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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몰리뉴의 마르크스주의로 세상 읽기:
왜 노동계급이 사회 변혁의 핵심 주체인가

존 몰리뉴는 영국 포츠머스대학 교수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계급, 즉 프롤레타리아가 “진정으로 혁명적인 단 하나의 계급”이라고 했고,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 규약〉에서는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했고, 〈고타 강령 비판〉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이행기에는 “오직 프롤레타리아 독재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노동계급의 혁명적 구실을 강조한 사상을 두고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편으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나 T W 아도르노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대부분 수용하면서도 체제의 세뇌 교육과 매수 때문에 노동계급이 이제는 가망이 없어졌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한편으로 평범한 사람들, 즉 노동자들 자신도 “사회주의는 불가능해!” 하고 한 마디로 일축한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노동계급 대중이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거나 사회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핵심이고, 대중매체나 교육 제도, 우리 사회 전체에 널리 퍼진 자본주의 세계관이다. 특히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그런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생활조건은 그런 생각을 더욱 강화한다. 또, 그런 생각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이 시키는 대로 살아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노동계급 대중의 생활 경험을 많이 반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레닌은 옳았다.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핵심 사상이다.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사상이 없는 경제·역사 이론은 모두 세계 변혁 수단이 아니라 기껏해야 세계에 대한 수동적 논평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에는 스탈린주의나 마오쩌둥주의처럼 다른 계급(국가 자본가 관료 집단이 대표적이다)의 이해관계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만다.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을 사회 변혁의 핵심 주체라고 말한 이유를 살펴보고, 그 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지를 따져 보자.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사상

먼저, 마르크스의 견해는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시기에 우리 대다수는 지배계급의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노동자 대중은 사회주의 의식 때문에 혁명적 투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투쟁이 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의식을 깨우치게 만든다. 사회주의 의식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억압을 반영하지도 않는다. 물론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쓰라린 고통을 겪기 마련이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농민·농노·노예도 문명의 여명기부터 빈곤과 억압에 시달려 왔고, 역사는 그들이 계급 분열을 폐지하거나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처한 경제적 위치에서 비롯하는 잠재적 능력 덕분에 혁명적 계급이 될 수 있었다.

디에고 리베라의 디트로이트 산업 벽화(부분)

마르크스가 입증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임금을 적게 받을 뿐 아니라 착취도 당한다.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라고 부른 부(富)는 노동자들의 노동에서 뽑아낸 것이다. 이 잉여가치가 자본가 계급의 모든 이윤의 원천이고 자본주의 전체의 부도 대부분 이 잉여가치에서 나온다. 따라서 부르주아지에게는 노동계급이 절대로 필요하다(물론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계급으로서 필요하다는 말이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특별한 산물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착취 때문에 노동계급은 또, 자본주의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착취 때문에 노동과 자본은 임금·노동시간·노동조건을 둘러싸고, 결국에는 모든 사회적 쟁점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이 충돌은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때로는 공공연한 또 때로는 은밀한” 산업 투쟁과 정치 투쟁으로 비화한다. 대부분의 시기에 이런 투쟁에서 부르주아지가 승리한다. 그들이 부와 국가 권력(법률·경찰·사법부·군대 등)을 모두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아무리 많이 노동계급을 패배시킨다 해도 그들은 노동계급의 노동에 의존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가 성장할수록 노동계급도 성장해서 결국은 사회의 다수가 된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수를 늘릴 뿐 아니라 대규모 작업장과 대도시로 노동계급을 집중시킨다. 이 때문에 현대의 노동계급은 고립분산적인 농민이나 소규모 작업장에 고용된 과거의 장인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힘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부정적 힘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긍정적 힘이기도 하다. 경제적·사회적 위치 덕분에 노동계급은 집단적 계급이다. 그들이 사용자들에 맞서 저항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은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뿐이고 그들이 현대 산업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도 집단적 방식, 즉 현대 산업을 사회적 소유로 만드는 것뿐이다. 농민들은 봉건 영주에게서 빼앗은 토지를 자기들끼리 분할해서 소규모 농장으로 만들었다. 현대 산업은 그렇게 분할할 수 없다. 더욱이, 모든 현대 사회에서 정치 권력의 기반은 대도시에 있고 주요 생산수단도 대도시에 집중돼 있다. 도시의 산업 프롤레타리아라는 성격 덕분에 노동계급은 여전히 주요 생산 계급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정치 권력[프롤레타리아 독재 ― 지은이]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노동계급은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의 분열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그래서 완전히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로 가는 길을 개척해 나간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성격이 아니라 생산관계

이것이 1백50년도 더 전에 마르크스가 주장한 핵심 내용이다. 그때 이후로 노동계급은 실제로 많은 사건에서 혁명적 구실을 했다. 1871년의 파리 코뮌,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 1919~24년의 독일 혁명, 1936년의 스페인 혁명, 1956년의 헝가리 혁명, 1974년의 포르투갈 혁명에서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마르크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평론가·전문가·학자들이 넘쳐난다.

여담으로 한 마디 하자면, 40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됐을 때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마르크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 후로 나는 단 한 순간도 마르크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옳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주장을 살펴봐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노동계급이 마르크스 시대처럼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혁명적 성격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물론 유럽과 한국을 포함해서 국제 노동계급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심은 임금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그런 임금을 보장받으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임금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단적 투쟁에 나설 수 있고, 그런 투쟁이 혁명적 행동과 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사람들은 또, 광산업·철강업·항만업 등이 사양 산업이 되면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노동계급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고 그래서 확실히 더는 인구의 다수가 아니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통적인 특정 노동 형태를 기준으로 노동계급을 정의하는 피상적이고 잘못된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실, 육체 노동이든 화이트칼라 노동이든 중요한 것은 노동의 성격이 아니라 생산관계다. 콜센터·수퍼마켓·병원·학교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광원이나 자동차 노동자들과 꼭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살아야 한다. 그리고 착취당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강력한 집단적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파업에 들어간 콜센터 노동자들과 수퍼마켓 노동자들은 자기 기업주의 이윤에 엄청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계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은 세계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완전히 상반된다. 사실, 20세기 후반에 서울·콸라룸푸르·카이로·요하네스버그·멕시코시티·상파울루 같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대도시에서 노동계급이 급증했고 이제는 중국(과 그보다는 못하지만 인도)의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훨씬 더 증가했다. 오늘날 세계 노동계급은 마르크스나 레닌 시대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커졌고 국제적으로 더 통합됐고 잠재적으로 더 강력해졌다. 지금 세계 노동계급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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