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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파시즘’으로 보는 것은 옳은가

이명박 정부가 두 달 넘게 촛불 운동 참가자들을 구속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을 압수수색하는 등 폭압적 만행을 저지르자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같은 운동 내 일부 인사들은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 권력”이라고 규정했다.(〈프레시안〉 8월 18일치.)

확실히 이 오만하고 광포한 자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파시즘으로 여기는 주장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잘못된 분석 때문에 잘못된 전략전술로 나아갈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파시즘이 의회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반동적 독재 체제를 수립하고, 노동계급 조직을 분쇄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심각한 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력이라고 주장해 왔다.

“트로츠키는 이런 일반적 분석에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는 파시즘이 단지 자본가 계급 전체 또는 심지어 일부 대기업들이 추진한 정책이나 정치 경향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파시즘은 하층 중간계급, 즉 쁘띠부르주아지를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대중운동으로 시작됐다.”(존 몰리뉴,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주간〈맞불〉 55호.)

1930년대 나치가 보통의 경찰 국가나 군대로는 이룰 수 없는 철저한 사회 통제를 이루고 노동자 조직을 분쇄한 것은 파시즘이 대중 운동과 그 간부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중간계급은 위로는 은행과 거대 독점기업 들에게 짓밟히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조합과 조직 노동계급의 압력에 시달린다.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생활수준과 사회적 지위의 급격한 하락에 절망에 빠지고 양대 계급 사이에 끼여 괴롭다고 느낀 중간계급은 파시스트들의 선동을 흡수하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강력한 국가 통제와 인종차별, 민족주의 등 파시즘의 현상적 특징들은 모두 이런 중간계급의 모순된 처지와 사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파시스트들은 종종 반자본주의적 미사여구를 사용하지만(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모두 자신들의 당에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붙였다) 실제로는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일부 자본가들(투기성 금융 자본 등)에게 비난을 퍼붓는 데 멈출 뿐이다.

대신 경제 위기로 망가진 삶에 대한 원망을 노동자들, 특히 노동조합과 좌파에게 돌린다.

중간계급의 대중운동

따라서 이명박 정부를 파시스트 정부라 부르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지금의 집권 세력에게는 열광적 대중운동의 지원도 없고 지도자의 카리스마도 없다. … 타락한 부르주아에 대한 원한 따위는 애초에 흔적도 없다.”(고명섭, 〈한겨레〉 2008년 8월 26일치.) 이명박 정부가 의회 민주주의와 노동조합 자체를 제거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실 ‘민간 파시즘’의 공포를 부각하는 운동 안팎의 주장들은 파시즘에 맞선 진보·개혁 연합론과 마주 닿아 있다. “진보정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진보 개혁적 세력도 차이를 넘어서서 … 이기려면 ‘함께’ 가야 한다”(김민웅)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손을 잡고 이명박이 파괴하려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민주당은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을 추진한 친시장·친제국주의 정당일 뿐 아니라 시장에 민주주의를 팔아먹은 자들이기도 하다. 집권당이자 다수당이던 2005년에도 이 자들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을 배신하고 국가보안법의 수명을 연장시켜 줬다. 오죽하면 촛불항쟁으로 이명박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급락해도 민주당 지지율은 제자리를 맴돌겠는가.

민주당과의 연합을 위해 운동의 요구 수준을 민주당이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꼴이 될 것이다. 따라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삶을 제물로 삼아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두 신자유주의 정당 모두에 독립적인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 수호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와 민주당이 너나 할 것 없이 찬성하는 신자유주의와 전쟁에도 반대하는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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