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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90주년 특집 ⑵ ①:
혁명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가?

올해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9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러시아 혁명 90주년 특집 기획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혁명은 나쁜 일이다. 적어도 사회 혁명은 그렇다. 혁명이 최상층의 정치적 변화에 한정된다면 그건 괜찮다. 변하는 것은 단지 케이크 위에 얹힌 크림일 뿐이니까 말이다. 언젠가 프랑스 혁명가 바뵈프가 말했듯이, 그런 혁명은 한 무리의 도적들을 다른 무리로 바꿀 뿐이다.

진짜 문제는 ‘약탈’ 과정 전체를 위협하는 혁명이다. 그런 혁명에서는 누가 사회와 자원을 통제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어느 역사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이 때 혁명이 ‘납치’된다. 다른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혁명은 자제력을 잃고 스스로 몰락한다. 또 다른 사람의 표현으로는, 혁명이 자식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 최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위안이 되는 이론이다. ‘너희들은 우리만큼 강해질 수도, 부유해질 수도 없다. 우리가 너희들의 운명을 좌우하지만,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아라. 결국 손해를 보는 건 너희일 것이다. 우리의 힘과 부를 봐라. 우리가 너희를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열심히 일해서 우리를 더 부유하고 강하게 하는 것이 가장 나은 일이다.’

이것은 보수주의자들과 보수주의 역사학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해묵은 얘기다. 그러나 한때 진보적이었던 역사학자들이 지난 20∼30년 동안 이런 주장을 다시 반복했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의 실패가 “필연적”이었다고 말한다.

수정주의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혁명은 실패한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은 그 중에서도 최악의 실패였다.’ 이른바 이런 수정주의자들은 때때로 새로운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신의 주장을 포장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극단적 사상·과대망상·군중심리·권력을 잡은 정신병자 등의 위협에 관한 뻔한 주장을 되풀이한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믿지 말라. 인내심을 가지고 점진적 개혁에 만족하라.’

진실은 사뭇 다르다. 혁명은 분명 혼란스럽다. 그러나 또한 혁명은 창조적이다.

1917년 말 혼돈 속의 러시아에서 〈가디언〉 기자 모건 필립 프라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도시·마을·병사들의 주둔지에 혁명 평의회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혼란이 오십 배는 더 심각했을 것이다. … 물론 영국과 그 동맹국들의 지배계급, 이곳[러시아] 부르주아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러시아 혁명으로 연결된 모든 운동들을 비난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에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반박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진정한 혁명에서 사회는 양극화한다. 사람들은 시험대에 오르고 어느 한 쪽 편에 서게 된다. 이런 일이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다음에 일어날 일에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 혁명은 당시까지 가장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 일어났다. 러시아 혁명은 그런 전쟁을 끝내고, 그것을 초래한 사회를 타도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전쟁을 초래한 러시아 안팎의 세력들은 혁명을 파괴하기 위해 서로 협력했다. 러시아 혁명은 자신의 내적 논리가 아니라 개입과 내전에 의해 ‘일탈’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구질서 세력이 특권을 되찾으려 했다면, 러시아 밖에서는 혁명의 성공을 두려워했다. 레닌은 ‘모든 요리사가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혁명은 언제나 특권을 고수하고 아래로부터의 도전을 분쇄하려 한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유혈 사태가 거의 없었다. 희생자가 늘어난 것은 1918∼1921년 동안이었다.

이미 제1차세계대전에서 수백 만의 목숨을 희생시킨 각국 정부들은 러시아에서 반혁명을 지원하는 데 흔쾌히 응했다. 상황이 절망적이었기 때문에 절박한 조처들이 불가피했다. 그런데도 오늘날 역사가들은 모든 책임을 혁명가들에게 떠넘기는 데 열을 올린다.

그러면 스탈린을 낳은 [혁명의] 퇴보가 1917년부터 필연적이었다고 주장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스탈린은 혁명의 [국제적] 확산이 실패하고, 외국이 지원한 ‘내전’으로 러시아 사회와 혁명을 일군 대중이 와해되면서 생긴 공백 덕분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레닌과 스탈린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보수적 견해가 거의 20년 동안 득세했다. 올란도 피제스(Orlando Figes)가 러시아 혁명에 대해 쓴 《민중의 비극》 같은 책들은 혁명에 대한 비관주의를 유포했다. 이런 비관주의는 학교 교과서에 반영됐고 미래의 고분고분한 노동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한동안, 그러니까 1990년대에 마치 역사가 끝난 것처럼 보였던 잠시 동안, 이런 비관주의가 옳은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미적지근한 시대는 뜨거운 사건들에 대한 미적지근한 얘기를 요구했다.

도전

그러나 러시아 혁명 90주년을 맞는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신자유주의가 자신의 약속을 실현하는 데 실패하면서, 한때 급진주의자였던 사람들[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의 자기만족은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받고 있다.

불평등은 커지고 계층이동은 감소하고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에 옛 논쟁이 재연되고 있는데, 그것은 최근의 상황 변화 때문이다.

1917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쟁의 포연 즉 이라크 속에서 자유주의자들과 그들의 신념을 평가하고 있다. 그들의 현실주의가 우리를 이 수렁에 빠뜨렸다. 우리는 또한 강대국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세계를 재편하려할 때 얼마나 쉽게, 거의 아무렇지도 않게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1917년에 대중에게 영감을 준 것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었다. 그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비극이자 우리의 비극이다. 그러나 가장 큰 비극은 우리가 그런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이 아닌 다른 대안이 평화나 안정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강대국들의 충돌은 격화하고 있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반면 빈민은 그저 자기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세계는 절실히 필요하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며, 올바른 역사적 평가는 우리가 그것을 쟁취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마이크 헤인즈는 월버햄튼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며, 《러시아: 계급과 권력 1917∼2000》(Bookmarks) 등 러시아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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