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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
지배계급의 권력 유지 방식을 이해하기

이명박 정부는 경찰 같은 억압적 국가 기구의 폭력을 사용해 우리의 민주적 권리를 공격한다. ‘헤게모니’와 현대 자본주의에서 국가 폭력이 하는 구실을 살펴보는 톰 워커의 글은 우리가 처한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져 있다. 전 세계에서 일자리를 없애고 수많은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고 사람들의 집을 빼앗아 간다. 자본주의는 기후 변화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서 지구를 파괴하려 한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사회 운영 방식은 자본주의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날마다 지루하고 힘든 노동을 해야 하고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마련하고 공과금을 납부하려고 애쓰는 것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체제를 받아들이는 이유를 연구했다. 그는 1918년에서 1921년 사이에 분출한 노동자 투쟁에 참여했다. 1917년 러시아를 휩쓴 혁명에 고무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했다.

그는 한때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던 노동자들이 어떻게 급진화하고 체제를 바꾸기로 결심하게 되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투쟁은 1922년에 패배했고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권력을 장악했다.

그람시는 투옥됐다. 끔찍한 환경에서도 그람시는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혁명이 러시아에서는 성공하고 이탈리아에서는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결정론적” 해석을 거부했다. 그런 해석은 심각한 경제 위기가 노동자들을 자동으로 혁명가로 만들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지배계급이 어떻게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만이 최상의 사회 운영 방식이라고 설득하는지 연구했다.

동의와 강제

헤게모니 이론은 영국 같은 현대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권력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이해하는 데서 특히 중요하다.

칼 마르크스는 “모든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하고 말했다.

그람시는 이런 생각을 더 발전시켜 어떻게 지배계급이 시민사회의 구조들을 통해 “지적‍·‍도덕적 지도력”을 유지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람시가 말한 시민사회는 교회‍·‍학교‍·‍언론‍·‍정당뿐 아니라 심지어 노동조합 같은 제도도 포함한다.

이 제도들이 모두 자본주의를 지키는 “강력한 성채와 보루 체계”로 기능한다.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상식”이 된다.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주가 부를 창출한다거나 사회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주장 따위가 상식으로 여겨진다.

자본주의를 폐지하면 대혼란에 빠지거나 전체주의가 득세한다고들 한다.

정부는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서 공포심과 차별을 부추긴다.

정부는 자신들의 실책을 은폐하려고 무슬림을 속죄양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정부는 시민적 자유를 집요하게 공격할 수 있었고 그런 공격은 고문과 긴급조치, 재판 없는 구금에서 극에 달했다.

국가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분열시키고 사람들의 투쟁 의지와 투쟁력을 약화시킨다.

터무니없이 불공평한 일이 정상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일처럼 보이게 된다.

사람들은 체제란 바꿀 수 없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열심히 일이나 하고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고 믿게 된다. 사람들이 체제에 도전하지 않기 때문에 지배계급은 동의에 의한 지배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덕분에 정부와 기업은 거의 눈에 안 보이는 방식으로 노동계급을 계속 지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더는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드러운 벨벳 장갑을 낀 철권의 지배를 받는다.

그람시도 지적했듯이 “헤게모니 행사의 특징은 … 강제와 동의의 결합이고, 이 둘은 서로 보완한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강제라는 갑옷”에 의존한다. 비록 영국에서는 이 점이 자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말이다.

6월 10일 범국민대회에서 경찰 폭력. 지배계급은 강력해서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 강제력을 사용한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사람들은 아무리 장시간 노동이나 저임금 직종이라도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만 한다. 수도와 전기 같은 필수재의 요금을 내지 못하면 집달관이 들이닥칠 것이다.

영국 국가는 일상으로 공공연하게 탄압하지는 않는다. 영국 정부는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공공연하게 반정부 활동을 조직하는 것을 허용한다. 훼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국가의 폭력적 본질을 지적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흔히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는 핀잔을 듣는다.

왜냐하면 지배자들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에만 폭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저항을 하기 시작하면 지배계급은 억압적 국가 기구들을 이용해 더 노골적인 형태의 강제에 의존한다.

의회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가 국가의 “부드러운 벨벳 장갑”이라면 경찰과 군대는 “철권”이다.

영국의 경우 가장 분명한 사례 중 하나는 1984~85년에 벌어진 광원 파업이다. 지배계급은 이 파업이 단지 탄광을 둘러싼 싸움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의 가장 강력한 부문을 격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배계급은 이 투쟁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경찰은 피케팅 대열을 폭력적으로 공격하고 대체 인력이나 파업 불참자를 보호했다. 주류 언론은 광원들을 비난하고 광원노조의 지도자들을 중상모략하고 ‘용감한’ 경찰을 편들었다.

법원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는 광원노조의 기금을 압류했다.

오늘날에도 국가 기구는 저항하는 사람들에 맞서 이런 방식으로 이용된다. 국가는 반전 시위나 기후변화 저지 행동, 고용 보장 요구 집회를 위협으로 여긴다.

국가는 경제 위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설까 봐 노심초사한다.

지난해에 경찰은 반전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했다.

경찰은 지난해 7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의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공격했으며 올해 1월에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잔인한 전쟁에 항의하는 행진 대열을 곤봉으로 진압했다.

올해 4월 G20 반대 시위에서 국가 폭력은 더욱 심각해졌다. 시위를 구경하던 이안 톰린슨이 시위 진압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뒤 사망했다.

경찰의 야만적인 시위 진압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국가는 언제나 급진적인 사람들 앞에서는 기꺼이 가면을 벗어 던졌다. G20 반대 시위에서 한 가지 새로운 특징은 카메라폰이 널리 보급돼서 국가 폭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폭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G20 반대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공격에 분노하는 정서가 점차 커졌다. 지배계급은 경찰 내에 “몇몇 썩은 사과”가 있다는 식으로 우리를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 주듯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진정한 억압적 면모가 드러난 것이다.

“철권”은 자본주의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는 요즘 더 자주 등장할 것이다. 지배계급은 공포에 질려 강제력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상식”을 문제 삼기 때문이다.

전략

그람시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저항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시민사회가 강요하는 사상에 도전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파업, 점거와 시위 그리고 저항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사는 체제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부자들은 돈더미 위에 앉아 있는데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해야 하는가? 이윤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작업장을 폐쇄해야 하는가? 왜 국가는 사람보다 재산 보호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물음이 날카롭게 제기된다.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지배적인 사상에 도전할 수 있는 지도자로 변신한다. 그와 동시에 계급 내부에서 대안적인 노동계급 문화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상아탑의 학자가 아니라 “조직자이자 지도자”인 “유기적 지식인”이 된다. 이들은 노동계급 대중의 조직과 기구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런 조직과 기구는 사회주의적 “대항 헤게모니”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람시는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혁명 전략을 내놓았다. 그는 “기동전”, 즉 혁명을 시작하기 전에 “진지전”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지전은 사상 투쟁이고 이 투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언론에서, 노동조합 같은 노동계급 대중 조직에서, 학교와 대학에서 체제의 진정한 본질을 폭로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독자적인 출판물을 내고 노동조합에서 조직하고 학생 단체를 운영하고 대규모 토론회를 열고 혁명정당을 건설하려 할 때 바로 그런 일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더딘 활동은 때려치우고 당장 거리에서 국가의 강제력에 맞서 싸우자고 주장한다.

이것은 많은 아나키스트들의 관점이고 이 관점은 헤게모니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많은 노동자는 지금도 경찰과 군대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지배계급의 주장을 믿고 있다.

물리적 대결 그 자체를 선동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며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에게서 멀어지도록 만들 뿐이다.

그러나 국가가 시위대를 공격해서 본색을 드러낸다면 국가는 지금 당장 정말로 중요한 전투인 사상 투쟁에서 우리에게 무기를 건네주는 셈이다.

광원파업을 겪으며 국가의 폭력적 본질을 깨닫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급진화했다. 경찰이 피케팅 대열이나 시위대를 공격할 때마다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진보적 투쟁과 굳건하게 연대해야 하고 체제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사람들과 대화해야 하고, 우리가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하고 스스로 조직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분쇄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자본가 계급의 지배에 직접 도전할 것이다.

번역 천형석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