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몰리뉴의 마르크스주의로 세상 읽기:
왜 노동계급이 사회 변혁의 핵심 주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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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계급, 즉 프롤레타리아가
이렇게 노동계급의 혁명적 구실을 강조한 사상을 두고 레닌은
이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노동계급 대중이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거나 사회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핵심이고, 대중매체나 교육 제도, 우리 사회 전체에 널리 퍼진 자본주의 세계관이다. 특히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그런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생활조건은 그런 생각을 더욱 강화한다. 또, 그런 생각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이 시키는 대로 살아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노동계급 대중의 생활 경험을 많이 반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레닌은 옳았다.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핵심 사상이다.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사상이 없는 경제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사상
먼저, 마르크스의 견해는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시기에 우리 대다수는 지배계급의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노동자 대중은 사회주의 의식 때문에 혁명적 투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투쟁이 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의식을 깨우치게 만든다. 사회주의 의식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억압을 반영하지도 않는다. 물론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쓰라린 고통을 겪기 마련이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농민

마르크스가 입증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임금을 적게 받을 뿐 아니라 착취도 당한다.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라고 부른 부
착취 때문에 노동계급은 또, 자본주의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착취 때문에 노동과 자본은 임금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수를 늘릴 뿐 아니라 대규모 작업장과 대도시로 노동계급을 집중시킨다. 이 때문에 현대의 노동계급은 고립분산적인 농민이나 소규모 작업장에 고용된 과거의 장인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힘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부정적 힘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긍정적 힘이기도 하다. 경제적
중요한 것은 노동의 성격이 아니라 생산관계
이것이 1백50년도 더 전에 마르크스가 주장한 핵심 내용이다. 그때 이후로 노동계급은 실제로 많은 사건에서 혁명적 구실을 했다. 1871년의 파리 코뮌,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 1919~24년의 독일 혁명, 1936년의 스페인 혁명, 1956년의 헝가리 혁명, 1974년의 포르투갈 혁명에서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마르크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평론가
여담으로 한 마디 하자면, 40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됐을 때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마르크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 후로 나는 단 한 순간도 마르크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옳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주장을 살펴봐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노동계급이 마르크스 시대처럼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혁명적 성격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물론 유럽과 한국을 포함해서 국제 노동계급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심은 임금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그런 임금을 보장받으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임금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단적 투쟁에 나설 수 있고, 그런 투쟁이 혁명적 행동과 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사람들은 또, 광산업
마지막으로, 노동계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은 세계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완전히 상반된다. 사실, 20세기 후반에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