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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의 모순을 보여 준 진보신당 강령

진보신당이 3월 29일 당대회를 통해 강령을 최종 확정했다. 진보신당의 강령은 강력한 재분배 정책, 토빈세 실시,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 자주관리, 침략전쟁 중단 등을 담고 있다. 대체로 괜찮은 좌파 개혁주의 강령들이다.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일부 강령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견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사회민주주의 공개정파를 준비하는 모임’은 “노조가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의미하는 ‘자주관리’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모델”이라고 비판했다. 그들은 또 “강령 본문에 꼭 담아야 할 경제 성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 진보신당 당원들은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에 대해서 불편해했다. “자본주의 극복” 구절을 “자본주의의 병폐 극복”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좌파 개혁주의 강령을 성취하려면 체제 자체에 도전해야

그러나 진보신당의 좌파 개혁주의 강령을 현실에서 성취하려면, 또 진보신당이 소중하게 여기는 4대 가치인 평등·생태·평화·연대를 실현하려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의 강령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자본주의 그 자체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주된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토빈세 부과, 생산수단의 사회화, 강력한 재분배 정책은 그 자체로는 반자본주의 조처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자본주의 자체와 진지하게 대결하지 않고서는 성취할 수 없다.

진보신당 강령이 “신자유주의 세계”가 낳는 위기는 “오직 자본의 지배 자체를 극복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전적으로 옳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적 사회 논리를 추상적 문구로 대체했다 ― “인간의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

진보신당이 “자본주의 극복”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스탈린주의의 재앙에 대한 그릇된 평가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고, 진보신당 안에 있는 정치적 이견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인 것은 현 진보신당 지도자 중 대다수가 과거 민주노동당 강령에 사회주의(“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를 포함시키고 2003년에는 그 사회주의 강령 삭제 시도에 반대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또, 진보신당 내부 여론조사에서 27.7퍼센트의 당원이 진보신당이 “노동자 계급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답했는데, 이번 강령 채택 과정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을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은 사회주의다. 진보신당 강령이 제시하고 있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사회주의 사상의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다. 대기업들과 그들의 로비스트들은 경제적 소유권의 중요성을 매우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지적재산권을 위해 그들은 매우 공격적으로 싸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적 사회 경제 체제에서는 주요 생산 자원이 민주적 토대 위에서 사회적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곧 사회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자본주의 극복”을 말하지만, 그 대안은 모호하다.

한편, 진보신당 강령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단과 방법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진정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면 근본적 사회 변혁이 필요하다. 반면, 진보신당은 자본주의를 개혁해 “자본의 지배 자체를 극복”하고자 하는 듯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개혁 운동은 그 자체에 내재돼 있는 고전적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즉, 자본주의 재생산의 요구조건이 개혁 운동이 이를 수 있는 한계를 정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1930년대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그만큼 지배계급이 양보할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이 개혁의 가능성이 원천 봉쇄됐다는 뜻은 아니다. 체제 유지 자체가 위협받게 되면, 자본가들은 국가가 개혁을 양보하도록 용인할 것이다. 자신들을 위협한 운동에 반격을 가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거듭 강조하지만, 경제 위기 시기에 개혁 운동이 실질적 양보를 얻어내려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운동이 발전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조직 노동자 계급 중심의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 이들이야말로 경제와 국가에서 자본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권력에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진보신당 당원이 지적했듯이, “만남 강령에서 전반적으로 계급적 관점이 흐릿해”졌다.

진보신당의 강령은 훌륭한 좌파적 개혁 과제들을 담고 있지만, 개혁주의의 한계와 모순도 함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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