을 시행하는 것은 정부가 주장하듯 GMO에 대한 근본주의적 거부 운동 때문이 아니다. 최소한의 안전성 평가도 하지 않으며 “사전 예방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이다.

GMO 표시제

몬산토·듀퐁·신젠타(제약회사 노바티스와 아벤티스의 합작회사) 등 다국적 종자기업의 이익과 국민들의 건강을 맞바꾼 것이 바로 한미FTA다. 당장 농림부가 올해 6월부터 모든 GMO에 대한 표시제를 실시하기로 한 것과 충돌하고 한국이 가입한 카르타헤나(생물다양성) 의정서와도 배치된다. 그야말로 막나가자는 것이다.

기업-정부 제소 제도(투자자 정부 제소 제도, ISD)에도 막판에 제동이 걸렸다. 〈유에스 트레이드인사이드〉지(紙)를 보면 셰브론 등 미국 석유기업들이 막판에 기업-정부 제소 제도의 범위가 좁아 기업 이익을 침해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아시아에서는 칼텍스(예컨대 GS칼텍스)라 불리는 셰브론은 공중 보건과 환경 정책은 기업-정부 제소 제도 대상이 아니라는 규정을 기존투자는 빼고 신규 투자에만 한정하는 것으로 관철시켰다. 심지어 부동산·조세정책도 소송대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기업-정부 제소 제도가 정부 말대로 도입해도 큰 문제가 없는 제도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석유 기업들이 할 일이 없어 막판까지 문제를 삼았을까? 기업-정부 제소 제도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업에 대한 초법적 특혜이고 기업에게 기업 이익에 반하는 공공정책에 대한 거부권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노무현은 담화에서 피해자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지킬 것은 지켰다는 것이 노대통령님의 말씀이다. 도대체 뭘 지켰다는 것인가? “미국산 쇠고기 전수검사 및 뼛조각 검사를 통한 전량 반송”과 같은 ‘비합리적’ 위생검역조처 같은 짓은 안 하겠다며 부시의 “체면을 세워 준” 노대통령이 뭘 지켰다는 것일까?

다국적 제약회사에 최소 연 1조 5천억 원 이상의 돈을 퍼주는 대신 그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석유업체에 대한 환경 정책을 포기하고, 모든 공공 정책을 기업-정부 제소 제도의 대상으로 삼아 기업 규제를 포기한 한미FTA가 뭘 지켰다는 것인가?

한미FTA는 금융 세이프가드를 풀어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통제권한을 포기하고 자동차 기업과 거대 농축산 기업과 종자 기업을 위해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포기했다. 재벌에 대한 경쟁조항은 목숨을 걸고 지키고 공기업에 대한 상업적 운영 원칙은 수용해 전기·가스·수도 등의 공공서비스가 사회적 기본권이라는 원칙을 포기했고 공공요금 폭등의 디딤돌을 놓았다. 그런데도 지킬 것은 지켰다?

물론 지켰다. 현대와 포드, GS와 칼텍스, 스탠다드차터드 은행과 삼성생명의 이익을 지켰다.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간단히 말해 이 정부가 말하는 ‘국익’을 기업의 이익, 자본의 이익으로 바꾸어 놓으면 지킬 것은 모두 지켰다.

다만 포기한 것은 노동자와 평범한 서민의 사회적 기본권일 뿐이다. 노무현의 의약품 협상 처방을 보라. 국민들의 약값 부담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다만 이제 한국 제약 자본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한다. 신약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연 수천만 명의 죽음을 대가로 2백조 원의 이윤을 걷어 가는 그 죽음의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길. 이것이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 길이라고 노대통령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한국의 앞날은 명백히 제국주의일 뿐이다.

이제 한미FTA 반대 운동은 그 첫 단계를 지났다. 이제 열우당에서조차 일부 대선주자들이 한미FTA 반대를 선언했다. 한미FTA는 필연적으로 대선과 내년 4월 총선까지 가장 큰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한미FTA 운동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한미FTA 반대 운동이 ‘국익’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기업의, 자본의 이윤을 반대하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자본의 이윤을 넘어, 신자유주의를 넘어, 더 대중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 이제 지향점을 더 분명히 하자. 한미FTA 반대 운동,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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