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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의 본질은 한미FTA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EU가 다른 국가들과 맺은 FTA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해 주시죠.

미국이 직접적이고 공세적으로 시장 개방을 요구한다면, 유럽은 원조 형태로 시장에 진입하고 개방하는 형태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다국적자본의 이해를 관철한다는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죠.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이후에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 과정을 보면 대단히 빨리 미국과 합의에 도달했고, GATS[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 등에서는 큰 문제 없이 타결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럽은 아직까지는 세계 1등 지위를 미국에게 양도하고 대신 미국을 쫓아가면서 이익을 취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멕시코처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경험하거나, 칠레처럼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이고 민영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나라들과 맺은 FTA는 강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한국은 상당히 많은 부문에서 개방을 천명했고, 경제특구에서 상당히 많은 개방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이 공세적 자세를 취하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이번 한-EU FTA 협상 대표인 맨덜슨과 유럽 상공회의소장이 밝힌 것처럼 한미FTA의 기본틀을 가져간다고 하니까 미국의 뒤를 쫓아 ‘후발 주자’의 이득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EU FTA가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지적재산권 같은 경우는 EU가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한미FTA와 마찬가지로 의약품 등에서 큰 영향이 있겠죠.

금융에서도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특히 유럽이 생명보험이 강한데, 이미 알리안츠·ING생명 등 많은 기업들이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국민연금도 이미 시장과 연계 속에서 전이되고 있는데, 한-EU FTA가 체결되면 적극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다음 파장이 큰 게 물기업들이죠.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사례는 물 사유화의 대표적인 폐해입니다. 베올리아와 온데오 같은 세계 5대 물기업이 대부분 영국·프랑스 회사거든요. 따라서 물기업들의 [물 사유화] 공세가 거세질 것입니다.

이미 다국적 물기업들이 한국 지방자치체를 통해 접촉을 해오고 있고, 이런 것들이 더 나가면 정부 조달 문제도 커질 듯합니다.

그리고 택배·우체국 등이 협상 대상이 될 수 있고, 제가 보기에는 전력 부문도 협상 대상이 될 듯합니다. 유럽은 공장 지역마다 전력 회사가 다른데 이런 것들이 한국에도 들어올 가능성이 있죠.

결국 공공 서비스가 사적인 영역으로 이행되는 건데, 우리 나라 지방자치체들이 대부분 재정 압박을 느끼고 있어서 이런 사유화에 큰 유혹을 느끼고 있죠.

사회 공공 서비스들은 계급 갈등의 산물인데, 이런 것들이 사적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은 역사 발전의 후퇴인 셈이죠.

사유화 비용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고 서비스 질도 저하하겠죠. 그리고 사회 연대가 깨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한국 진보진영의 일부는 EU와 미국은 다르다고 보기도 합니다.

물론 유럽의 사민주의적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와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에게 전략은 다를 수 있지만 기본 성격이 다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1990년대 블레어나 슈뢰더, 죠스팽 등에 이르러 사민주의가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 것으로 나갔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민주의 모습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1996∼97년에 유럽 국가 대부분에서 사민주의 정당들이 집권했는데, 당시 유럽 정상들이 모인 리스본 회의에서 유럽이 주주자본주의로 전환을 선언합니다.

제가 이미 얘기했지만 GATS 협약에서 비교적 손쉽게 타결에 이른 것을 봤을 때 미국과 유럽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렇다면 한-EU FTA 반대 운동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요?

한미FTA가 비준이 안 된 상태에서 하나 더 추진되고 있어서 싸움이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한미FTA 비준에 진보진영이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미FTA 반대 투쟁에서 우리가 다시 결집을 해내고 이 싸움을 유리하게 진행한다면 EU FTA와 싸움에서도 새로운 동력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5월 12일] 언론을 보니까 미국에서 추가 협상 요구를 했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싸움을 재개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이런 일련의 싸움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닌 만큼 반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각국 사회 세력의 연대가 굉장히 필요합니다.

진보진영에게도 진보적 개념의 아시아 공동체 또는 대안적 거버넌스[통치] 체제가 필요합니다. 시민사회세력이 연대하고 진보진영이 담론을 구성하는 게 필요하죠.

FTA 반대 투쟁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진보진영이 모인 만큼, 정치적 상상력을 최대한 실험하는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