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 사망 70주년:
국가, 동의, 진지전
〈노동자 연대〉 구독
[편집자] 4월 27일은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죽은 지 70주년 되는 날이다. 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편집자인 크리스 뱀버리가 2005년에 쓴 글들을 모아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한때 옛 소련과 중국을 지배한 공식 ‘마르크스주의’를 반영한다. 공식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들이 허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지만 당[공산당]의 지도를 따라 진정한 계급의식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칼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분석을 발전시켰다. 그람시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정권 치하 감옥이라는 끔찍한 조건에서 그런 작업을 했다.
그람시를 재판한 판사는 선고 결정문에서 “이 자의 두뇌를 20년 동안 정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도는 실패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많은 글을 썼다. 그러나 검열 때문에 빙빙 돌려서 글을 써야 했다.
그람시가 가장 먼저 다룬 문제는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서유럽을 휩쓴 혁명적 격변의 실패였다. 이탈리아는 조건이 러시아와 가장 비슷한 나라였고, 그람시는 1919∼20년의 “붉은 2년” 동안 토리노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토리노는 이탈리아의 대규모 공업 중심지였다.
그람시는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들인 레닌과 트로츠키가 서유럽과 동유럽의 차이에 대해 주장한 바를 발전시켰다.
그람시는 지배계급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 ― 반(半)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인 ― 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지배계급은 국가의 강제력뿐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동의를 통해서도 지배한다.
짜르 치하 러시아에서는 시민사회가 막 생겨나고 있었다. 그 시민사회는 “원시적이고 젤라틴[아교]과 비슷한” 상태였다. 러시아에서는 국가의 강제력이 압도적이었다.
혁명가들의 과제는 기회가 왔을 때 국가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람시는 이것을 “기동전”이라고 불렀다.
서유럽에서는 지배계급이 대부분의 시기에 [피지배계급의] 동의에 의존했고, 시민사회 내에 다양한 기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기구들은 거대한 요새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방벽 구실을 했다.
그람시에 따르면, 그런 기구들과 그런 기구들이 사회 전체에 퍼뜨리는 사상을 무너뜨리려면 직접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오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여야 한다. 혁명정당은 노동계급과 다른 피업악 집단들에 대한 지도력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람시는 이를 “진지전”이라고 불렀다.
붉은 2년
그람시는 “진지전”이 투쟁, 즉 노동계급 내에서 “유기적 지식인들”을 창출하는 데 집중하는 일상의 사상 투쟁을 포함한다고 봤다. 이 “유기적 지식인들”은 노동계급의 필수적 일부로서 노동계급과 관계 맺고 있는 혁명적 노동자들이다.
동유럽이든 서유럽이든 국가는 탄압과 동의에 의존해 지배했다. 그람시는 국가가 서유럽에서 더 강력하고 압박을 받으면 [동유럽에서보다] 더 강력한 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진지전”의 일환인 참호전은 어느 시점에서는 공세로 전환할 것이다. 즉, “기동전”으로 바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혁명정당과 노동계급의 역동적인 쌍방향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토리노 노동계급 투쟁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돌아보며 그람시는 노동계급의 자생적 반란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자생성’이라는 요인은 무시되지 않았고 하물며 경멸당하는 일은 더욱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교육받았고, 지도받았고,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는 이질적 요인들이 모두 제거됐다.”
1924년에 그람시는 혁명정당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혁명적 대중의 자생적 운동과 중심의 유기적인 지도 의지가 서로 수렴하는 변증법적 과정의 결과물.”
다른 곳에서 그는 “‘자생성’과 ‘의식적 지도’의 통일”을 주장했다. “정당이 강력하게 중앙집권화돼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기층 당원들 속에서 엄청난 선전·선동이 필요한 것이다. 정당은 당원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 수준을 조직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당원들은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로봇들이 아니다. 그람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당원들이 능동적인 정치적 인자, 지도자여야 한다.”
당은 일상의 투쟁 속에서 지도력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지도는 ‘추상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과학적·추상적·이론적 공식들을 기계적으로 반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 현실의 행동을 이론적 논문과 혼동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현실의 사람들에게 스스로 맞췄다.” 모든 당원은 작업장·학교·지역사회 등 자신의 “주위 환경” 안에서 지도자가 돼야 한다.
1937년 질병과 파시스트 정권의 학대 때문에 죽을 때까지 그람시의 궁극 목표는 여전히 혁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