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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 사망 70주년:
모순을 드러내 보여 주는 철학

[편집자] 4월 27일은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죽은 지 70주년 되는 날이다. 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편집자인 크리스 뱀버리가 2005년에 쓴 글들을 모아 번역한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철학이 그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사회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는 당대의 사고방식을 사용해 당대의 문제들에 답변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특정 사회의 사상을 이루는 구성 요소다. 그람시가 볼 때 우리는 모두 철학자다. 우리의 문화·종교·민속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일상 생활 상식 등 모든 것이 특정 세계관을 담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유력한 사상은 걸러지고 파편화해서 우리에게 전달된 것으로, 흔히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처음에 표현한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대중적 의식에는 온갖 종류의 현대적·진보적 사상과 함께 끔찍한 반동적 사상도 들어 있다.

그람시가 보기에, 똑같은 노동자가 온갖 인종차별·성차별 사상을 드러내는 “걸어다니는 화석, 시대착오적 인물”임과 동시에 결코 피켓라인을 넘지 않는[파업 때 사용자 편으로 넘어가지 않는] 충성스런 노동조합원일 수 있다.

대중적 의식은 “석기 시대의 요소들과 첨단 과학의 원리들, 지역 수준의 과거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비롯한 편견들과 미래 철학 ― 세계적으로 결속된 인류의 철학이 될 ― 의 직관들을 모두 포함한다.”

그람시는 1919∼20년 혁명적 시기에 토리노 노동계급 투쟁에 몰두한 자신의 경험에서 교훈을 끌어냈다. 모순적 의식이 섞여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이 그들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율적 세력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 준다.

대중적 의식에서 혁명적 의식으로의 발전은 끊임없는 단선적 과정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말과 모순되게 행동할 수 있다. 생각과 행동의 이런 차이가 대중적 의식의 핵심적 모순이다. 노동자들은 유력한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면서도 자생적으로 반격할 수 있다.

상식과 양식

그람시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그[노동자]가 두 가지 이론적 의식(또는 하나의 모순적 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그의 행동에 함축돼 있고, 현실 세계의 실천적 변혁 과정에서 그와 동료 노동자들을 단결시켜 주는 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겉보기에 명백하거나 말로 드러난, 그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의식이다.”

가장 중요한 모순은 노동자가 받아들인 세계관과 그가 투쟁 속에서 경험한 현실 사이의 모순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을 각성하게 되고, 지배계급의 권력과 반대편에 서게 된다. 이것은 “상식”에서 엄청나게 발전한 “양식(良識)”이다.

이것은 두번째 더 높은 단계, 즉 부문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공통의 계급 정체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제, “세번째 계기는 자신의 집단적 이해관계가 순전히 경제적인 계급의 집단적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위집단들의 이해관계도 될 수 있고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단계이다.

“이것은 가장 순수하게 정치적인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전에 싹트기 시작한 이데올로기들이 ‘정당’을 형성하고, 서로 대립하고 충돌해서 그 중 오직 하나만 유력하게 된다.

“이것은 경제적 목표와 정치적 목표의 조화뿐 아니라 지적·도덕적 통일성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보편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투쟁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모두 제기한다. 그래서 다양한 하위 집단들에 대한 근본적 사회 집단의 헤게모니를 창출한다.”

그람시는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혁명에는 열성적인 비판 활동의 오랜 과정, 새로운 문화적 통찰과 사상의 확산 과정이 선행했다. 그런 사상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된 것이다.”

그람시는 혁명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노동계급이 맡은 복잡한 사명 전체를 완전히 이해하라고 모든 노동자 대중에게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당원들에게는 그렇게 요구해야 한다. 당은 전체로서 이 더 높은 의식을 나타낼 수 있고 나타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은 노동자 대중을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끌려다닐 것이다. 따라서 당은 마르크스주의를 흡수해야 한다.”

당과 당의 사상은 일상의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현대의 이론[마르크스주의]은 대중의 ‘자생적’ 정서에 반대할 수 없다. 전자는 후자로 바뀔 수 있어야 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