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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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NPA) 창당대회에] 외빈으로 참석했다. 창당대회는 큰 성공이었다. 1995년 이후,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프랑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은 대중운동에 적절하게 개입하면서 지지층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최근에 그런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 집회들을 열면서 NPA 창당대회를 준비했다. LCR 당원이 2천 명인데, 7천 명이 준비 과정에 동참했다고 한다. 창당대회시 당원이 9천 명이라는 보고를 고려하면 더한층 전진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수동적 지지자들이 아니라 모두 행동가(활동가)들이다.
게다가 충분한 사전 토론을 통해 채택된 강령이 거의 혁명적 수준에 가까워졌다. 국가에 대한 입장, 아래로부터의 변혁에 대한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 특히, 당명에 ‘혁명’이라는 말을 집어넣자는 제안이 창당대회에서 있었는데, 근소한 차이로 졌다. 지도부가 적극 나서서 ‘혁명’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둘 것이라고 서둘러 진화했기 때문에 채택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거의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좌파적이고 행동가적인 당이다. 혁명적 당은 아니지만 혁명가들의 당이다.
그런 점에서 NPA는 운동의 전진이고 진보다. 그러나 이것이 얘기의 끝은 아니다. 문제점들도 있다.
첫째, 올리비에 브장스노의 인기가 엄청 높아 한 조사에 의하면 지지율이 50%까지 올라 대통령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데, NPA 당원 수는 고작 9천 명이다. 따라서 지도자에 대한 인기에 비해 기층 당원들의 실제 수는 격차가 있다. 1921년 트로츠키는 3만∼4만 명의 당원을 갖고 있는 독일 공산주의노동자당을 “3만∼4만 명 당원의 대수롭지 않은 정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새로운 정당이지만 대중과 관계를 맺고 기층 차원에서 투쟁과 운동에 개입하고 지도할 수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 이는 비판이 아니라 현실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정확하게 가늠하기 위해 현실적 평가를 하는 것이다.
둘째, 동질성 결여 문제다. LCR은 1991년 옛 소련 붕괴 후, 정치가 불분명해졌고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그 후 언젠가 그 지도자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1793년의 자코뱅주의이지 1917년의 볼셰비즘이 아니라고 했다. LCR 당원 개인들을 보면 대부분 혁명가들이다. 그러나 명확한 정치를 갖고 있지 않다. 심지어 프랑수아 사바도[NPA 활동가이자 제4인터내셔널 실행위원]는 체 게바라와 트로츠키를 비교하면서 체 게바라가 낫다고 말한 적도 있다. 우리도 트로츠키가 모든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 게바라와 비교는 안 된다. 이처럼 이들은 정치가 엄청 혼란돼 있다.
셋째, 혼란스런 정치 때문에 LCR은 정치적 오판을 자주 했다. 그러므로 새 정당이 정치적으로 옳은 판단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LCR이 범한 최근의 큰 오류는 5백만 무슬림(영국의 5배!)이 사는 프랑스에서 머리 스카프 문제로 내분을 겪었는데, 사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 창당대회에서도 내가 보기에 겨우 3명의 흑인과 두어 명의 무슬림 참가자를 봤다. 영국의 다섯 배나 되는 무슬림 인구가 사는 프랑스에서 좌파 정당의 출범식에 이만큼 적은 비(非)백인 당원이 참가하는 것은 문제다. 영국[SWP]의 경우에도 흑인이나 무슬림이 다수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보다는 훨씬 많다.
넷째, 우리 동지들도 문제다. 프랑스 국제사회주의자들은 LCR에 입당해 그 당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NPA 창당대회 성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들은 50~60명가량 되는데, 그 절반이 청산주의적이 됐다[우리 나름의 조직과 활동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뜻]. NPA 속에 녹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동료 당원들과 논쟁을 해야 한다. 특히 머리 스카프 문제에 대해 토론해야 하고, 옛 소련 사회의 진정한 성격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노동계급에 기반을 두고, 노동계급 정치를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하먼의 이 주장은 NPA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인 브장스노와 사바도가 게바라주의를 찬양·고무하고, 새 당원들이 대부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라기보다는 급진 반자본주의적 청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주장이다.]
다섯째, 사바도 같은 NPA의 핵심적 지도자는 NPA ‘모델’을 유럽 전역으로 기계적으로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든 유럽 지역에 NPA를 만들라고 기계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가령 스페인은 좌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 등 정치적 조건이 프랑스와 전혀 다르다.
NPA는 상당 부분 우리 기대 이상으로 혁명적이었다. 더 좌측으로 창당했다. 창당시 채택될 강령의 초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3백50개 지역위원회가 소집되고 거기에서 일일이 조항별로 토론되고 투표됐고, 그것이 창당대회로 온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좌경화됐다. 멋진 결과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투쟁으로부터 배우고 지도하려고도 애써 보면서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사바도도 직접 이야기한 바 있지만 투쟁의 수위가 올라갈 때는 신생 정당도 쉽게 성장할 수 있다.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투쟁이 퇴조할 때는 내부적으로 논쟁이 불거지고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