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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자본론》 ①:
신비화된 체제의 베일을 벗기다

이 글은 《자본론》에 대한 4회 연재 기사의 첫 편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신의 기원을 은폐하는지 알아본다.

1872년에 쓴 편지에서 칼 마르크스는 불어판 《자본론》을 연재물 형식으로 출판하려는 계획을 칭찬했다.

“그렇게 하면 《자본론》은 노동자들에게 더 쉽게 읽힐 것입니다. 다른 어떤 고려사항도 이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자본론》은 일반적인 경제학 저서들과는 사뭇 다르다. 한 장, 한 장이 독설로 가득하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모든 혁신이 개별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이뤄진다.”

“그런 혁신은 노동자의 인격을 조각내고, 그를 한낱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며, 노동에서 마지막 남은 즐거움마저 말살해 노동을 혐오스러운 고초로 만든다.”

마르크스는 오로지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을 규명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타도를 재촉할 목적으로 《자본론》 세 권을 집필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또한 독자들이 《자본론》과 씨름하다 지쳐서 “사기저하” 될 것을 걱정했다.

그는 프랑스 출판사에 보낸, 앞서 말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과학에 왕도는 없습니다. 오직 과학에 이르는 험난한 비탈길을 마다하지 않는 자만이 그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본론》을 읽다가 많은 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르크스의 글쓰기 스타일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본론》의 주제 자체, 곧 자본주의의 성격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그 전의 체제들과는 다르다. 인류는 하나의 종으로서 지구상에 등장한 뒤로 줄곧 여러 방식으로 상호 협력하면서 필요한 재화를 생산해 왔다.

옛날에는 생산 활동이 수렵 또는 농경 위주였던 반면 오늘날의 생산 활동에는 첨단 기술이 동원된다.

이전 사회의 구성원들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이 소비할 재화를 생산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자동차를 하루에만 몇 대씩 만드는 노동자들도 막상 자신은 평생 차를 몇 대 소유하지 못하며, 그들이 자동차만으로 먹고살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맥도널드 노동자들이 햄버거로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품 물신주의

《자본론》 첫 페이지에 마르크스가 썼듯이,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지배적인 사회의 부는 어마어마하게 축적된 상품 더미로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본주의는 상품 생산 체제다. 즉 여기서는 재화가 시장에 팔리기 위해 생산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이뤄지는 극히 단순한 경제 행위, 가령 구멍가게에서 신문을 사는 행위를 생각해 보자. 돈이 당신 손을 떠나고 그 대가로 상품 하나가 손에 쥐어진다.
이 행위는 겉으로 보면 물건들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는 듯 보인다(동전 몇 푼에 신문 한 부). 하지만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신문은 과연 어디서 나왔는가?

신문의 콘텐츠는 기자들과 디자이너들이 생산했다. 활자는 인쇄소의 노동자들이 인쇄했고, 신문지 자체는 또 다른 생산 과정을 거쳤다. 또 그 밖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인쇄기와 기자들의 컴퓨터를 생산했다.

단순한 물건 대 물건의 교환처럼 보이는 행위가 사실은 끝없이 펼쳐진 인간 대 인간의 네트워크(특히 상품 생산에 관여하는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들을 연결짓는 구실을 한다.

이전 사회에서는 재화를 생산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눈에 빤히 보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는 그런 관계가 은폐되고 불가사의해진다. “사람들 간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가 오히려 “물건들 간의 관계 같은 신비한 형태”를 띄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상품 물신주의”라고 불렀다.

종교적 의미의 “물신”은 신통력을 지닌 물건을 뜻한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인간이 생산한 물건이 그 자체의 생명력을 얻어 “물신화”한다.

이러한 물신은 종교적 의미의 물신과 다르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물건들이 실제로 신통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다른 모든 상품과 교환이 가능한 특수한 “보편적” 상품인 돈을 생각해 보자. 돈은 매우 실질적인 힘의 원천이다.

심지어 돈은 이자 등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끌어들이는 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돈이 이러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신비화돼 있다.

《자본론》이 쉽지 않은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온전히 설명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체제의 근저에 놓인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파헤쳤기 때문이다.

《자본론》의 출발점이 되는 질문은 간단하다. 한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유 한 팩과 신문 한 부의 가격이 같은 것은 왜일까? 우유와 신문은 용도와 성질이 전혀 다른 물건들이다. 생산된 방식도 서로 다르다. 그런데도 둘이 같은 가격에 팔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음 편에서는 바로 이러한 질문들을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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