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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버마 곳곳에서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강동훈 기자가 버마 민주화 운동가 마웅저 씨를 만나 버마 현지의 투쟁 상황과 배경에 대해 들었다. 마웅저 씨는 자신을 난민이자 이주노동자, 고국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민주화 운동가라고 소개했다. 8888항쟁 참가자인 그는 군부독재의 가혹한 탄압으로 버마의 시위가 잠시 소강인 듯 보이지만 수백, 수천 명 단위의 시위가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는 언제 오셨고 버마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1994년 7월에 버마를 떠나 한국에 왔습니다.

저는 버마판 5·18항쟁인 1988년 버마 민주항쟁에 고등학생으로 참가했어요. 그 뒤부터 반군부독재운동을 했어요. 1990년 5월에 총선거가 있었는데 그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 홍보 활동을 했고 저도 거기에 참가했습니다. 총선거 이후에도 반군부독재 활동을 하면서, 총선거에서 선출된 민간 정부에게 정권을 이양하라고 요구했죠.

그런데 1992년과 1993년에 믿을 만한 친구와 선배 들이 다 체포당했어요. 저도 체포당할 것 같아서 피신해 국제 연대 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한국에 오게 됐어요. 브로커를 통해서 비즈니스 비자를 얻어서 한국에 왔어요. 농담 한마디 하자면, 민주화 운동 하려고 비즈니스 비자 얻어 온 셈입니다.

최근 버마 민주화 운동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번 시위는 우연히 일어난 시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 총선거로 선출된 정부에게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군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인권 탄압·정치 탄압·강제 노동·강제 이주 등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고 시민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어요.

그러던 중 지난 8월 15일에 기름값이 갑자기 올랐어요. 경제 문제가 심해지자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8월 17일에 시위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2주 뒤부터 민주화 요구가 포함됐어요.

8월 17일부터 계산하면 한 달이 훨씬 넘은 것이죠. 9월 5일에는 스님들이 집단적으로 참가했어요. 그 날 스님들이 폭력 탄압을 당했어요. 전봇대에 묶어 때리고, 옷을 벗기고, 체포하고 …. 우리는 일본과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거쳤지만 그 때도 이런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버마인들끼리 사는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나니 시민들이 엄청 화났지요.

버마에서는 스님들이 국민들의 절대적 존경을 받습니다. 스님들은 “17일까지 사과해라. 그러지 않으면 18일부터 총파업하겠다” 하고 경고했어요. 하지만 17일까지 아무 대답이 없었고 스님들이 18일부터 전국에서 총파업했어요.

스님들의 총파업이란 스님들이 정부와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군부는 두 가지 방법으로 통치해 왔죠. 하나는 총을 이용해서, 다른 하나는 불교를 이용해서. 매일 신문의 1면에 군인들이 절에 가서 기원하거나 시주하는 게 나오는 거예요.

총파업은 군인들더러 절에 오지 말라는 거예요. 버마 사회에서 이 의미는 큰 거예요. 스님들이라면 모든 동물까지 사랑하는 건데 군인들과 관계를 끊는다면 그들이 동물보다 못하다는 거니까요.

요새도 버마에 연락이 닿나요?

2, 3일 전까진 아내하고 연락이 됐어요. 근데 인터넷이 완전히 폐쇄당했고 전화 연락도 힘들어요.

지금까지 실종된 사람이 몇 천 명이 된다고 해요. 어떤 사람은 시위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일하러 가거나 학교 간 사람들도 연락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군인들이 큰 절에 들이닥쳐 스님들 몇 백 명을 잡아갔는데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는 거죠.

밤에 군인들이 군용 차량을 이용해 시체들을 옮기고 불태운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요.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 통행금지인데다, 낮에도 군인들이 거리를 지키고 있어서 [얼마 전처럼] 5만 명, 10만 명 규모의 시위는 계속 못하지만, 5백 명∼1천 명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어요.

군부가 시민들의 요구를 끝까지 거절하면 시위가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사망자가 더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끝내 군부독재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민주화 운동은 어떻게 조직되고 있나요?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학생 단체나 노동자 조직이 있나요?

1974년 ‘버마식 사회주의’가 선포되면서 모든 조직들이 불법으로 폐쇄당했어요. 그 전에는 학생·노동자·농민 등 여러 조직들이 있었는데, 다 없애버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군부독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하고 생각했어요. 국제 사회에서는 아직도 버마가 사회주의 국가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우리는 버마가 사회주의 국가가 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해요.

버마에는 한국의 한총련처럼 유명한 학생 단체가 있어요. 이 단체는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있었어요. 해방운동 지도자들이 이 단체 출신들이예요. 이 단체도 1974년 이후에 폐쇄당했지만 지하운동은 계속돼 왔어요.

1988년 항쟁은 학생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참여했고, 그 때 노동자·농민·공무원들의 단결이 잘 돼서 성공했어요. 군인과 경찰들까지 참가했죠. 결국 군부독재는 우리의 요구를 받아 1990년에 총선거를 실시했어요. 물론 군부가 그 약속을 어겼지만요.
지금 버마에서 시위가 두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도부는 없는 상황입니다.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 상태이고, 제2의 아웅산 수치들은 8월 21일에 다 체포당했어요. 학생 지도자 13명을 포함해서 2백 명 정도의 활동가들이 체포된 거예요. 지금 숨어서 운동하는 지도자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군부는 운동지도자들을 체포하면 시위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위가 계속되고 있어요. 도시에서만이 아니라 지방에서도 시위가 있습니다. 이 시위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시위, 아래로부터 민주화 운동이라고 봐요. 1988년 항쟁도 일반 시민들과 학생들의 시위에서 시작됐죠.

1988∼89년에 체포된 학생 지도자들이 2003년부터 풀려나면서 기층 운동을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민주화 항쟁 기념 행사와 인권 단체 활동이 생기고, AIDS 환자 지원 모임, 강제노동·강제이주에 반대하는 모임과 참가자들이 생겨났어요. 이처럼 아래에서부터 준비한 효과가 지금 시위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버마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요?

버마의 초등학교 교사 월급은 한국 돈으로 3만 원 정도예요. 그런데 핸드폰이 3백만 원 정도 돼요. 이거 하나만으로도 버마 경제 문제를 알 수 있을 거예요.

보통은 사회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스님들이 이번 시위에 참가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루에 밥 한끼 먹기도 힘든 버마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난한 시민들이 절에 밥 얻어먹으러 오니까요. 스님들도 아침에 동네 돌아다니면서 시주해서 먹는데 말입니다.

버마는 농업국가예요. 60퍼센트가 농민이에요. 그런데 하루에 밥 한끼 먹기 힘들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또, 버마에는 천연가스와 기름이 많아요. 대우도 가서 투자하고 있잖아요. 이런 사회에서 기름값이 갑자기 올라 국민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 경제 문제를 알 수 있습니다.

교사뿐 아니라 대학 교수도 월급으로 가족들의 사생활을 해결할 수 없어요. 돈벌기 어렵고, 물가도 비쌉니다. 1988년에 일어난 시위는 민주화 요구를 중심으로 시작된 것인데 지금은 경제 문제가 크게 다가오는 거예요.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버마에 있는 제 친구와 선배 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위가] 2007년 안에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록 군부독재가 온전히 무너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4가지 요구사항[기름값 폭등과 관련된 경제문제 해결, 승려 폭행에 대한 사과, 연행자 석방, 야당지도자들과 대화에 나설 것 ― 편집자]이 받아들여져서 민주화를 위한 준비가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연대 운동을 건설하고 계신데, 바라시는 바가 있다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아무 생각 없이 버마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런 투자 때문에 강제 노동·강제 이주·인권 탄압의 문제가 생기고 있어요.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외교 관계를 포함해 모든 일을 다시 생각해 줬으면 합니다.

현재 버마 상황은 긴급한 상황입니다. 국제 사회가 버마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이해한다, 관심 있다는 이야기와 성명서에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것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지금 버마의 시위는 한국의 6월 항쟁과 같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5·18 민주화 항쟁을 다룬 최근 영화 〈화려한 휴가〉는 버마의 8888 이야기 같기도 해요.

그래서 그 영화 대사 중에 마음에 와 닿고 계속 기억되는 게 있어요. 끝부분에 여성 활동가가 “저희는 도청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하고 외치잖아요.

저도 그 여성의 말을 빌려서 한국 시민들한테 다시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현재 버마 시민들이 아시아의 평화, 버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정리 강동훈, 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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