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 ─ 이명박 1년이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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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된 삶터를 지키려는 하층 서민들의 마지막 몸부림에 용산구청과 이명박 정부는 결국 살인으로 대답했다.
용산4지구 철거민 5명이 불길에 휩싸여 떼죽음을 당한 사건 현장에는 물대포에 맞아 산산이 부서진 건물 유리창 파편이 널려 있었다. 건물 주변의 나뭇가지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얼음이 맺혀 있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철거민들의 원한이 맺힌 듯했다.
뻔뻔스럽게도 정부는 “이번 사고로 과격 시위의 악순환이 끊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이 재앙의 책임을 철거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그러나 이번 참사는 “떼법 청산” 운운하며 경찰력을 강화해 온 이명박의 민주주의 파괴 정책이 부른 예고된 재앙이다.
촛불집회 때부터 극도로 강경하게 대응하던 경찰은 촛불집회 참가자 1천 명 이상을 연행하고, 촛불 수배자들을 양산하고, 심지어 촛불 집회 이후로는 모든 집회 행진을 원천봉쇄했다.
촛불집회 참가자 체포에 포상금을 내걸었던 ‘인간 사냥꾼’ 김석기가 신임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것도 이번 비극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런 강경 분위기 속에 이번 진압이 계획됐다. 이번 특공대 투입은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 김석기가 직접 지시했다. 마치 본보기를 보여 주려는 듯,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경찰의 태도는 매우 과격했다.
애초부터 재개발 조합과 경찰은 법적으로 금지된 겨울철 강제철거를 강행했고, 망루 시위가 시작된 지 불과 하루 만에 서둘러 강경진압에 나섰다. 철거민 40여 명을 연행하는 데 20개 중대 1천6백 명의 경찰과 테러 전담 진압부대인 경찰특공대, 물대포, 쇠파이프, 컨테이너가 동원됐다. 철거민들의 요구를 들으려는 최소한의 대화나 협상도 없었다. 경찰이 대치 국면 초반에 용역 깡패들에게 경찰 방패까지 넘겨주며 깡패들을 도왔다는 증언도 있었다.
경찰은 건물 옥상에 인화 물질이 많아 일촉즉발의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막무가내로 망루 철거를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망루에 남아 있던 철거민을 면회한 변호사가 “경찰이 무턱대고 망루 기둥부터 뽑아 망루가 무너지면서 망루 위의 인화물질들이 쏟아졌고, 이것이 화재의 원인인 듯하다”는 증언을 전했다.
철거민 목격자들은 불이 망루와 떨어진 곳에서 나기 시작했고, 용역 깡패와 경찰이 진압을 위해 일부러 불을 피웠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철거민들의 화염병을 문제 삼지만, 철거민들을 위험천만한 망루로 내몬 것은 재개발 조합과 건설사, 용산구청, 이명박 정부다.
용산4지구에는 삼성물산, 포스코, 대림산업 등이 짓는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재개발 결정 후, 용산4지구의 땅값은 평당 수천만 원∼1억 원 대로 치솟았다. 그러나 여기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던 세입자들은 적절한 이주 비용도 보장받지 못한 채 대책 없이 차가운 겨울에 길거리로 쫓겨나야만 했다. 이처럼 재개발로 건설사와 땅주인들이 벌어들이는 엄청난 이윤 뒤에는 철거민들의 눈물이 있었다.
재개발로 생길 이익의 일부만 환수해도 철거 대책을 마련할 길이 열릴 수 있다. 따라서 철거 지역에 철거민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임대주택을 짓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는 적절한 비용을 보상하고, 공사기간에 장사할 수 있는 가수용 단지를 설치해 달라고 한 철거민들의 요구는 너무나 정당하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이명박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됐다. 철거민들을 짓밟은 참사를 보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촛불을 짓밟은 이명박의 만행이 겹쳐 보이고 있다. 재개발 건설사들의 이익을 위해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번 살인 진압은 땅부자들의 종부세를 깎아 준 이명박의 ‘강부자’ 우대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이 때문에 사건 현장에서는 살인 진압의 책임자인 김석기와 그 ‘배후’인 이명박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다.
수많은 연대 단체와 개인 들이 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있고, 철거민들이 죽어간 건물에 흰 국화꽃을 꽂으며 애도의 마음을 표현했다. 정부가 ‘제2의 그리스’, ‘제2의 촛불’을 우려할 정도로 분노의 불씨가 옮겨 붙고 있다.
이런 불씨들이 자라나 이명박의 반서민·반민주 정책에 다시금 제동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