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버마 군사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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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군사정권이 폭압적 탄압으로 민중항쟁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최소 2백여 명이 희생되고 1만여 명이 연행됐는데, 연행자 중 6천여 명이 승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시위는 줄어든 듯하지만, 버마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은 꺼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군사정권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국영방송의 뉴스에 항의해, 뉴스가 방송되는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집에 있는 TV나 라디오를 끄고 있다.
연행된 버마 승려들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중인 버마인 활동가 소모뚜 씨는
단식농성
국제적인 항의 운동도 벌어져 버마 군사정권을 규탄했다. 영국 런던에서는 1만여 명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고 세계 35개국에서 버마 군사정권을 규탄하는 국제공동행동이 10월 6∼7일에 진행됐다.
10월 7일 명동에서도 버마인과 한국인 1백50여 명이 모여
계속된 버마 민중의 영웅적 저항과 국제적 연대 운동으로 버마 군사정권은 이미 큰 타격을 받았다.
군대 내에서 균열도 나타나고 있다. 시위 진압에 동원됐다가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타이로 망명한 히타이 윈 소령은
이 때문에 버마 군사정권은 탄압뿐 아니라 유화 제스처도 취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막아 온 독재자 탄 쉐가 유엔 특사를 만나 아웅산 수치와 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수치가 군정에 맞선 반대 활동을 중단하고, 경제제재 등 제재안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버마 민족민주동맹
그럼에도 수치가
그러나 수치가 군부와 타협하는 것을 지켜보며 민중항쟁을 건설
따라서 아웅산 수치의 행보에 상관없이 버마 군사정권을 완전히 몰아낼 때까지 투쟁해야만 버마에서 완전한 민주화가 가능할 것이다.
운동 속의 혼란 - 버마 민중항쟁을 분명히 지지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에
이런 주장에는 버마 군사정권이
그러나 버마 군사정권은 말로는
오한강은 친서방 지도자를 뒀다는 이유로 버마 민중항쟁에 대한 지지를 꺼린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친서방적인 김대중이나 김영삼을 지지했다고 해서 그 항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오한강은
또, 오한강은
결국, 버마 군사정권에 반대해 민중항쟁을 지지하는 태도는 비판받을 입장이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