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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자본론》 ③:
이윤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 글은 《자본론》에 관한 연재 기사 세 번째 편으로, 착취의 과정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글에서는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시간에 비례함을 알아보았다.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산 노동’(노동자들이 방금 막 투입한 ‘신선한’ 노동)과 ‘죽은 노동’(원자재, 기계 등에 집적된 과거의 노동)이다.

예컨대 어떤 신문이 한 시간의 산 노동(인쇄 기사들의 노동)과 두 시간의 죽은 노동(종이와 윤전기 등)으로 생산된다고 하자. 이 신문은 세 시간의 노동에 상응하는 액수에 팔릴 것이다.

신문사 사장은 원자재 비용과 생산 과정에서 마모되는 기계에 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즉 그는 두 시간의 노동에 상응하는 액수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두 시간분을 지불하고 나면 사장에게 남는 것은 한 시간 분의 금액이다. 그러나 사장은 아직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과연 그는 임금으로 얼마를 지급할까? 바로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는 스스로 《자본론》의 ‘가장 탁월한 것 중 하나’라고 여긴 통찰을 제시한다.

노동자들은 한 시간의 노동에 상응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그러나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만큼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자본가가 임금을 주고 사는 것은 오직 노동자들의 ‘노동력’, 즉 그들의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이지, 그들의 노동 자체가 아니다.

노동력의 가치, 달리 말해 임금의 가치는 그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의식주·기타 재화·서비스의 가치다.

노동력의 가치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노동자가 생산하는 가치보다 노동력의 가치가 훨씬 작다.

신비화

앞의 사례로 돌아가서, 신문사 노동자들이 하루 1천 시간의 노동을 투입한다고 가정하자.

만약 한 시간 노동의 가치가 2만 원이라면 2천만 원의 부가가치가 새로 창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지급된 임금 총액이 1천만 원이라면 창출된 가치의 절반만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본가는 1천만 원어치의 ‘잉여 가치’를 획득하고, 그것이 그의 이윤이 된다.

바로 여기에 착취의 기초가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창출한 가치를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임금을 지급받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착취 과정도 자본주의 하에서 일어나는 다른 수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은폐되고 신비화된다.

우선 노동자 자신도 노동 시간 중에서 자신의 임금으로 돌아올 부분과 사장의 이윤으로 갈 부분을 구분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적 착취는 월급 봉투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지적했듯이, ‘노동자를 24시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반나절뿐이라 해도 노동자가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자본가들 역시 생산 과정에 대해 마르크스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가들 눈에는 기계와 원자재도 산 노동과 똑같은 이윤의 원천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일차적 관심사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사고 과정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객관적 운동 법칙이었고, 이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자본주의와 착취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임을 밝혀냈다. 달리 말해, 착취를 끝장내려면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도 착취에 대항하는 싸움들이 벌어지며, 이러한 싸움을 통해 노동계급은 자신감과 조직력을 키울 수 있다.

자본가들이 잉여가치를 불리는 방법 하나는 노동자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절대적 잉여가치의 증대’라고 불렀다. 이러한 시도는 노동시간이나 노동 강도를 둘러싼 싸움을 초래한다.

마르크스는 또한 노동자들이 오래, 열심히 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상대적 잉여가치’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전체의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상대적 잉여가치도 함께 증대한다.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상품들이 값싸지고, 그에 따라 노동 시간에서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임금만큼의 가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더 짧아지며 자본가는 그만큼 더 많은 잉여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대립인 노동자/자본가 간의 대립에 대해 살펴봤다. 다음 주에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또 한 가지의 대립, 즉 총 잉여가치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자본가들 사이의 대립을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