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역 한국 어선 납치의 배경:
전쟁과 빈곤이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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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한국 청해부대가 군사적 공격을 가해 소말리아 ‘해적’ 8명을 사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적에게 억류된 한국인 선원들을 구출한다는 게 공격의 명분이었다. 현재 한국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아덴만 여명’ 작전이 성공했다”며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소말리아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이 지역에서 패권 유지와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 침략과 점령, 대량 민간인 학살을 자행해 온 미국 제국주의에 소말리아 상황의 책임이 있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 민중들은 끔찍한 기아와 빈곤에 시달려 왔고, 절망적 상황에서 일부 소말리아인들이 ‘납치’와 ‘약탈’을 생계 유지 수단으로 삼게 된 것이다.
파병을 통해 제국주의 침략과 학살을 지원해 온 한국 정부도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제 ‘해적 소탕’이라는 빌미로 소말리아에서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려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번 무모한 군사 공격이 이뤄진 것이다.
〈레프트21〉은 독자들에게 이런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예전에 실렸던 관련 기사들을 재게재한다.
지난 5월 15일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한국 원양어선 2척이 납치됐다. 이 어선에는 한국인 4명을 포함해 20여 명의 선원들이 타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한국 어선이 납치된 것은 지난해 4월에 이어 두번째다. 지난해에는 한국인 선원 4명이 타고 있던 동원호가 납치돼 1백17일 만에 풀려났다.
이 지역에서 선박 납치가 빈번한 이유를 알려면 소말리아의 비극적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1960년 독립 이후에도 소말리아의 정치와 사회는 안정되지 않았다. 1969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1970년대 말에는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치렀다.
이런 불안정 뒤에는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 경쟁(냉전)이 있었다. 소말리아 군부 정권은 처음에 소련의 지원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미국의 후원을 받아 에티오피아의 친소 정부와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의 패배 여파로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내전이 시작됐고, 군대는 군벌들로 쪼개져 서로 싸웠다.
미국 정부는 1992년에 소말리아 상황을 안정시킨다는 핑계로 침략군을 보냈다. 그러나 침략군은 소말리아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쫓겨났다. 그 뒤 2006년 이슬람법정연합(UIC)이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할 때까지 내전이 계속됐다.
“비인도적 행위”
오랜 전쟁과 내전의 결과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내전 과정에서만 30만 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했고 6백만 명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전쟁과 가난에 지친 많은 소말리아인들은 UIC가 안정을 가져다 주기를 바랐다.
UIC 의용군은 대중의 진정한 지지가 있었기에 군벌들을 몰아내고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1월 미국의 후원을 받은 에티오피아 군대의 침략으로 소말리아인들의 소박한 바람은 산산조각났다.
평범한 소말리아인들은 에티오피아 군대의 후원을 받는 현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 군대는 점령에 맞선 소말리아 저항세력을 공격하며 무고한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겨우 석 달 동안 4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최대 규모이다. 유엔구호처 대변인은 소말리아 정부와 에티오피아 군대가 구호물자 공급을 방해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바로 이런 절망적 상황 때문에 소말리아에서는 납치와 약탈이 생계 유지 수단의 하나가 됐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동원호 납치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납치를 “비인도적 행위”로 비난했다. 선원들은 당장 풀려나야 한다. 그러나 1993년 서방 제국주의의 소말리아 침략을 도와 군부대(공병대)를 파견한 적이 있는 한국 정부는 납치 단체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당시 미군은 소말리아인 1천여 명을 학살했다.
무고한 선원들이 납치되는 비극을 멈추려면 소말리아가 안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미국 정부가 제국주의 간섭을 중단하고 에티오피아 군대가 즉각 철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