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김영진 씨의 글에 답하며:
사회주의자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예술을 탐구해야 하는가
〈노동자 연대〉 구독
글에서 보이는 몇몇 오독과 오해, 근본적 이견들에도 불구하고 김영진 씨의 글은 내가 쓴 〈대중음악의 새로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가 충분히 밝히지 못한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었다. 한 예술 작품을 그것이 표현하는 메시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 말이다. 김영진 씨도 잘 지적해 주었듯, 진보적 내용을 담은 예술이 ‘보수적’ 내용을 담은 것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단견이다. 그런 태도는 우리가 예술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심각한 장애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나 역시 위와 같은 입장을 이전의 글에서 표현했기 때문이다. 김영진 씨는 아마도 내가 “어떤 경우에도 음악의 메시지가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는 듯하다”고 말한 것에서 가사의 내용만을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본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형식적 완성미를 추구하느라 별다른 내용을 담지 못하기도 하던 것에 비[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음악의 ‘메시지’는 가사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김영진 씨의 주장처럼 “한 곡이 대중에게 어필하는 이유에 가사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가사가 아닌 나머지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음악은 그 모두의 종합이며, 음악에 사용된 모든 재료들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더 중요한 논점이 뒤를 잇는다. 그렇다면 음악이 가진 ‘완성도’나 ‘영향력’, ‘성취’와 같은 것들은 어떻게 측정되는가? 어떤 음악이 왜 ‘혁신적’, ‘창조적’이라고 불리는지, 반면 다른 음악이 어떤 기준 때문에 진부하다고 평가되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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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형식적 정교함이나 작법의 독창성은 좋은 음악에 요구되는 첫째 조건은 아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그런 이유 때문에 80년대를 조용필의 시대로 만들었는가? 그 곡은 오히려 당시 주류 시장에 ‘안착하는’ 곡이었다. 하지만 그 곡은 한일 수교 이후 일본에서 고향을 방문한 한국인들의 애환과 그들을 기다린 한국 노동자들의 한, 헤어진 ‘동포’에 대한 그리움 등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큰 인기를 얻었고, 80년대를 ‘조용필의 시대’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예술은 더 어려운 조건에서 수행했을 때 더 높은 가치를 가지는 놀이나 운동 경기 같은 것이 아니다. 청각적 재료들을 ‘예술적’으로 조합하는 행위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감흥을 일으킬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 비록 김영진 씨는 이 부분을 비켜 갔지만 ― 내 지난 글의 핵심은 바로 예술이 표현하는 정서가 사회적 정서의 반영이라는 것이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탈리아의 대중문학을 분석하면서 “예술에 대한 탐구는 그것이 왜 ‘읽히는지’, 왜 ‘대중적인지’, 왜 ‘탐구되는지’, 또는 거꾸로 왜 대중이 거들떠보지도 않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그리고 왜 대중의 문화적 삶에서 그것이 빠져 있는지를 조명하면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쓴 바 있다. 김영진 씨는 “음악과 같은 즉자적 예술에 대해 쉽사리 사회적 맥락과 결부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내가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음악도 다른 모든 예술처럼 인간의 창조물이고, 예술가는 사회의 일부로서 사회적 조건·정서들과 조응한다. 그러므로, 특히 사회주의 신문일수록 예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접근법이 개별 예술 작품이나 예술사를 이해하는 좋은 관점임을 증명하는 예는 무궁무진하다.
트윈폴리오, 한대수, 김민기, 이장희, 김세환, 양희은 등이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선보였던 모던 포크는 자생적으로 일어나던 청년들의 통기타 문화에 대중운동의 흔적을 뚜렷이 담은 미국 포크를 접붙인 것이다. 은유적 가사, 간소한 사운드, 평이한 코드 진행, 보컬의 비중 있는 배치 등의 특징을 보이는 포크 음악들이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노동계급의 빈약한 경제적 조건, 군부 독재의 탄압이 불러온 공포와 그에 대한 반항심, 낭만과 즐거움과 희망을 자유롭게 만끽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의 욕구가 충돌했던 것을 봐야 한다.
1백40여 명의 예술가들을 고문·구속·연행한 소위 ‘대마초 파동’과 같은 군부 독재의 억압, ‘서울의 봄’과 신군부의 등장, 광주 학살과 정권의 통제 강화 시도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정선이나 서유석과 같은 식의 내면화하고 가라앉은 포크, 동요의 포크적 재해석 시도들, 캠퍼스 그룹사운드(산울림, 송골매, 옥슨80 등) 음악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된 아마추어리즘, 초기의 민중가요에 깊게 드리운 포크 스타일,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신의 블루스/록/재즈 장르에 대한 깊은 천착과 과감한 활용, 스튜디오 녹음보다 라이브 공연을 염두에 둔 편곡 양식의 발전 등을 이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신대철은 “두발자유화·교복자율화 조치 이후 … 정치적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등장했던] 청소년들의 록 페스티벌에서 [헤비메탈] 붐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신군부의 억압과 점증하는 저항이 충돌하기 시작했던 80년대 계급 세력관계의 복합성을 이해해야만,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가장 퇴폐적인 록’이라고 비난받은 헤비메탈이 바로 그 정권에서 다른 어느 때보다 흥행했던 이유를 더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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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도 쓴 것처럼, 87년 민주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한 노동계급의 전반적 생활수준 향상, 경제 호황, 사회 전체적인 자유도 증가는 90년대 대중음악을 이전 세대의 그것과 뚜렷이 구분지었다. 비트와 리듬 위주의 장르(유로 댄스, 하우스, 힙합)가 주류 시장을 장악했고, 이 때문에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룰라, 듀스와 같은 메머드급 ‘댄스’ 가수들이 새롭게 음반 시장에 구매자로 진입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청년들에게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요건들의 영향으로 광범하게 소개된 영미 팝의 영향을 이전 시기보다 더 뚜렷하게 받은 몇몇 밴드들(유앤미블루, 삐삐밴드, 자우림 등)이 등장했고, 영미의 록 음악을 전문적으로 탐구하던 (델리스파이스·언니네 이발관 등 한국 ‘모던록’ 1세대의 모태가 된 하이텔 ‘모소모(모던록소모임)’ 같은) 음악 동호회들이 활발하게 운영됐다. 대중음악 산업 규모의 확대로 경쟁과 상품화가 심해지던 주류 음악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노래로 말하고 싶”(옛 노브레인 리더 차승우)어하는 록 키드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말달리자〉가 실린 《아워네이션》 시리즈가 96년 11월에 처음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말달리자〉에 광범하게 공감한 것은 크라잉넛 1집이 발매된 98년 여름부터다. 코드 진행의 단순함, 격렬한 기타 사운드, 현란한 테크닉에 대한 의도적 배격, 직설적인 가사 등을 특징으로 하며 현실에 대한 분노와 증오, 적대감과 탈출 욕구를 표현한 ‘조선펑크’ 장르는, 대중적으로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한 줌의 매니아 무리에서가 아니라, 〈말달리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공감에 힘입어 크라잉넛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 노브레인의 〈청춘98〉, 〈바다사나이〉, 18크럭의 〈한국을 떠나라〉 같은 특색 있는 곡을 배출한 1998년에서 2001년 사이의 ‘인디 공간’에서 형성되고 완성됐다.
김영진 씨는 〈말달리자〉의 인기가 불황기에 청년들이 느낀 정서에 조응한 것 때문이 아니라 “90년대에 꾸준히 수입된 … 장르에 대한 국내 대중의 수용” 때문이었다고 썼다. 그러나 그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이 나라의 대중이 왜 ― 그들에게 훨씬 익숙한 ― “영미권의 상업적 팝/록음악들”이 아니라, 이 나라에 주로 수입된 미국식 멜로디 펑크나 그런지 록이 아니라, 훨씬 투박했고 기술적으로 조야했던 〈말달리자〉에 훨씬 공감했는지를 논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논증은 미국식 멜로디 펑크를 가장 정통으로 수용해 쉽고 훌륭하게 풀어낸 실력파 밴드 Gum(후일 GumX로 개명하는)이 매니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대중음악에 유의미한 ‘바람’을 거의 불러일으키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또 김영진 씨는 내가 “‘음악적 영향력을 가진 공간으로 발전’한 이유를 … 메시지의 발전으로 든다”고 주장했다고 하지만, 이는 내 글의 논지를 일면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음악의 ‘메시지’는 가사를 포함한 음악의 모든 구성 요소들의 종합에 의해 구현된다. 음악의 구성 요소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구성 요소에 대한 필요가 다른 구성 요소의 발전에도 복합적 영향을 끼친다.
하나의 예만 들어 보겠다. 현진영과 듀스 등의 주류 음악 시장에서 춤의 외장재로 취급되던 ‘힙합’과, 한국어의 언어적 특징과 절묘히 맞아떨어지고 미국 힙합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교한 모음 라임(운율)을 발전시킨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완전히 다른 장르처럼 보일 정도로 그 예술적 성취가 다르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어떻게 ― 음운학에 대해 탐구하면서까지 ― 유래 없이 ‘독창적’인 라임(운율) 만드는 기법을 탄생시킬 수 있었는가? 그것은 “힙합이 … 개인의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는”(언더그라운드 힙합 1세대라 할 수 있는 ‘가리온’의 MC메타) 장점을 갖고 있으며, 그 장점을 활용해 자신들의 정서를 표현하려 노력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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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진부함을 강력하게 역설한 김영진 씨의 주장을 살펴보자. 먼저, 나는 내 글이 내용을 올바르게 반영하는 제목을 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 글 어디에서도 〈싸구려 커피〉가 ‘음악적으로 독창적’이라고 언급하지 않았고, “대중적 공감을 얻고 있”고, “‘88만원 세대’[가] … 열광했다”고 했을 뿐이지만, 제목은 “새로운 실험”이라고 표현했으니 이 점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작은 오해에서 비롯한 김영진 씨의 주장은 중요한 견해 차이를 보여 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작법을 활용한다는 것은 ‘혁신’, ‘새로운 실험’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혁신적이라고 말할 때, 전통 악기와 장단을 차용했다는 점을 들어 그 의견을 반박하는가? 오히려 전통 악기와 장단을 무대 공연이라는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주어 혁신적이라고 한다.
내가 〈싸구려 커피〉가 보여 준 ‘인디’의 가능성을 주장한 것은 장기하가 하늘 아래 없던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70년대 모던 포크 신과 캠퍼스 그룹사운드가 보여 준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싶을 때 … 가장 가까이 있는 노래”(양희은)를 활용하는 덕목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형식적 독창성이나 구조적 완성에 천착하느라 음악을 통해 정서 표현하기를 놓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보여준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장기하 자신도 하고 있다. “내가 쉽게 다룰 수 있는 악기들과 음악적 형식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 했다.”
바로 여기에서, 지금의 ‘인디’를 분석하는 데 대중운동이 사회에 되먹임한 자기표현 욕구와 경제 위기에서 비롯한 청년들의 좌절감이 중요한 요소인 이유가 나온다. 바로 이런 사회적 배경이 녹아든 덕분에, 장기하의 포크록이 단순한 과거의 답습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장기하는 김광석이 《다시부르기2》에서 모던 포크를 그의 코드로 재해석한 이후 거의 최초로, 그리고 김광석의 코드와는 분명히 다른 ‘해학’이라는 이 시대의 코드로 포크를 재해석했고, 그 영향력은 ‘인디’ 신에 국한되지 않았다. 〈싸구려 커피〉는 ― 단순히 웃겨서가 아니라 ― 바로 이 점 때문에 청년 세대의 정서에 성공적으로 조응했다.
이것은 인디 신에 이미 존재해 왔던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도 새로운 해석과 표현을 시도할 여지가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마치 클래식은 따분해 하지만 ‘잡리스’의 음악에서는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김영진 씨처럼 형식적 작법만을 중시하고 사회적 맥락은 덜 중요하게 보는 내재적 관점으로는, 그간 인디신에 만연했던 복고풍이나 ‘루저’의 정서 같은 것들이 왜 장기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중들에게 전달되었는지, 왜 이것이 대중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지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그 외에도 분량 상 짚지 못한 몇몇 쟁점들이 있지만, 따로 규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이런 건설적인 토론이, 마르크스주의가 “첫째, 인류의 개인적·집단적 발전 과정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전반적 중요성에 대한 독특한 평가와 이해. 둘째, 예술과 문화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최상의 분석 방법. 셋째, 개별 예술 작품의 의미와 중요성을 분석하는 데 아주 유용한 관점”(존 몰리뉴)을 제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