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살인 사건:
일그러진 체제의 끔찍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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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고시원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 준다. 안타깝게도 희생된 사람들 다수는 열악한 처지의 재중 동포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식당 등에서 뼈빠지게 일한 대가로 받은 월급 1백여만 원의 절반 이상을 브로커들에게 송금하고 남은 돈으로 월세가 싼 낡은 고시원 ‘쪽방’ 신세를 져야 했다. 비극적이게도 범인은 자신과 똑같이 빈곤, 차별, 냉대를 겪고 있던 무고한 사람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이 때문에 주류 언론은 주되게 범인 개인의 성격 이상을 탓하고 있다. 가해자가 인형 뽑기 게임에 보인 집착, ‘물병과의 대화’ 등을 볼 때 “성격에 문제가 있는 반사회적 인물인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성격장애의 일종]”의 범죄라는 것이다.
물론 무고한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범행 가해자가 심각하게 왜곡된 사고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왜곡된 심성을 낳은 환경은 결코 그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 정상진은 음식 배달을 하며 받은 적은 월급으로 고시원 월세, 휴대전화비, 하지정맥류 치료비, 벌금 등을 감당할 수 없었던 현실을 비관했다.
그런 현실은 오늘날 비정규직화와 실업 증가에 던져진 수백만 청년들의 현실이다. 물론 억압과 소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전부 이러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러한 토양 속에서 비뚤어진 심성을 키우게 된다.
주류 언론들도 최근 불황 때문에 이러한 현실을 단순히 무시하지 만은 않고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사이코패스의 전형적 특징이 “자신의 환경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질타한다. 마치 가해자가 보인 로또 당첨 번호에 대한 집요한 의심을 반사회성의 근거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비뚤어진 심성은 그가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헛된 개인적 방식에 집착한 것에서 비롯했다. 그는 로또가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 로또 사업자의 배를 불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보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불운’을 부정하고 싶은 심정에서 의심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세상이 무시’하는 자신이 인형 뽑기 기계 안에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이런 행동들은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위안을 찾으려 했던 행동들이다.
사회적 해결책이 아닌 개인적 위안에 집착하다보니, 삶에 대한 자신감은 계속 떨어지고 자존심을 추스르기 위해 온갖 망상에 사로잡히게 됐을 것이다. 결국 그는 분노와 좌절감을 외부 세계를 향한 무차별적인 적대감으로 갑작스럽게 드러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체제 자체가 낳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주류 언론들처럼 이런 개인들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속에 “숨어 있는 폭탄”이라며 경고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불신과 경계심만 강화할 뿐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미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 임계치를 넘어섰[다.]”(표창원 경찰대 교수)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을 빈곤과 불평등, 차별과 소외로 내모는 체제 자체를 근본에서 수술하지 않는 한, 안타깝게도 이런 비극은 계속될지 모른다.
경제 불황 시기에 이런 비극을 방지하려면 복지 확충과 청년 실업 해결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해결책은 온갖 부를 독차지하고 합법·탈법적인 범죄를 일삼으면서 그 고통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자들의 부와 권력을 침해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