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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커피>가 보여 준 ‘인디’의 가능성:
대중음악의 새로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아무리 〈조선일보〉가 “습작 수준”이라거나 “[가사는] 삶을 반영하지 못하고 …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도 부족”하다고 깎아내려도,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는 크라잉넛의 〈말달리자〉에 비견할 대중적 공감을 얻고 있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 쉬기가 쉽질 않다”거나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모르겠다는 허탈함, 웃는 듯도 하고 우는 듯도 한 읊조림은, 독특한 자조와 해학을 보여 준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짓눌린 ‘88만 원 세대’는, 10년 전에 〈말달리자〉가 표현한 분노와 지배 질서 전반에 대한 적대감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처럼 〈싸구려 커피〉에 열광했다.

〈싸구려 커피〉를 비롯한 ‘인디’ 음악이 가진 가능성을 설명하려면 그것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인디’ 음악의 비상한 성장은 1987년 이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향상 위에서 축적된 음악적 역량이, 경제 불황이 낳은 정서들과 조응한 결과다.

1997년 초 IMF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크라잉넛을 비롯한 펑크 밴드들은 상품 논리가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서민의 분노와 박탈감을 표현한 바 있다.

불황이 빚은 절망감과 현실 도피 욕구, 소외를 표현하는 ― ‘모던록’이라는 모호한 범주에 속한 ― 다양한 솔로·밴드가 등장했고, 내면 세계와 개인이 처한 현실을 담담히 표현하는 데 탁월한 장르인 포크가 재조명받았다. 또, 풍부한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는 장점 덕분에, 댄스 음악의 외장재쯤으로 생각되던 힙합이 독자적 장르로 성장했다.

그 결과, 한국 ‘인디신’은 소규모 마니아들의 모임에서 음악적 영향력을 가진 공간으로 발전했다. 구성원도 변했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한 미래를 고민하는 요즘의 ‘인디’는 영락없는 ‘88만 원 세대’다.

지배 질서에 비판적인

지난 10여 년간 중요한 대중 운동들이 등장했다. 자기표현 욕구가 한껏 늘어났고, 특히 지난해 촛불 항쟁에서 두드러지게 그랬다. 정치 영역에서 지배 질서에 비판적인 새로운 세대를 낳은 역동성이, 대중음악 영역에서도 새로운 발전을 낳았다.

몇몇 유명 가수들은 집회장에서 노래했다. 대중 운동은 ― 촛불집회 참가 때문에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퇴출됐다는 ‘소문’이 돌았던 ― 윤도현밴드의 새 앨범에도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저항을 호소하는 〈깃발〉이나 촛불에 따뜻한 연대의 인사를 보내는 〈후회 없어〉 같은 노래는 진보적 청년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더 많은 음악인들이 시위대의 일부로 함께 행진했다. 그 중 소수는 현재까지 이런저런 운동에 연대하고 있다. 콜트콜텍 노동자 지지 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에는 이른바 ‘민중가수’들 외에도 “정치와는 담을 쌓았던 음악인들까지 선뜻 참여했다.”(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

이명박 정권에 대한 풍자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매김 했다. 4월 4일 반전집회에서 공연한 ‘잡리스’처럼 풍자를 더 멀리 밀어붙인 솔로·그룹도 속속 나타났다.

경제 위기는 현실 도피를 부채질하는 음악이 설 자리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88만 원 세대’의 현실을 노래하는 음악이 부각될 여지를 만들었다.

포크·포크록은 사람들의 정서와 현실을 거칠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표현하는 장르 특유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국카스텐’처럼 분노와 소외, 탈출 욕구를 훌륭히 표현하는 밴드들이 주목받고 있다. 장르 간 크로스오버 실험도 보편적 현상의 일부가 됐다.

어떤 경우에도 음악의 메시지가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는 듯하다. 이 말이 곧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솔로·밴드가 대폭 늘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현실 도피적이거나 심지어 우익적인 메시지를 표현하는 솔로·밴드도 많다. 그러나 형식적 완성미를 추구하느라 별다른 내용을 담지 못하기도 하던 것에 비하면 좋은 일이다.

예술적 실험이 반드시 사회적 격변에 비례한다는 주장은 기계적이지만, 사회적 격변은 분명히 사람들의 정서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음악도, 그것이 인간의 창조물이기에, 비록 음악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사회적 정서를 일부 반영한다. 즉, 새로운 시대를 향한 사람들의 자신감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대중음악 실험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